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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May 29. 2020

두 발로 단단히 딛고 서서 부딪혀 보는 것

딥플로우 - FOUNDER

 

 위태롭다. 산다는 건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 평생 걱정 없이 누리고만 살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이유 없이 태어났지만, 태어난 이상 수많은 갈등과 고뇌 속에 각자의 삶을 꾸려가게 된다. 게다가 책임져야 할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나 혼자 산다’는 그저 예능 프로그램 제목일 뿐,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넘어 가족과 친구, 학교와 직장 등 여러 공동체를 꾸리며 개인의 갈등과 고뇌의 범주를 점점 더 넓혀간다. 마치 나이테처럼, 먹어가는 나이와 함께.
 
 이제 마흔 줄에 진입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린 바로 ‘삶을 사는 것’이다. 살고 있지, 예나 지금이나 살고는 있는데, 그게 ‘진짜 나’로서의 삶이었나 가 고민의 포인트다. 마흔이면 누가 봐도 어른이고, 사회의 중추이며, 자신의 영역에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된 전문가이어야 하는데, 내가 과연 그런가 싶어 돌아보면 아니거든. 떠밀리 듯 살아온 인생. 위기 앞에 맞서길 두려워하다 도망만 쳤던 순간들. 부모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 늘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고 거기에 의지해서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으려 했던 게 어느새 시간이 흘러 40년이다.
 
 그래, 돌아보니 결국 난 놀랍도록 뭐 하나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말만 어른인 어린아이로 남았다. 물고기가 징그러워 남들 다 하는 낚시 한 번 한 적 없는, 초등학교 친구들 앞에서 넘어졌던 기억이 싫어 결국 40 평생 롤러 스케이터 타길 외면해 온, 글램핑을 가서 화로대에 숯을 넣고 불을 붙여 불판에 고기를 구워야 하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말 그대로 경험 부족의 어린아이. 이러니 살고는 있는데 산 게 맞나 싶은 게지.
 
 그런 와중에 최근에 들은 '딥플로우’의 새 정규 앨범 ‘FOUNDER'가 뒤통수를 쌔게 치고 들어온다. 뮤지션으로서의 개인적 고뇌와 성취를 넘어 레이블의 수장으로서 짊어진 현실의 무게에 대한, 오롯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생생한 가사들이 13곡을 채우고 있다. 요즘 힙합 씬에 흔한 돈 자랑, 자동차 자랑, 범죄자 인 척, 마약 하는 척 대신, 책임만 늘어가는 회사의 사장이자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언더그라운드 래퍼로서 이 거칠고 험한 세상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그의 진짜 사는 이야기만으로 말이다.
 
 사업자를 냈지 이제 공식적으로
 나라에 세금 꼬라박는 사업가가 돼
 마포세무서 1층 민원봉사실에서
 로디랑 서로를 담보 잡아 사인했지
                                                 

 - 대중문화예술기획업 -
 
 잘 됐다는 말보단 부럽다는 말이 듣고 싶은 난
 돈 벌어 거품을 사고 싶은 건 아닐까
 샴페인 거품 꺼지고
 지갑을 열던 투자자는 이젠 돈 아깝다네
 이제 홍대로 돌아갈 차례
                                               

 - Dead Stock(Feat. QM) -
 
 이제 돈을 버는 거야 쉽지
 매달 금고에다 keeping
 근데 돈을 쓰는 건 더 쉽지
 넘겨보는 거야 BEP
 이제 넘겨 보는 거야 BEP
                                                             

 - BEP -

대학 때 학고 받던 내 엉성한 PPT
침 튀기며 설명한 비전은
그저 keep it real
유통투자 미팅은 대출심사 같고
매출이란 없던
우리 음악의 신용등급은 warning
TV용 가수가 없다며 곤란 해들 하네
우리 열 명에게 책정된 건
five hunnit
                                        

- 500(Feat. 최항석) -

 유행을 의식하지 않는 음악적 태도 또한 굳건하다. 808 드럼 머신 비트가 아닌, 밴드의 라이브 느낌 물씬 나는 연주가 묵직하게 그의 가사를 받쳐준다. 소울, 펑크, 블루스 같은 요즘 국내 힙합 사운드에선 멀리하는 장르 또한 반가움과 동시에 전작인 ‘양화’를 계승하는 딥플로우의 고집을 읽을 수 있다. 다들 하는 것보단 내가 잘하는 걸로, 대신 치열하게 살며 겪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뮤지션으로 뚝심 있게 살아갈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마흔이 되며 나름 마음먹고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이 ‘글쓰기’다. 나름 소질 있다 생각하고 쉽게 덤볐지만 이미 숱한 좌절을 겪고 있는 중이다. 무슨 이야기를 쓰지? 왜 잘 안 써지지? 고민하며 돌아보고 나름 얻은 대답이 바로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삶’이더라. 그래서 이제야, 뭔가를 좀 해 보고자 한다. 새로운 모험에 도전함을 최대한 주저하지 않도록 노력해 보고자 한다. 낚시도 하고, 롤러스케이트도 타고, 고기 굽는 법도 배워 보려 한다. 그래서 정말 생생하고 세밀한 나의 이야기를 담은 글로 읽는 이들의 공감을 얻고 싶다.
 
 두 발로 단단히 딛고 서서 부딪혀 보는 것. 이것이 내 인생에, 내가 앞으로 쓰게 될 글에 해답이 되어 줄 것임을 어느 힙합 뮤지션의 음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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