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과 슬기로운 의사 생활
도쿄에 돌아온 지 꼭 1주일이 되었는데 아직 해 구경을 못했다. 이번 여름 도쿄는 온통 비다. 오늘도 하루 종일 비!
마인이란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볼 때의 일인데 15회를 무려 세 번이나 보았다. 너무 재미있어 죽겠기에 가 아니라 연방을 하며 보다 보니 한 번은 15회가 시작될 때 와인이 3병째로 접어들어 드라마의 시작은 기억이 나는데 중반부터는 가물가물해서다. 두 번째로 보았을 때 역시 걸쭉해진 알코올 부부는 두 눈은 뜨여있었지만, 뇌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듯하다. 혹시나 마누라상은 기억하려나 물어보니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다. 15회의 중반부터 마지막 편 16회는 말짱한 정신으로 보게 되어 한 번에 깔끔히 끝내버렸다.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몇 안 되는 드라마라 재미나게 봤다.
마누라상은 감히 하늘 같은 지아비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단 예외가 두 가지 있다. 골프 칠 때 잔소리하는 것과 와인 마실 때 지 잔에 술을 덜 따를 때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엄격해서 난 술이 걸쭉~해져서도 내잔에 더 따르지 않으려 실험실의 연구원 마냥 날카롭게 측정을 해가며 잔을 채운다.
어제는 혼술을 하시던 마누라상이 혼자 마시니 맛이 없다며 징징 거리더니 "노리개가 놀아 주지를 않으면 뭐에다 쓰지?"라며 술 안 마신다는 남편에게 반협박을 하는 탓에 12시가 넘어서까지 충실히 술 노리개 역할을 했다.
한 번은 마누라상에게 심각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 니 남편이랑 술이랑 하나만 택하라면 어쩔 거아?”
“당연히 오빠이지 말이라고 해~” 하고 대답했으나....
난 선명하게 기억한다. 두 눈알을 늘어트린 채 1.5초간 망설이던 그녀의 얼굴을…
그녀는 술을 잘 마시는 남자를 찾다가 나를 발견한 걸까 내가 술을 잘 마셔서 ‘이놈이다 ~’하고 맘을 굳힌 걸까? 이유야 알 턱이 없지만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보다 보니 생각하게 되는 게 있다. 개그맨보다 웃긴 조정석이 간을 이리저리 잘도 옮겨가며 수술을 하는 걸 보면 '나도 간 생각을 해서 술 좀 줄이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늙어서 힘도 처지고 술도 잘 못 마시게 돼서 마누라상의 '술 노리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날에는 옆집 늙은이 취급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술 노리개도 간이 싱싱해야 할 수 있는 거예요. 아시겠지요?" <개그맨보다 웃긴 조정석 선생>
이번 주 평일은 금주와 운동으로 모더나 2차 백신 후 맛이 간 몸을 추스르고 간도 지켜야겠다.
새빨간 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