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오후 6시경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마누라상과 트렁크 가방 4개를 들고 발을 디딘 도쿄의 공기는 여행차 왔던 때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미 그때의 도쿄는 맛있는 생맥주와 스시가 있는 식도락의 낙원이 아닌 정착해야만 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5년 전 기억이지만 나는 꽤 강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마누라상에게 그런 나의 느낌을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 이미 그녀 얼굴의 그림자가 많은 것을 얘기해 주고 있어서였다.
택시에 꾸역꾸역 쑤셔 넣던 4개의 짐가방처럼 우리 자신도 낯선곳에 맞추어 꾸역꾸역 쑤셔 넣어야만 했던 도쿄 생활 1년 차의 기억을 떠올리면 우리 자신이 대견하면서도 짠하기도하다. 도쿄에 살게 되었다는 설렘이 타지 생활의 두려움보다 훨씬 컸던 그때의 기분은 잠시뿐, 설렘은 사치가 되고 심란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한참을 머물렀다.
그때 내가 할 줄 알던 일본어라고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나마비루, 메리 크리스마스~ 달랑 3개. 날이 갈수록 주눅이 들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마누라상이라고 크게 다를 게 있었으랴. 시간이 흐를수록 처져만 가는 그녀의 어깨가 눈에 선하다. 그 당시 따듯한 말 한마디와 함께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마저 궁색 맞는다고 느껴질까 몇 번을 참은 것이 미안하고도 속상하다.
그래도 도쿄는 우리를 가혹하게 내몰아 치지는 않았다. 이주 첫해의 훈련을 끝내고는 곧 팔을 열고 굽은 등을 토닥여 주었다. 마누라상은 출근길이 즐거울 정도라는 맘에 쏙 드는 새 직장을 찾아 원래 그녀가 그렇듯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고, 나도 일본어 공부에 맛을 들이고 친구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도쿄 생활은 점차 즐거움으로 변해갔고 작년에는 일본 이주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영주권도 받게 되어 이제는 이곳에서의 노후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마누라상과 얘기한다.
2016년 6월 30일로부터의 5년 후인 지금의 우리는 신의 가호이며 기적이라고,
또한 우리의 노력이고 우리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의 보살핌이라고.
5년 후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심란함은 없다.
내게는 사랑하는 마누라상이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마누라상도 있다.
2021년 6월 30일 이곳은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남국 오키나와,
기분 좋은 향기로 가득 찬 곳.
그립다. 도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