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inArt Jul 27. 2022

2022 교토의 여름

12년 만의 교토


12년,,.

마누라상!

여친이었던 그녀는 이제 나의 아내가 되어 내 모든 행복과 기쁨의 원천을 부지런히 공급하고 있다.

학생같이 푸르던 그녀는 자신의 새치를 발견할 때면 곧잘 쌍욕을 해대는 40대 초반의 아줌마가 되었지만, 여전한 미모와 주량을 간직한 채 나의 베스트 프렌드로 남아있다.


나!

정수리와 이마가 잘~도 넓어져 간다.

무릎도 허리도 쑤시고 무거운 짐을 보면 겁이 난다. 그래도 호환마마보다 무서워하던 공부라는 것도 이것저것하고 금연 5년 차, 운동도 열심히.

느리게 늙으려 발악 중이다.








기요미즈데라!

변한 것이 없기를 바라던 지극히 사적인 바램은 이곳에 와 생각해 보니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교토에게 12년은 그저 눈 한번 껌벅이는 그런 찰나의 시간인 것을.

돌계단과 길조를 상징하는 오렌지빛색을 입은 불당들, 세월을 겹겹이 입은 목조 본당과 사찰의 이름이 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세 곳의 물줄기

그리고 행복하게 사진을 찍고 진심 어린 기도를 바치는 사람들.

이곳은 12년 전과 같은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나름 젊었던 나는 부처님께 무슨 기도를 바쳤을까? 기억에 존재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나의 바람을 부처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셨던 듯하다.

오늘 이렇게 부부가되어 행복한 마음을 품고 이곳을 다시 찾게 해주셨으니..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두부 몇 조각의 행복!

일본 전역을 영업구로 두고 있는 지인분이 추천해 준 두부 요리 집, 오쿠탄 기요미즈.

375년 동안 영업을 해왔다고 한다. 375라는 숫자는 사실 실감이 나지 않지만, 식당으로 들어가 보니 이곳저곳에서 세월이 풀풀 넘쳐난다.

마누라상은 온 두부, 나는 냉 두부 코스를 맛보았는데, 먹는 내내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흥분의 식사를 끝내고 세월을 입은 정원을 바라보며 앉아있자니 300년이 넘는 시간이란 것은 어떤 존재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이곳을 다녀갔을 사람들, 그리고 세월에 묻혀갔을 사람들, 삶과 죽음은 이 두부 요리집보다 훨씬 오랜 시간 우리를 지켜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창업 사백 몇십 년이 되어있을 언젠가는 마누라상도 나도 세월에 묻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해 줄까? 마누라상도 나도 죽음이라는 것으로 삶을 완성하게 되겠지만 이 두부 요리집은 계속 살아있을 것을 생각하니 어이없게도 샘이 났다.


그리고 곧 '어 지금 나 행복하네?'라는 생각이 댓바람처럼 스쳤다. 아름다운 정원, 맛있는 음식, 12년 만의 교토, 그리고 부부가 된 우리와 언젠가는 완성될 우리의 삶, 분명 이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여름의 기억!

일평생    다녀간 교토를 애써 상기해 보려고  때의 단골손님은 유명한 , 맛있는 음식이 아닌 하늘이다. 당시 여행의 마지막  다녀간 기요미즈데라 주변의 어느 유명한 골목길의 끝자락에 펼쳐  있던 뭉게구름의    하늘. 여행 후에도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을 자주 보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하늘이 보고 싶었다.

실은 하늘의 모양새 만큼이나 기억에 남았는 것이 그때 하늘이 불러일으킨 생각들이다. 여행 마지막 날의 아쉬움은 일상으로의 복귀와 함께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채워짐이라고는 없었던, 밑동이 깨진 항아리 같았던 서른 중반의 나는  하늘을 정성 들여 바라보며 채워짐을 갈망했었다.


2022년 교토, 식사 후 구글맵을 보며 따라 내려가던 골목길에서 혹시 이길이 끝나는 곳이 그때 하늘을 바라보던 곳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가벼운 흥분이 찾아왔다. 그리고 좀 더 확신이 들었을 때는 꼭 그곳에 비슷한 구름 한 점이 펼쳐져 있기를 속으로 내심 바랬다.


그리고 골목길의 끝자락, 그곳에는 하늘과 구름이 있었다. 36도의 폭염을 쏟아내는 태양이 작열하고 있지만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크게 떠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곳에는 12년 전의 구름과 하늘이 있고 그들은 곧 나를 넘칠만치 채워주었다.



땀이 온몸을 흐르는 격정의 날이지만 마누라상과 손을 잡고 걸어보았다.

따스했다.


이렇게 여름의 기억과 함께 따스한 7일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http://www.tofuokutan.info











매거진의 이전글 2011. 01 18 - 2022. 06.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