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버팀글 Jun 05. 2020

영화 한 편으로 일상에 균열을

킬링 디어

  불쾌한 영화. 시종일관 불쾌하기 짝이 없다. 혹시나 누군가 이 글을 통해 이 영화를 찾아봤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냐며 기분이 상하더라도, 행여나 내 탓은 말아주길. 온갖 안 좋은 느낌과 감정이 본인에게 들러붙어 떠나질 않겠지만, 분명 이 영화 불쾌하다 말했으니. 난 몰라.

  작정하고 만든 영화. 서사는 불친절하고 인물들 간의 관계는 뒤틀렸으며 음악은 평소 별로 들을 일 없는 음역대의 현악으로 불편함을 유발한다. 그리스 신화 희곡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라 그와 관련된 상징과 비유로 꽉꽉 차 있어서 영화를 보기 전이든, 보고 나서든 관련 내용을 찾아보는 게 영화를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꽤 완벽하고 완전해 보이는 미국 중산층 이상의 가정을 꾸리고 사는 심장전문의에게, 그의 감추고 싶은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한 소년을 통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이 찾아들고, 결국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는 그와 그의 가족들은 삶을 향한 집착과 본능을 거침없이 드러내다 끝내...... 그렇게 끝내 영화를 다 보게 되면 밀려오는 참담함에 한숨 섞인 쌍시옷을 아랫입술에 질끈 물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런 혼란스럽고 기괴한 정서와는 달리, 영화 자체는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촬영이 인상적. 오프닝인 클로즈업된 실제 심장 수술 신부터 점점 부감으로 멀어지는 카메라나, 인물이 이동할 시 머리보다 약간 위에서 뒤따라가는 시선들, 인물과 꽤 멀리 떨어져서, 혹은 어디 숨어있다 스윽하고 따라 들어가는 촬영 등이, 단순한 3인칭 시점을 넘어 마치 극 중 상황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이 붙잡혀 보는 이들이 억지로 끌려다니 듯 영화를 보게 만든다.  존재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인물과 그의 입을 통해 생겨나는 비극들이, 독특한 촬영 시점과 맞물리며 영화를 더 기이하고 특별하게 만든다.

 콜린 퍼렐, 니콜 키드먼 같은 명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베리 케오간이 발군을 넘어 대박. 사실 그의 연기가 이 영화 분위기에 8할 이상이다. 방향을 알 수 없는 흐리멍덩한 눈빛은 기묘함을 넘어 서스펜스를 만들 정도.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감독 이름이라는데 이름부터 쉽지가 않다. 잘 모르지만 아마도 평범치 않은 인물 이리라. 보는 내내 불편하고 보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잔상이 남아 머릿속을 침범하는 작품을 이렇게 높은 퀄리티로 뽑아낼 수 있는 자는 분명히 천재의 탈을 쓴 싸이코겠지.

 그래도 일반적인 관념이나 상식을 뒤틀어 볼 줄 아는 예술가를 통해 우리는 멍하니 있다 한 방 얻어맞기도 하고, 별 일 없는 일상에 작은 균열도 내고 하는 거니.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새로 알게 된 이 감독의 작품이 반가웠으나, 남들에게 보라고 쉽게 추천하진 못하겠다. 그저 착하고 좋은 영화 말고, 좀 다르게 엄청난 영화가 보고 싶다면 뭐 두 말할 것 없이 완전 엄지 척이고.

                      출처 movie.daum.net


작가의 이전글 두 발로 단단히 딛고 서서 부딪혀 보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