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동수의 '부의(賻儀)' 봉투

by JUNI KANG

동수는 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기분이 씁쓸해 졌다.

땅끝의 바닷가 마을에서 ‘궁민핵교’라 불리던 초등학교를 고작 4년 다닌 것이 교육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농사일을 돕느라 학교는 문턱만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박 빚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가족들을 이끌고 서울 변두리의 하천가까지 야반도주했다.

당장 갈아입을 속옷 하나 없이 달랑 몸뚱이들만 가지고 왔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술에 취해 벽돌을 짊어지고 5층에서 떨어졌다.

며칠을 시름시름 앓아눕더니, 비바람 치는 여름밤에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엄마는 장사를 치른 지 한 달 뒤, 리어카로 행상하는 동네 아저씨를 따라 과일 장사하러 떠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웃집 할머니가 겨우 걷어주어 잠잘 곳만 얻었다. 그때가 동수 나이 겨우 열두 살이었다.


그 후 동수는 안 해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일만 했다.

정신없이 달려온 20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국수공장에서 일하던 여자와 눈이 맞아 식도 올리지 않고 함께 살았다.

그나마 주색잡기(酒色雜技)를 모른 채 죽어라 일만 한 덕분에 7년 전부터는 서울 부근의 신도시에 번듯한 빵집을 차리고 반쯤은 빚을 내어 30평대 아파트도 한 채 샀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 아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함께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알콩달콩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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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는 주변 상가 번영회 회장직을 맡아서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주고 돌아다녔다.

초상집에 다닐 일이 많아지면서 봉투에 한자를 쓸 줄 몰라 총무에게 부탁을 했더니, 자기도 모른다며 아예 賻儀(부의)라고 적혀 있는 봉투 한 묶음을 사다 주었다.


거실 장 서랍에 넣어두고 초상집에 갈 때마다 한 장씩 꺼내 사용하던 어느 날이었다.

봉투가 필요해서 서랍장을 열어보니 딱 한 장만 달랑 남아있었다. 동수는 설거지하던 아내를 불렀다.

“여보! 여기 이 봉투들 다 어디 갔어?”

설거지하던 손을 앞치마에 쓱쓱 닦으며 아내가 대답했다.

“아, 봉투? 내가 썼지요.” 아내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곤 어깨를 으쓱하며 한마디 한다.


“아이들 과외선생님, 영어선생님, 학원비, 담임 선생님한테도…… 전부 이 봉투에 넣어서 드렸어요. 봉투가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음에 넉넉히 사다 놓으세요.”


환하게 웃는 아내를 바라보는 동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20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