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씩 아카사카에 있는 내과 의원에 가서 검진을 받는다. 심각한 편은 아니지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혈액 검사와 약 처방을 받기 위해서인데 의사 선생님이 “싸랑하는 술과 고기"를 줄이라고 하여 검사를 받기 전 사흘 정도는 수도승이 된다. 건강하려면 육류와 술을 멀리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니 노쇠해져 가는 몽뚱이를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 잘 된 일이기도 하다.
어제가 병원을 다녀온 날이었는데 평소와는 달리 좀 당황스러운 일이 생겨났다. 여느 때와 같은 간호사상이 어제는 평소보다 피를 꽤 많이 뽑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생각이 들어서
“실례지만 제가 여기 2년째 다니고 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피를 많이 뽑는 것 같네요. 아니 뭐 검사하고 남는 피는 간호사상이 마시기라도 할 건가요?” 하며 간호사상에게 좀 신경질적으로 물어보았더니 이분의 대답이 순간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앗 쓰미마셍~ 대단히 죄송합니다. 오늘은 제가 아침을 걸러서 고객님 피를 조금만 빨아 마시려고 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간호사상이 깜짝 놀라며 주사기를 떨어트려 병원 바닥이 나의 뜨거운 피로 범벅이 될까 꾸~욱 참았다. 그 대신 언제나처럼 공손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가끔 서툰 일본어로 일본 사람들을 좀 웃겨보려고 하면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하는 반응들을 본 경험이 몇 번이나 있어서 “일본인 간호사상 웃겨보기”는 오늘도 상상만 하고 그만두었다.
일본 사람들은 유머에 인색하다. 특히 '친절의 끝은 어디인가요' 하고 실험과 연구를 하는듯한 일본의 서비스업 종사자분들에게 유머는 더더욱 안 먹힌다.
마누라상과 자주 찾는 에노테카 롯폰기힐스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기 점원분 중에 S 상이라는 분이 있는데 혼자서 와인 2병 반을 흡입한다는 전설의 직원분이다. (술이 얼마나 좋으면 술 잘 마시는 사람까지 좋아할까. 무식한 놈!) 이곳에서는 와인을 팔기도 하고 병당 1천 엔에 분위기 좋은 테이블에서 고급 RIEDEL잔에 따라주는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하루는 마누라상과 이것에서 와인을 마시다가 멋진 샴페인 잔이 눈에 보여, S상에게 가격을 문의한 후 와인처럼 회원 할인 10%가 적용되는지 물어보았다.
나 : 이 와인잔도 와인처럼 회원카드로 10% 할인이 가능한가요?
S 상 : (깜짝 놀란 표정으로) 스미마셍~대단히 죄송합니만, 확인이 필요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확인을 하고 오겠습니다.
(죄지은듯한 얼굴로) 아~기다리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확인해 본 결과 와인 외 제품은 10%의 할인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히 죄송 하무니다~"
나 : 아~그렇군요. 괜찮습니다. 그럼 20% 할인으로 해주세요.
S 상 : (거의 우는 얼굴로) 네????
이럴 때마다 나는 “아 농담이에요 농담”하며 열심히 설명을 해야 한다. 일본어도 아직 어눌한데 이러다 이상한 넘으로 오해를 살까 요즘은 농담을 잘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제처럼 이놈의 농이 뇌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때가 있으니 농담을 하고 재미나게 이를 받아 쳐주는 센스 있는 간호사상을 상상하며 혼자 놀곤 한다. 웃기도 하고...
하지만 포기은 없다. 언젠간 아카사카 간호사상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듣고야 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