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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런던에서 아트 바젤 파리까지 1편

파운데이션 카르티에

by 도쿄 미술수첩


2025 프리즈 런던에서 아트 바젤 파리까지 1편 파운데이션 까르띠에 - 예술을 위한 기계가 만들어낸 혁신적인 디자인과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의 모든 것들은 나의 한 곳에 파리에의 동경으로 자리했다.

도쿄에서 14시간을 날아 도착한 런던, 가을이 정점에 달한 레전트 공원(Regent Park)을 찾아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 2025를 관람하고 나흘 후 파리로 건너가 올해 4회째를 맞는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 파리(Art Besel Paris) 2025를 둘러보았다.


12일 동안 런던과 파리에서 글로벌 미술 시장을 대변하는 두 개의 아트페어, 서너 개의 세틀라이트 아트 페어와 네 곳의 미술관 그리고 10여 개의 갤러리 투어까지 몸살이 날 정도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팔았는데 이 기간 동안 본 작품들은 분명 수만 장은 될 것이다.


그리고 여행의 열 하루째 날, 도쿄의 집이 조금씩 그리워지기 시작할 무렵, 이번 아트투어의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한 전시와 마주쳤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모든 것들은 나의 한 곳에 파리에의 동경으로 자리했다.



2025년 10월 25일, 역사적인 개관일에 찾은 파운데이션 까르띠에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지난 10월 25일 파리의 도심 외곽에 있던 까르띠에의 본사가 시내의 중심부, 그것도 루브르 박물관의 바로 옆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공간 '2 Place du Palais-Royal' 이 탄생했다.


이를 기념하여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미술관을 공개하는 개관 기념전이 시작되었다. 이 기념비적인 오프닝 전시의 타이틀은 Exposition Générale로 40년이 넘게 카르티에 재단이 컬렉팅해 온 작품들의 대표 작품 600여 점이 공개되는 '총괄적 전시'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이 전시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어떤 아방가르드 전시보다 진취적이고 혁신적이며 아름다운 전시'였다.


이날 오프닝은 관계자와 기자들을 위한 이벤트였는데 나는 아트 바젤 파리의 VIP들 중 사전 예약을 받아 관람을 하게 되었다. 이 기념비적인 개관일에 전시를 관람하게 된 자체만으로 내게 오랫동안 행복한 기운으로 남아있을 듯하다.


이전에 14구의 몽파르나스 지역에 위치했던 까르띠에 미술관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데미안 허스트의 첫 뮤지엄 개인전이 이곳에서 열렸다는 기사를 4~5년 전 접한 적이 있었다.

당시 즈음의 데미안 허스트는 빈정 상한 짓을 자주 하는 탓에 비호감 작가 중 한 명이어서 그때 기사도 시큰둥하게 본 기억이 있는데 이번 Exposition Générale 전시는 그때와는 달리 카르티에라는 브랜드를 내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머 명품이나 쥬어리는 전혀 관심 밖이라 내가 고가의 까르띠에 반지나 목걸이를 구매할 일은 없겠지만, 이들이 아트와 자신들의 브랜드 그리고 대중을 연결하는 일련의 작업들에는 박수를 아낌없이 처주고싶다.



글로벌 최고의 미술관 루브르와 팔레 루아얄 광장이라는 최고의 입지 조건

까르띠에 현대미술 재단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파리의 한가운데 노른자 땅 위에 터를 잡았다.

주소는 2 Pl. du Palais Royal, 75001 Paris, France로 파리 메트로 M1, M7의 Palais Royal - Musée du Louvre(루브르 역)에서 하차하면 쉽게 미술관에 다다를 수 있다.


운 좋게도 내가 파리에서 숙소로 사용하던 하얏트 리젠씨 앙트와르 호텔에서 메트로 M1 라인으로 환승 없이 10분여 만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파리 1구의 팔레 루아얄 광장(Palce du Palais-Royal)에 위치해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문화부를 마주하고 있으며 오르세 미술관과 피노 컬렉션이 도보 10분 안에 위치한 파리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퐁네프도 10분 거리여서 나도 이곳을 찾은 김에 그동안 영화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그 다리를 한번 건너보았다.


이 주변에만 사나흘을 머무른다 해도 지루할게 하나 없는 곳이다.


팔레 루아얄 광장(좌) 퐁네프(우)




19세기의 전형적 파리의 건출인 오스만(Haussmann) 스타일의 외관

건축물의 외관은 상당히 절제된 모습이다.

높이는 6층으로 주변 루브르와 팔레 로열을 방해하지 않고 있으며 파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크림색, 베이지 톤의 석회암으로 마감된 외벽을 하고 있다.

1층 외곽의 석조 파사드는 균일한 크기와 모양의 아케이드로 이어지고 상층에는 베이 윈도(bay window)라고 불리는 커다란 창이 연속으로 배열되어 통일감과 균열감이 강조되어 있다.


이러한 양식은 19세기 파리 도시 건축의 통일된 경관을 위해 엄격한 규격을 실행한 결과물인데, 당시 이 정책을 시행했던 조르주 오스만 남작의 이름을 따서 오스만(Haussmann) 스타일의 건축 양식으로 부른다고 한다.



자연채광을 머금은 실내 공원을 산책하는 미술관

그런데 흥미로운 건 내부 디자인이다.

