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언니가 예뻐졌다 (1)

자존감 없는 향기

by JUNI KANG


언니가 예뻐졌다.

그것도 아주 낯설 정도로.


강남의 복잡한 도로를 뚫고 호텔을 향해 남편이 운전하는 동안, 나는 조수석에 앉아 선바이저의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언니의 예순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예약한 호텔 뷔페는 그 이름값만큼이나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로비에서 마주친 언니는 오늘의 주인공답게 화사하게 치장하고 나타났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무언의 자신감이었다.


“민주야, 여기!”


나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언니의 얼굴 위로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툭 불거졌던 광대뼈와 눈 밑의 그늘이 거짓말처럼 지워져 있었다. 팽팽하다기보다는 맑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마치 흙탕물이 가라앉은 뒤의 고요한 호수처럼, 언니의 피부는 맑게 빛나고 있었다.


호텔 뷔페는 소문대로 가격만 비쌌지, 음식의 퀄리티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식어버린 스테이크와 구색만 맞춘 초밥들. 호텔의 명성에 비하면 매우 아쉬운 수준이었다. 나는 갈비찜을 조금 가져와 맛을 보았다. 그 맛 속에서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예전에 엄마가 이런 거 진짜 맛있게 잘했었는데.”

내 말에 언니가 의아한 듯 말했다.

“엄마가 무슨 갈비찜을 잘했어? 엄마가 음식 솜씨가 좋지는 않았지.”


나는 엄마가 해주던 갈비찜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한 뱃속에서 태어나 한 집에서 이십여 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추억과 회상은 늘 달랐다. 같은 일을 두고도 늘 다른 감정을 느끼며 자랐나 보다.

가끔 이곳에 온다는 언니는, 특별할 것 없는 음식들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알고 있었다.


“언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 무슨 좋은 일 있어?”


내 물음에 언니는 대답 대신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 조용해서,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근황이며 아이들 이야기 같은, 늘 하던 시시콜콜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그러다 언니가 물었다.


“예린이는 요즘 어때?”

“응. 직장 생활 잘하고 있지 뭐.”

“걔는 그래도 대기업에 다니니까. 연봉이 좀 되지 않니?”

“언니, 걔가 무슨 대기업이야. 중견기업이라고 하지.”

“아. 그런 유명한 회사들이 다 대기업이 아니면, 대기업은 몇 개나 되냐?”

“하하하.”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비싼 돈을 주고 산 것은 음식이 아니라,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이 평온한 분위기였는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자꾸만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 밑의 처진 살도, 입가의 고단한 주름도 말끔히 사라진 그 뽀얀 얼굴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보톡스를 맞았나? 싶다가도, 그 깊이 있는 평온함은 약물 따위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들어 카톡을 보냈다.

[언니, 어제 물어볼까 했는데 사람들 많아서 그냥 왔어. 언니 엄청 예뻐지고 젊어 보였어. 혹시 뭐 시술받은 거 있어?]

잠시 후, 짧은 답장이 왔다.

[아니, 왜?]

[아니… 아무래도 뭔가 예뻐진 것 같아서…]

[오… 그래.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화장만 한 거야.]


대화를 마치고도 나는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냥 화장만 한 얼굴은 아니었다. 혹시 좋은 비비크림이라도 발랐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울컥했다.


언니의 화장품.


그 말 한마디에 잊고 지냈던 오래전 샘플 화장품의 기억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때는 남편의 사업이 힘들어 참으로 고단한 세월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했다. 사회 분위기는 어지러웠고 다들 힘들어했다. 모두가 퇴사를 말렸지만, 그는 기왕 해보려면 젊었을 때 해봐야 한다며 단호하게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받은 주식이며 퇴직금을 모두 털어 창업에 쏟아부었다.


매일 같이 사무실에 틀어박혀 제품 개발에 몰두했지만, 집으로 가져오는 돈은 없었다. 나는 보험이나 아이를 위해 들어두었던 적금을 하나씩 해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먹고사는 문제조차 버거웠던 터라 내게 화장품은 사치였다. 흔히들 ‘로드숍’이라 부르는 길거리 저가 브랜드의 스킨로션을 아껴 쓰며 지냈다. 하지만 언니는 달랐다. 언니는 그때도 비싸기로 소문난 방문판매 브랜드의 화장품을 쓰고 있었다.


방판 화장품은 질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본품보다 더 화려한 샘플들을 한가득 안겨주는 게 특징이었다. 어느 날 통화를 하다 언니가 무심하게 말했다.


“민주야, 나 샘플 화장품 잔뜩 있는데 너 줄까?”

“응. 그래, 안 쓰면 나 줘.”


며칠 후 시내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헤어질 때, 언니는 묵직한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언니가 모아둔 샘플 화장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샘플이라 해도 하나하나가 귀하고 좋은 제품들이었다. 나는 그저 고맙다는 생각에 “잘 쓸게.” 하고 받아왔다.


다음 날 아침, 세수를 하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가 문득 언니가 준 쇼핑백이 떠올랐다. 화장품들을 하나씩 꺼내 종류별로 분류하고 정리한 뒤, 가장 위에 있던 샘플 스킨과 로션을 뜯어 바르기 시작했다.


역시 샘플이라도 값나가는 화장품이라 그런지 향도 느낌도 달랐다.


샘플은 서너 번만 쓰면 금세 바닥을 보였고, 좁은 병 입구는 남은 내용물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손바닥이 벌개지도록 탁탁 쳐야만 겨우 한 방울 얻을 수 있는 그 인색함이, 마치 내 처지 같아 서글펐다.


그럭저럭 그런 샘플 몇 개를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이거 뭐지? 내가 이렇게 언니가 쓰다남은 찌꺼기 샘플만 써야 하나?’ 생각하니 문득 내가 너무나 초라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형편을 아는 언니라면, 로션 하나쯤은 본품으로 챙겨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서운함이 들었다. 자기는 쓰지도 않는 샘플만 잔뜩 모아 생색내듯 던져준 것 같아, 참을 수 없이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한심한 내 처지가 싫고, 언니의 무심함이 야속해서 거울 속 내 얼굴은 금세 눈물로 얼룩졌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손등 위의 비싼 샘플 로션과 섞여 흘러내렸다. 그 시절, 내 화장대 위에는 언제나 자존감 없는 향기가 맴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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