[소설] 언니가 예뻐졌다 (3)

상처를 덜 아프게 만지는 법

by JUNI KANG


식사를 마친 남편은 자기 방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뒷모습이 어딘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설거지를 마치고 유자차를 내어주러 갔더니, 의뢰받은 작업 파일이 열려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멍하니 모니터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나 역시 내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자, 카톡 알림이 떠 있었다. 언니였다.

[아, 그거 비비크림 바른 거였어.]

[응, 그래. 그런 것 같았어. 어디 거야?]


언니가 알려준 제품을 검색해 보았다.

7만 원대 중반의 비비크림이 화면 가득 주르륵 떠올랐다.

마음만 먹으면 못 살 것도 아니지만 비비크림 하나에 이 가격이라니, 선뜻 지갑이 열리지는 않았다.


상세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고 있는데, 남편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응. 언니가 쓰는 비비크림이래.”

“아, 그래?”


남편이 내 어깨 너머로 화면을 쓱 훑어보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 그거 사줄게.”

그 말만 남기고 남편은 다시 방을 나갔다.


나는 남편의 성격을 안다. 저렇게 말하고 나갔다면,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제를 끝낸 사람이다.

“아, 잠시만… 내가 좀 더 알아볼게…”

말했지만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오 분쯤 지났을까.

맑은 카톡 알림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화면에 남편이 보낸 10만 원이 찍혀 있었다.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아려왔다. 내가 쏟아낸 신세 한탄이 남편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건드려 놓았을지 생각하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때 남편이 방으로 들어왔다.

“빨리 돈 받아. 그리고 그걸로 비비크림 사. 아니, 더 좋은 걸로…”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재촉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고마워서,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대답 대신 휴대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면에 남아 있는 숫자가 자꾸만 번져 보였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속으로 가라앉았다. 고맙다는 말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고, 미안하다는 말은 더더욱 꺼내기 어려웠다. 어떤 말이든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우리가 애써 덮어 두고 있던 것들이 다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남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당신… 아까 내 얘기 듣고 속상했구나?”


남편은 대답 대신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일으켜 세워 품에 안아주었다. 육십 중반.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그 품은 여전히 따뜻하고 기댈 만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 역시 남편을 꼭 끌어안았다.

“미안해. 당신도 힘들었을 텐데… 내가 괜한 얘기를 해서…”

“그래. 힘들었지.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다.”

우리는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그날 밤, 비비크림을 장바구니에 담아 두고도 바로 결제하지는 못했다. 화면을 끄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망설인 건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작은 물건 하나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들, 과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바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분명, 그날의 언니는 예뻐 보였다.

나이를 먹어도, 언니는 제 몫의 속도로 중후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그런 언니 덕분에 잠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도 남편도 당분간은 샘플 화장품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을 것 같았다.


세월의 결은 때로 아프게 스치지만,

그 위에 위로가 더해질 때 아픔은 차츰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때는 아프게 느껴졌던 일들이, 지나고 나서야 나를 붙들어 준 마음이었음을 알게 된다.


늙어간다는 건, 서로의 상처를 덜 아프게 만지는 방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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