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키나와 할머니의 우동

아낌으로 소문내지 않는 마음

by JUNI KANG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

12월의 아열대 기후는 낮 동안 머물던 온기마저 해가 저물며 자취를 감추었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이내 쌀쌀해졌다. 한낮의 선선했던 공기는 어느새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서늘함으로 변했고, 여행자들은 서둘러 패딩을 꺼내 입었다.


거리를 걷던 아내는 춥다며 따뜻한 우동국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마침 아까 봐두었던 작은 우동집이 생각났다.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쳤던.


가게 안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비좁았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은 고작 여섯 명이 앉으면 어깨를 맞대고 숨소리까지 공유해야 할 것 같은 카운터석뿐이었다. 손님이 앉은 뒤로는 사람이 지나갈 틈조차 마땅치 않은 공간. 그보다 더 좁은 주방 안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한 분이 느릿느릿, 그러나 멈추지 않는 시계추처럼 계속 움직이고 계셨다.


처음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 주는 생경함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무심한 듯 깊은 눈빛과 가게 안을 가득 채운 구수한 육수 냄새에 이끌려 아내와 나는 마침 난 빈자리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따뜻한 우동을, 나는 정갈하게 놓인 유부초밥을 주문했다.

잠시 후 내어진 음식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첫 국물을 들이켜는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와~! 둘이서 감탄을 했다. 정직한 세월의 맛이라고나 할까?

진하게 우려낸 국물과 탱글탱글한 면발, 그리고 달콤 짭짤하게 조려진 유부초밥에는 할머니의 굽은 손등만큼이나 깊은 공력이 담겨 있었다.

이번 오키나와 여행 중 많은 음식을 맛보았지만, 이 좁은 가게의 우동이 단연 최고였다.


감동에 젖어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얼굴엔 미소도, 친절한 인사도 없었다. 일본 특유의 과장된 친절함 대신, 할머니는 그저 묵묵히, 기계적으로 다음 주문을 준비하고 계셨다.

의아함은 이내 벽에 붙은 낡은 영업시간표를 확인한 순간 거대한 먹먹함으로 바뀌었다.


오전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내 눈을 의심했다. 무려 18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의 낭만이 깃든 심야의 별미이겠지만, 할머니에게는 하루의 4분의 3을 좁은 주방의 열기 속에서 홀로 버텨내야 하는 가혹한 노동의 현장이었다.

새벽 5시, 세상이 다시 깨어날 준비를 할 때까지 할머니는 저 좁은 주방에서 끓는 솥을 지키며 서 계셨던 것이다.

할머니의 무표정은 불친절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18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오로지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한, 일종의 ‘인내’이자 ‘생존’의 표정 같았다.


그때부터 내 안에서는 두 가지 마음이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이 맛과 할머니의 정성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찬사였다. 이만큼 맛있는 집이 이토록 작은 가게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서늘한 경고음이 들려왔다. 만약 이곳이 '맛집'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도배되고 손님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면 어떻게 될까. 할머니의 좁은 주방은 더 뜨겁게 달궈질 것이고, 할머니의 무표정은 피로로 인해 더욱 깊게 패일 것이다.

어쩌면 그나마 유지되던 할머니의 평온한 노동의 리듬마저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무엇이 할머니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일까.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드리는 수익일까, 아니면 적당한 손님들 사이에서 할머니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움직이는 노동의 시간일까.

나는 결국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이 우동집을 나만 아는 비밀의 방으로,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소중한 보물함으로 남겨두기로 한 것이다. 할머니가 더 힘들어지시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이 맛을 나만 아는 이기적인 즐거움으로 간직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누군가는 이곳을 맛집이라 부르며 계속 SNS에 소개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만큼은, 할머니가 지금의 속도로 일할 수 있도록 남겨두고 싶었다.


가게를 나오며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여섯 자리의 작은 가게. 나는 그 가게의 웨이팅이 길어지면서 할머니의 평화를 해치지 않기를 바랐다. 할머니가 오래도록 그 자리에 계셔주시길 바라는 애틋함과, 오늘 밤만큼은 할머니가 단 한 시간이라도 일찍 불을 끄고 편히 쉬시길 바라는 간절함이 뒤섞인 밤이었다.


아낌으로 소문내지 않는 마음.

때로는 찬사보다 침묵이 더 깊은 존중이 될 수 있음을, 오키나와의 쌀쌀한 겨울밤 좁은 우동집에서 느낀다.

오늘 밤도 할머니는 묵묵히 우동을 삶고 계실 것이다. 그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겨진 고단함이 부디 내일 아침의 맑은 햇살에 조금이나마 씻겨 내려가기를 빌어본다.



(2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