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어느 초여름 날이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날도 능내리의 한적한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 속을 걷는 시간은 언제나 내게 특별한 선물 같았다.
햇살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부드러웠으며, 새들의 지저귐은 경쾌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마당에 테이블을 놓아 손님을 맞는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간판도, 세련된 인테리어도 없었다. 그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그곳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특별한 치장을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다. 마치 오래된 친구의 집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랄까.
잠시 다리도 쉬게 할 겸,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마당 구석 테이블의 의자에 몸을 맡겼다.
사실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기보다는, 이 카페가 풍기는 분위기에 잠시 젖어보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이 빚어낸 소박한 풍경이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으니 세상의 모든 근심이 잠시 멈춘 듯했다.
가만히 앉아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한 기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음악이었다. 요즘 어디를 가든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이곳에는 없었다.
카페에 음악이 없다니.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적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커피를 가지고 온 젊은 남자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뭐 불편하신 거라도?"
그의 표정은 꾸밈없이 맑았다.
"아니요... 음악소리가 없어서... 좀 허전한 거 같아요."
대수롭지 않게 던진 내 말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그냥 일부러 음악을 껐습니다."
"왜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아, 네. 특별한 건 아니고요... 이곳을 찾는 분들은 대부분 자연을 찾아오시는 거 같아서요. 음악보다는 그냥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더 어울릴 거 같아서 말입니다."
젊은 사장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뒤통수에 가벼운 전기가 통하는 듯한 유쾌한 충격을 받았다.
아, 그래. 맞아. 우리가 자연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는데.
어느새 나 자신도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져, 자연의 공간마저 인공의 소리로 채워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련된 음악이 이 풍경을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이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 떠나오지만, 정작 그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은 잊어가고 있었다.
젊은 사장은 자연이 스스로 연주하는 그 완벽한 음악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커피를 파는 사람이기 이전에, 이 공간의 본질을 지키는 문지기였다.
그의 대답을 듣고 나니, 아까까지 '적막함'으로 느껴졌던 그 고요함이 '충만함'으로 바뀌었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그날은, 은사시나무의 잎새를 일렁이며 지나가는 유월의 바람 소리를 들었다. 높고 낮은 음자리표를 그리며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들은 그 어떤 유명한 연주가의 곡보다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커피잔 속 얼음이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마저 그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더해지는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더해야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미 그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그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면 됨을 깨달은 하루였다.
그 카페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깊은 가르침을 주었다. 자연은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한 예술작품이며, 우리는 그저 겸허히 그 일부가 되어 즐기면 족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