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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May 29. 2020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웹소설

웹소설 만만히 보다 식겁한 이야기

 나는 자동차 부품 공장 생산 라인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다. 그것도 어느 지방 저 구석에 위치한 조그만 하청 업체의. 격주로 밤낮이 바뀌는 교대 근무를 진행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뭐든 열심히 하지 않는 타고난 성품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계획과 열정까지 엿 바꿔먹은. '그냥 난 다 잘 될 거야, 우연히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돼서 쭉 먹고 놀 팔자일 거야' 같은 얼토당토않은 믿음까지 더해져 그동안 월급 외엔 그 어떠한 수입도 얻어보려 하지 않았다.


 6년을 그렇게 공장 일만 했는데 이제야 이렇게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름 그동안의 삶에 대한 각성이 일어난 게지. 그래서 골똘히 생각해봤다. 뭘 해서 돈을 더 벌어볼까? 부동산은 가진 돈이 없어, 주식 같은 건 당최 뭐가 뭔지 몰라. 운전면허 말곤 그 흔한 자격증도 없고. 손재주도 없어, 체력도 안 좋아. 대체 뭐가 좋을까......


 '아, 나 글 좀 쓰잖아!'


 무릎을 쳤다. 그래, 글을 쓰자. 어릴 때 작가를 잠시 꿈으로 품었던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검색을 좀 해 보니 요즘 웹소설로 인기 작가들은 어마무시 한 수입을 얻는다고?


 이거다, 웹소설. 이게 돈이 되겠구나!


 그렇게 순식간에 난 웹소설 작가가 되어 뚝딱뚝딱 완성한 데뷔작을 발표, 단번에 대박을 치며 1년에 몇십억을 벌어 들이게 될 것 임을 확신하게 된다. 기분은 그냥 좋은 정도를 떠나 이제 구름 위를 걷는 수준. 그래서 책상에 딱 앉아 열심히 소설을 썼느냐? 에이, 당연히 아니지.


 일단 곧바로 몇몇 지인에게 내 웹소설 작가 등단 예정을 알린다. 이게 순서지. 개뿔도 없으면서 뭔가 있는 듯, 나 글 쓸 줄 안다는 고상한 이미지를 남들의 인식에 심어주고자 급하게 입부터 놀려댄다.


 "나 이제 큰돈 번다. 다 계획이 있거든."

 

 "내가 인기 웹소설 몇 작품 쓱 훑어봤는데, 그거 별 거 없더라고."


  아, 이 얼마나 없어 보이는 인간 군상인가. 한심함에 절로 혀를 차게 된다. 부끄럽다 정말.


 이후 내용은 글의 부제 그대로 식겁하는 이야기다. 소설 한 작품을 완성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매 순간 깨닫는 하루하루였다. 평소에 소설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닌지라 기본적으로 얼개나 구성,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 장르에 대한 이해 등 갖춰야 할 지식과 소양 자체도 부족했다. 게다가 이야기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등의 번거로운 작업 따윈 애초부터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그냥 쓰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남들은 죽어라 쓰는 소설 작품이 짠 하고 튀어나올 거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쉽게 보고 쉽게 떠들고 했던 게 나중에 어찌나 후회스럽던지. 글을 써야 한다며 나를 다그치며 노트북 앞에 앉아도, 글을 쓰는 즐거움 따윈 온데간데없는 상황이 그저 괴로울 뿐이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어느 순간부터 이런 나에 대해 나 스스로 온갖 핑계와 변명을 만들고 있었던 것.


 야간 근무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잠들기 바쁘니까. 주간 근무 땐 퇴근하고 저녁에 집안일하고 애들이랑도 놀아줘야 되니까. 주말엔 캠핑을 가거나 아님 어디 멀리 놀러라도 가야 하니까. 시간이 없고 잡다하게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글쓰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거라는 자기 합리화까지 시도하고 앉았으니,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정말 기가 차는 노릇이다.


 결국 평소 도움을 받고 있는 심리 상담 선생님과, 나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아내의 지적과 조언으로 내 안일함과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되지도 않는 소설 쓰긴 내려놓고, 일상을 통해 보고 듣는 것들을 짧은 글로 써서 축적해 보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우연히 보게 된 이 곳 '브런치'를 공간 삼게 되었고, 다시 글 쓰는 재미를 찾아보려 하는 중이다.


 쉽게 보지 말자. 글 쓰는 게 일확천금을 가져다 줄 거라 믿는 바보 같은 생각은 말자. 조금씩, 꾸준히 쓰다 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으리란 믿음으로. 아니다. 그런 믿음도 사치야. 그냥 글을 쓰는 순간의, 혹은 하나의 글을 완성한 뒤 느껴지는 뿌듯함과 성취감만 갖고 살아도 어쩌면 충분하리라. 분명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훨씬 윤택해질 것이니.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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