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안주로 바라보는 나
저녁 식사는
대충 만드는 나만의 꼬치 바비큐다. 나중에 치울 일이 좀 귀찮기는 하지만 밖에서 그릴로 구워야 제맛이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다 보면 가장 쉽게 늘어나는 능력치는 까다로운 입맛이다. 또한 미국의 교외에 있는 단독 주택에 살다 보면 가장 빨리 발전하는 실력은 그릴 실력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좋은 안주가 보이면 바로 생각나는 것은 술, 해가 긴 여름 저녁, 평일, 곧 맥주.
지난 10년간 대표적으로 늘어난 것은 체중, 주름, 쥐꼬리 만한 월급이다. 물론 그것들은 줄어든 체력으로 다 바꿔온 것이다. 난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 편이지만 취하는 것은 싫어한다.
술을 마심으로써 생기는 모든 후폭풍을 싫어한다. 게다가 미국에 살다 보니 늦게 까지 술 마실 일도 곳도 별로 없어서 타의적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 30대 남자의 허세?처럼, 술 장식장, 와인 셀러 등등이 가지고 싶었고. 냉장고를 바꾸던 때에 적극 개입하여 음료 칸 서랍이 달린 모델로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지금도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고기를 살짝 재우고, 그릴을 가열한다
그 후에는 양주에 눈을 돌려 위스키, 코냑, 버번 그리고 보드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종종 보이는 양주장 과시의 전형을 따라 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한 번도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정신 차려보니 그렇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부모님들도 미국에 들어오시는 길에 술을 사 오시는 일이 종종 생겼다. 아 이렇게 해서 다들 집집마다 술이 쌓이는 거였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되었다. 그리고 파란 옷을 입은 걸어 다니는 조니는 이번 생일에 오픈하려고 아껴두고 있다. 20대에는 알코올을, 30대에는 먹어도 먹어도 또 새로운 게 나오는 맥주를, 그리고 이제는 양주를 배우려고 하나보다. 술마저도 영원히 배우는 삶인가.
살짝 밑간을 하고 꼬치를 끼운다
꼬치는 너무나도 귀찮지만 정성스럽게 끼워야만 구울 때 편하고 먹을 때도 좋다. 마치 고진감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술과 고기를 평일에도 먹는 삶을 살고 있다 보니, 늘어나는 체중과 떨어지는 체력을 보고 있다 보니, 건강상태에 대한 의문점을 달 때가 많이 생긴다. 부모님이나 선배들이 말하는 하루하루 다르다는 말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체감하게 된다. 체중을 관리하고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 밥은 먹지 않을 계획이다. 나름의 노력한 점이라고 해두자. 먹는 거만큼 다른 거에도 노력을 해야 하는데…
초벌구이를 하고 미리 만들어둔 양념장을 발라 굽는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고기와 새우의 고소한 냄새들이 진동을 한다. 함께 끼운 파프리카의 맛은 10배 정도는 맛있어졌다. 큰 파프리카 두 개와 풋고추 몇 개를 모두 썰어서 같이 끼웠다. 술을 좋아하고 냉장고에 맥주 서랍이 있고, 위스키들이 진열되어있지만, 반주 이상의 생각은 없다. 항상 그렇다. 나이를 먹은 걸까? 아마도 안주가 좋아서 술을 마신 건지도 모르겠다. 대신 맥주와 안주를 먹으면 밥 생각은 안 나서 좋긴 하다. 안쪽에서 준비하는 아내가 묻는다. 스텔라? 빅 웨이브?.. 아무거나 좋다. 안주가 좋으니.
먹자, 그리고
대략 30-40 분정도만에 술자리 같은 저녁 식사가 마련되니 자연스럽게 아이패드에 한국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켜고 나란히 앉아서 먹는다. 얼마 전 구입한 더블월 맥주잔은 올해 최고의 쇼핑리스트 중에 하나임을 아내와 공감하며, 비루해진 주량 덕에 30분 넘게 시원함을 유지해주는 맥주 컵에게 찬사를 보낸다. “예전에는 왜 이런 컵을 살 생각을 안 했을까?” “아마도 식기 전에 다 마셔서겠지. 원샷도 하고 파도도 타는데 식을 틈이 있었겠어?”. 맥주를 통해 바라보는 시간의 흐름, 내가 모르는 나의 변화를 5초쯤 생각해보다가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한마디에 시선이 끌린다. 온전히 집중하는 삶이란 어렵구나. 술을 마시지만 안주를 더 많이 먹고, 티브이를 켜놓고 옛날이야기나 하고. 아 물론, 라이너스도 한입 달라고 옆에서 시위 중이다. 평화로운 밤이다, 설거지만 남았다.
ep3.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