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될 때 잠깐 들렀다 가라."
어머니의 이런 전화를 받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행여 아프신 건 아닐까?
나는 종종 비현실적인 소망을 품는다. 머릿속 가장 은밀한 곳에 무진동, 무소음의 작고 강력한 쿨링팬 하나가 장착되어 이따금 작동하기를 바란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려 뜨거워진 머릿속을 식혀줄 수 있기를 바라며.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리는 차창 밖의 공기는 그 소망을 잠시나마 현실로 만들어준다. 찬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면 머릿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진다. 이 밤의 드라이브는 그런 냉각 작용을 위한 의식이다. 쉬지 않고 두 시간을 달려야 문막이라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나는 분명 야행성인가 보다. 밤의 정적 속을 헤매며 새벽을 맞는 이 여정을 유독 갈망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두물머리를 벗어나 어둠을 뚫고 나아갈 때, 시선이 닿는 곳은 저만치 앞서 달리는 차량의 브레이크등 몇 개뿐이다. 오른쪽 어둠 속에는 차가운 겨울 강물이 일렁이고 있으리라 추측만 할 뿐, 시야를 압도하는 것은 강 건너편의 휘황한 네온사인들이다. 이 불황에도 저 많은 호텔과 모텔들은 여전히 밤의 장막을 밝히고 있다. 그 불빛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랑이 뜨거운 열정을 남기고 떠나갔을까. 또 얼마나 많은 이별이 뜨거운 눈물을 남긴 채 돌아섰을까. 아직도 이 세상에는 남겨야 할, 혹은 풀어야 할 간절한 사랑들이 저렇게 많이도 남아있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가끔은 혼자만의 야간 드라이브가 온전한 자유를 주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든, 창문을 활짝 열고 질주하든, 그 누구의 시선이나 불편함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완벽한 자기중심적인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다. 다만, 마음껏 속도를 내고 싶은 욕망을 감시하는 카메라의 불쾌한 눈빛만 없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야간 운전은 좁은 시야 덕분에 오히려 내면의 생각에 집중하기 좋다. 실타래 풀리듯 엉켰던 많은 이야기들이 순조롭게 흘러나온다. 결국 얻을 수 있는 만큼만 얻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다.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버려야 한다"던 그 오래된 가르침처럼.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고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간 나에게 어머니는 삶은 김치만두 몇 개와 함께 직접 담근 마늘 술 한 통을 내주셨다. 그 술은 분명히 아들인 나를 위해 담근 것이리라. 식구들 중 아무도 담근 술을 즐기지 않지만, 마늘 향이 진하게 풍기는 그 독특한 맛을 나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물병에 담긴 마늘 술 한 통을 혼자 다 비우고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새벽 네 시. 오전에 있을 일 때문에 또다시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기척에 어머니가 결국 잠에서 깨셨다. 조용히 사라지려 했는데.
어머니는 나를 보시며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어쩜 그렇게 잘 자냐?"
그 짧은 한마디 속에는 긴 세월 동안의 걱정과 안도, 그리고 묵묵한 사랑의 모든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더 이상의 길고 복잡한 말은 필요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예상 밖이었다. 문막에 도착할 즈음이면 세상살이의 짐이라도 하나 더 얻어 오리라 짐작했지만, 별일 아니었다는 사실에 내심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화가 났다. 이것저것 둘러대는 모양새가 결국은 그저 아들이 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비한 용돈은 머리맡에 놓아 드렸다.
인적이 끊긴 차가운 새벽을 뚫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로소 나의 머릿속 쿨링팬이 윙윙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휴게소 자판기에서 뽑은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 사이로 별똥별 하나가 길게 궤적을 그리며 사라졌다. 그 짧은 찰나, 사라진 별똥별의 꼬리만큼이나 길고 선명한 여운이 내 마음에 새겨졌다.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아지면서, 당분간은 두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 오후 늦게, 뉴스에서는 이런 보도가 나왔다. "20세기 후반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으로 꼽혔던 서옹 백양사 방장 스님이 13일 밤, 큰 숨 한 번 들이쉬고는 좌탈입망(坐脫立亡, 앉은 채 열반에 듦) 했다."
(2003.12.15 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