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남자들의 이야기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해

by JUNI KANG


오래된 시골집을 개조해 만든 한식당에 두 남자가 들어와 마주 앉았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들은 각기 삼계탕과 비빔밥을 주문했다. 한 사람은 머리숱이 없는 대머리였고, 다른 한 사람은 테두리 없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지적이며 단정한 분위기가 학자나 예술가처럼 보였다.


이 식당은 인적이 드문 산골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알음알음 입소문이 난 곳이었다. 주말에는 앉을자리가 없어 집 밖에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몇 개의 좁은 방들은 테이블 두 개가 겨우 들어갈 만큼 협소하였다.

오늘은 다행히 평일 늦은 점심시간이라 식당은 여유가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주인 여자가 안경에게 '오랜만에 오셨네요."라고 알은체를 했다.

이 집은 별 특별한 맛은 없어도 딱히 트집을 잡힐 만큼 맛이 없는 것도 아닌 평범한 시골밥상이다.


옆 테이블에는 30대와 40대로 보이는 두 남자가 생선구이 정식으로 식사 중이었다.

가슴에 무슨 건설이라고 적힌 작업복을 입고, 흰색 안전모를 곁에 둔 것으로 보아 인근 공사 현장에서 온 기술자들인 듯했다. 그들은 식사 중에도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40대 남자가 익숙한 손길로 생선 가시를 발라내며 입을 열었다.

“터널 지나서는 설치 구간이 2키로 300이야. 미터당 단가를 조정해 준다고 했으니 며칠 있다가 확인해 봐.”

30대 남자는 도라지나물을 집어 들다 말고 진지하게 되물었다.

“2키로 300… 공사 기간은 얼마나 준대요?”

두툼한 생선 살을 입에 넣은 40대가 담담히 대답했다.

“90일…. 대금은 4억씩 끊어서 결제해 준다고 하더군.”

30대 남자는 놀란 기색으로 잠시 옆자리의 두 신사를 곁눈질했다. ‘이런 조건이 말이 되냐’는 무언의 항변 같았으나, 정작 옆자리의 대머리와 안경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물 잔을 만지작거릴 뿐, 수억 원이 오가는 그들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때, 물 잔을 내려놓던 대머리가 먼저 입을 뗐다.

“요즘은 오이지만 해서 밥 먹어. 아무것도 필요 없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던 안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래, 요즘은 그게 최고지 뭐.”


그러던 안경이 갑자기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은 어제 오이지 60개 다 버렸다.”

깜짝 놀란 대머리가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왜? 오이지를 왜 버려?”

“며칠 전까지 맛있게 잘 먹고 있던 오이지를 집사람이 짠맛 좀 줄인다고 물 끓여서 다시 붓고 어쩌고 하더니…. 이틀 지나니까 군내가 나고 물컹거려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눈물을 머금고 다 버렸지 뭐야.”

“아이구! 그 아까운 걸….”

그러게 말이다. 다시 담글 수도 없고 참.”


대머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신중하게 물었다.

“혹시 맹물 넣은 거 아냐?”

안경이 주위를 살피듯 목소리를 낮추며 답했다.

“집사람 얘기로는 오이지가 너무 짜서 물 좀 더 넣고 다시 끓여서 부었다는 거야.”

대머리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렇지. 오이지에는 더운물이라도 넣으면 안 되지. 그러면 곯아서 다 물크러질 거야. 그냥 물에 담가 놓을 때 좀 더 오래 놔두면 되는데….”


안경이 안경을 벗어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글쎄올시다. 그러면 되는데…. 나는 작년에도 오이지 담갔다가 50개나 그냥 버렸어. 하나도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건 또 왜?”

“맨날 오이지만 무쳐 먹고 담가 먹고 하니까 100개가 한 달 만에 다 없어진 거야. 그래서 오이지 더 담그려고 옥션을 뒤져봤지. 철이 지나서인지 다다기는 없고 가시오이라는 것만 있더라고. 어머니한테 물어봤더니 안 해봐서 모르겠다, 아마 안 될 거다 하시는데 인터넷엔 나랑 똑같은 질문에 된다는 답변이 있더란 말이지. 한참 고민하다 50개만 주문했지. 집사람도 이걸로는 안 될 거라고 했지만, 에이, 오이가 다 오이지 뭐, 하고 담갔는데….”


그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정갈한 나물과 전, 젓갈 등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평소라면 반찬을 음미하느라 분주했을 대머리가 숟가락도 들지 않고 채근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고사리나물을 천천히 씹어 삼킨 안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결국 물커덩거려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가시오이는 샐러드용이라 날로 먹어야 한대. 오이지 담그면 그렇게 물컹거린다고 그러더군. 아쉽지만 어쩌겠어. 다 버렸지. 에휴.”


그사이 옆 테이블의 식사가 끝났다. 40대 남자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럼 10미터 간격으로 야광판을 설치하나?”

안전모를 챙기던 30대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고휘도 LED로 2미터마다 설치한대요. 워낙 규모가 있는 공사라 본사 담당자가 수시로 감리를 내려온다네요.”


대머리가 삼계탕 닭다리를 뜯으며 중얼거렸다.

“아. 가시오이는 오이지 담그는 거 아니구나. 인생을 오이도 모르고 사네.”

아직도 비빔밥을 비비고 있던 안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이가 다 같은 오이가 아니더라고. 수업료 낸 거지 뭐.”


잠시 침묵하던 대머리가 뼈를 발라내며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근데, 옆에 계시는 분들은 수억 공사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무슨 대화가 이따구냐.”

그 말을 들은 30대와 40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말고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크게 웃었다.

대머리와 안경도 서로를 보며 킥킥거리고 웃었다.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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