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은하수 할머니

by JUNI KANG

은하수 할머니


내가 은하수 할머니를 만난 것은 몇 해 전 겨울이었다. 거래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계약 건도 잘 마무리됐고 급한 일도 없어서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택했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감아 도는 고갯길을 조용히 차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큰일이 날 뻔했다. 마주 오는 차도 없고 인적도 드문 고개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내 차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나는 기겁하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도 놀랐지만, 그 소리에 할머니도 화들짝 놀란 듯했다. 초라한 옷차림의 할머니는 내려가는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태워달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뒷좌석 문을 열어 할머니를 태웠다. 어디까지 가시느냐, 댁이 어디냐,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느냐고 이것저것 물었지만, 할머니는 고개만 저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2월이라 아직 추위가 산골 구석구석 매섭게 숨어 있었는데, 백발의 할머니는 빛바랜 한복 위에 걸친 스웨터 하나와 낡은 검은색 가방이 전부였다.


은하수 할머니..png


산 아래 마을에 도착해서도 몇 번이고 어디서 내리실 거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끝내 없었다. 난감해진 나는 결국 가까운 읍내 파출소로 차를 몰았다. 경찰들도 할머니에게 여러 질문을 했지만, 할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차에서 내리도록 손을 잡아 이끌어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시트를 꽉 움켜쥐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도 대책이 없기는 나와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오후 4시쯤 고개 정상 부근에서 내 차를 탔다는 것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조회 때렸으니 곧 결과 나올 거예요.”

김 순경은 흡연실 나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아마 가출이나 실종 신고를 조회하는 듯했다.

이상하게 우울한 기분에다 오싹한 한기까지 더해져 나는 점퍼의 지퍼를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어느새 오후 8시가 넘어 있었다. 인적이 끊긴 거리는 어둠에 잠겼고, 겨울 하늘에는 잎을 떨군 나무처럼 듬성듬성한 별 사이로 흐릿한 은하수가 떨리는 듯 걸려 있었다. 문득 할머니의 모습이 휑하게 빈 겨울하늘의 은하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골목 어귀의 작은 순댓국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레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배 안 고파요? 저는 배고픈데……”

할머니는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가방을 뒤져 만 원짜리 한 장을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어서 다녀오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혹시나 싶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일으켜 보니, 망설임 끝에 이번에는 조용히 따라나섰다. 윗니 아랫니 다 합쳐 세 개뿐인 할머니였지만, 순댓국 한 그릇을 얼마나 맛있게 드시던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가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김 순경이 식당으로 뛰어왔다. 큰아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예순쯤 되어 보이는 큰아들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할머니는 내 등 뒤로 숨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 순경이 상황을 정리하려 할 때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큰아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은아들이 형의 멱살을 움켜쥔 채 몸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개만도 못한 놈아, 네가 무슨 자식이라고!”

그러자 형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이놈이 누구한테 주먹질이고! 그러는 니는 어무이한테 얼마나 뜯어 갔는데?”


경찰들이 달려들어 겨우 뜯어말리고는, 피범벅이 된 손등을 닦는 두 형제를 책상 앞에 앉혔다. 작은아들과 함께 온 막내딸이라는 50대 여인이 눈물 섞인 하소연을 시작했다.

읍내에서 통닭집을 하다 망해 오갈 데 없어진 작은아들을 돕느라, 할머니는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팔아 돈을 보탰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아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리고, 산골에서 홀로 사는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줄 돈이 없다는 것이다. 남은 것이라곤 다 쓰러져가는 움막 같은 한 칸짜리 집뿐이라며, 막내딸은 우리 엄마가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며 통곡을 터뜨렸다.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눈가에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더 이상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아 김 순경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소매로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떨었다.

“……미안해유.”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이 분명 그랬다. 나는 뼈만 남은 앙상한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할머니는 은하수를 건너 멀리,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답답해 차창을 열었다. 찬바람과 함께 더욱 밝아진 별빛이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속에,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은하수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2013.09.15 (제2회 황순원사이버백일장 최우수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