처음에 호텔로 지어지고 이후 백화점으로 사용되었다는 건물은 미술관을 위해 내부 층을 거의 허물고 중앙에 거대한 유리지붕을 설치하였으며, 베이 윈도는 과감하게 보전하여 자연 채광이 미술관의 구석구석까지 은은하게 스며들어 미술작품과 온화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과감한 디자인 덕분에 1층의 중앙 전시실에서 고개를 젖혀 천정을 바라보면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가 아닌 낙엽이 쌓인 파리의 가을 하늘이 바라보인다. 그리고 인도와 맞닿은 외부 벽면 일부에 대형 베이 윈도를 그대로 두어 미술관의 내부와 외부를 시각적으로 연결했다.


이러한 설계덕분에 미술관 안에서 밖을 보면 줄리안 오피의 작품 속 인물처럼 바쁘게 오가는 도시인들이 보이고, 밖에서는 이 창을 통해 미술관 내부의 풍경과 관람객의 모습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게끔 설계된 것이다.

미술관의 안과 밖의 경계가 잠시 사라지는 순간이 하나의 실험적인 작품으로 느껴진다.

1층 중앙 전시실에서 바라본 천정의 자연 채광


미술관의 내외부에 노출된 베이 원도



한편 자연체광이 완전히 차단되는 공간에는 다양한 설치, 미디어 작품들이 전시되어 뻥 뚫린 하나의 거대한 직사각형 공간에서 다양한 작품을 조화롭게 소화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이 미술관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중 하나는 '사라진 미술관의 벽과 관람 순서'다.

보통 미술관에 가면 큐레이팅의 의도에 의해 전시의 쳅터가 나누어지고 커다란 벽을 통해 공간을 구분하지만 이곳에서는 전시실 사이를 구분하는 벽을 최대한 억제하여 다양한 전시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이 덕분에 탁 트인 실내 공원을 산책하는 듯 걷다 보면 좌우로 머리 위로 그리고 발 밑으로 작품들이 불쑥하고는 튀어나온다. 그래서 모퉁이나 공간이 교차하는 부분에 다가서면 다음에 조우하게 될 작품은 어떤 것 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특히 하부층에는 워크 웨이가 있어 위, 아래층을 계단 없이 이어주며 그 통로를 따라 사진, 회화등 평면작품이 설치되어 있으며 반대쪽에는 하부층의 전시실의 조망이 가능하다.

워크 웨이의 벽면을 따라 설치된 작품


(좌)워크웨이와 (우)그곳에서 바라본 하부 층 전시실


멋진 미술관에서 훌륭한 작품들을 감상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이지만, 실내 공원을 산책하며 '이번 모퉁이를 돌면 어떤 작품들이 튀어나올까' 하는 가벼운 긴장감으로 미술관을 관람한다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미술관 공간에 맞춰진 큐레이팅이 아닌 큐레이팅에 맞추어 변화하는 미술관의 구조

사진 출처 - ARTnet


그런데 전시장 내부의 곳곳에 위와 같은 도르래, 체인(?)으로 보이는 기계 설비가 눈에 띄었다. 관람 당시는 이게 뭐 하는 건가? 하고 의구심만 떠 올려보고 말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카르티에 파운데이션의 내부는 층고를 11미터까지 조절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즉 전시가 바뀔 때마다 그 성격에 맞추어 내부에 새로운 층들을 조성할 수 있는 '실내를 떠다니는 미술관'인 것이다.


미술관의 내부에 설치된 5개의 대형 케이블 체인과 모터, 폴리 시스템이 이러한 '변형 가능한 공간'을 가능하게 했는데, 현지 언론들은 이를 "아트를 위한 기계(machine for art)"라 예찬하고 있다.



거장의 걸작

미술관을 돌아보는 동안 내내 '아니 어떤 천재가 이런 설계했을까'하며 생각을 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었다. 프리츠 상은 물론이고, 뉴욕의 53 타원(53 West 53), 아랍 세계 연구소(Institut du Monde Arabe)와 서울 리움 뮤지엄의 현대 미술관을 디자인한 이미 전설이 된 건축가다.


그의 설계 철학 중 하나가 "건축은 사회적이고 유용한 예술'이라는 것이라고 하는데, 파리에 새롭게 문을 연 '파운데이션 카르티에'야말로 그의 철학과 잘 맞아떨어지는 예술품이다.


'역시 거장의 작품은 품격이 다르기 마련이다'라는 짧은 문구가 몇 번이나 머릿속을 맴돌았다.



파리라는 즐거운 여독

사실 이번 유럽 아트 투어의 하이라이트와도 같았던 파운데이션 카르티에의 방문은 별생각 없이 이루어졌다.

새롭게 문을연 미술관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찼았던 이곳은 솔직히 '카르티에에서 그동안 컬렉션한 미술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이겠지'라고 평범히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나의 기대를 훠~얼씬 뛰어넘는 굉장한 것이었다.


찬사를 보내 마지않는 '아트를 위한 기계'에 의해 탄생한 떠다니는 전시장과 실내를 걸으며 마치 아트의 테마파크에서 신나게 놀다 온 경험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멋들어진 아방가르드의 전시, Exposition générale은 여정이 마무리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파리라는 즐거운 여독'에 시달리는 이유가 되었다.







다음 편은 까르띠에 파운데이션 2편 - 개관 전시 "Exposition Générale"로 이어짐

[도쿄 미술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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