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by 일상버팀글


휴무가 연장된 동료들이 썰물처럼 공장을 빠져나가고, 남은 이들은 다시 묵묵히 자신의 밥벌이에 들어간다. 각자의 기계 앞에 서서 초록색 작동 버튼을 누르자, 낡고 오래된 공작 기계가 고함을 지르며 쇳덩이들에 구멍을 뚫기 시작한다. 잠시 조용하던 공장은 어느새 귀를 찢을 듯한 소음으로 가득 찬다. 더 커야 하는데. 더 시끄럽고 더 날카로워야 하는데. 귀마개를 비집고 들어오는 듣기 싫은 이 소음마저 오늘은 아쉽기만 하다.


내가 일하는 이 곳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몇몇 부속품들을 가공해 납품하는 재하청 공장이다. 주물 작업을 통해 대충 모양만 갖춘 쇳덩이들이 우리 공장으로 들어오면, 그것을 공작기계로 깎고 다듬고 조립 시 필요한 구멍들을 뚫은 후 곱게 포장해서 원청으로 보내는 과정을 거친다. 나는 그곳에서 격주로 밤낮을 바꿔가며 기계를 가동하는 현장 노동자다.


가공하는 부위의 아주 정밀한 수치를 요하는 작업들이지만, 사실 그 정밀한 작업은 숫자가 입력된 기계가 하는 것이고, 나는 말 그대로 기계를 도와 제품을 기계 안에 집어넣어 고정시키고, 작업이 끝나면 꺼내서 잘 가공되었는지를 각종 게이지들을 가지고 검사하는 일, 즉 하루에 정해진 수량의 제품을 반복해서 넣고 꺼냈다 검사하는 단순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다. 제품의 크기도 애매해서 기계를 가지고 들어야 할 건 아닌데, 많이 들다 보면 몸에 무리가 오고도 남는 정도. 게다가 가공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 하루에 들어 올리는 쇳덩이의 무게가 제법 된다. 공장의 많은 동료들이 손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통증을 달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 우리 공장으로 이직한 타 공장 경력자가 출근 첫날을 보내고 퇴근길에 내게 건넸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기 일은 완전 쌩 노가다네요. 이 많은 걸 어떻게 계속 들었다 놨다 합니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그저 웃기만 했고,

그는 그날 이후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아무튼 시간은 빨리 흐른다. 반복 작업은 사람을 지치게도 하지만, 때론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순식간에 가까운 미래로 데려다준다. 특히 오늘처럼 머릿속이 복잡한 날엔 더더욱. 온갖 잡생각에 빠졌다가 정신 차려 보면 시간은 훌쩍 흘러 어느새 휴식 시간이다.


두 시간의 노동에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공장 밖으로 나와 사내 식당 앞 음료 자판기 앞으로 간다. 일종의 '만남의 광장' 같은 곳. 공장의 일은 협업이 거의 없다. 홀로 자기 앞에 우뚝 선 기계를 다루며 해당 제품을 생산해 내기 위한 외로운 사투만이 일과의 대부분이다. 약간의 쉬는 시간과, 한 시간의 식사 시간에야 동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소통을 갖는다.


일을 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아니면 머릿속은 상념으로 가득한 채 그저 기계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이 긴 시간을 훌쩍 뛰어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거대하고 차가운 기계와 금속들 사이사이 간간히 보이는 인간의 형상을 한 나를 포함한 동료들에게서는, 적어도 일하는 동안만큼은 사람의 향기를 맡기가 힘들다. 그러다 찾아오는 십 분의 휴식시간 종소리에, 그제야 잔뜩 굳어있던 얼굴을 활짝 피고서 목이 마른 이는 음료수를, 니코틴이 필요한 이는 담배를 입에 갖다 댄 채 서로의 안녕과 안부를 묻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광장의 역할을 하는 자판기 앞도 휑한지가 한 달째. 두 손은 주머니에 꽂고 입은 꾹 다문 채, 딱히 눈 둘 데가 없어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다 울리는 작업 준비종 소리에 다시 걸음을 옮긴다. 공장의 바닥은 닿는 발길이 적어서인지 전보다는 깨끗하다. 경계를 위해 초록색 바닥에 그어진 노란색 라인을 따라 걸어본다. 휘파람을 불고 손가락을 튕겨본다. 헛헛함을 가리려고 의미 없는 동작들을 해보지만, 다 무슨 소용인가.


바야흐로 위기의 시대.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다를 것, 예상보다 앞당겨져 올 미래를 준비할 절호의 기회라며 말이다. 그 속에서 얘기들 하는 비대면 사회, 4차 산업혁명, 친환경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야속하게도 이 작은 자동차 부품 공장의 명을 재촉한다.


어찌 될 진 알 수 없다. 쓰러질지, 아니면 살아남을지. 분명한 건 둘 중 하나의 경계에 서 있단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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