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생명이요, 사상이며, 광명이다.
- 빅토르 위고
이것은 작은 자동차 부품 하청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이자, 평범하고 평온했던 일상 속으로 갑작스레 들이닥친 위기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지난 몇 달 간의 기록이다.
그 시작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과 우리나라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적인 확장세를 떨치기 시작한 지난 5월의 어느 날부터다.
전체 직원의 임금을
두 달 동안 5% 삭감하는 것을 자구책으로 해서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고자 합니다.
생산 부장이 뱉어낸 이 한 마디에 오랜만에 공장을 찾은 직원들의 낯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코로나 19로 인한 세계적 경제 위기로 미국 굴지의 자동차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하게 되고, 그 여파는 이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 어느 작은 자동차 부품 공장에 폭탄이 되어 떨어졌다.
지난달 중순부터 상당수의 직원들이 휴무에 들어갔고, 나를 포함한 남은 일부는 교대로 돌아가며 일주일 단위로 휴무와 근무를 병행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결국 집에서 쉬고 있다가 부장의 연락을 받고 공장에 모인 노동자들은 가슴을 철렁하고야 만다.
하지만 겉으론 다들 무거운 침묵뿐. 화를 내기는커녕 한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코로나 이전에도 매출은 점점 감소 추세였고, 간간히 임금 지급이 늦어지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래도 이 착한 사람들은 늘 말이 없다.
몇몇이 모이면 지나가는 말처럼 욕이나 하고 불만을 쏟아내는 정도이지, 절대 회사에다 대고 먼저 얼굴을 붉히거나, 나서서 답답한 현실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었다. 온 세상이 다 어렵다는데 우리라고 별 수 있겠냐며, 유례를 찾기 힘든 지금의 이 위기 앞에서도 이들의 태도는 오늘도 변함이 없다.
밀려오는 갑갑함에 고개를 숙이니 발 앞에 놓인 커다란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안에는 노동조합 창립 기념일을 맞아 직원들에게 줄 선물이 들어있다. 휴무에 들어갈 줄 모르고 그 직전에 주문한 거라 한참을 묵혀뒀더랬다. 오랜만에 다들 출근한다 해서 나눠주려고 준비했는데, 그림 참 우습게 됐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가야 할 동료들을 붙잡고 선물이랍시며 수건 몇 장 씩 나눠줘야 하는 내 처지도 그렇고.
아무런 반응도 동요도 없는 일방적인 부장의 브리핑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우르르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을 더 쉬어야 하는 동료들과는 짧은 안부 인사를 나눈다.
"언제 한 번 보자,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하게."
서로를 위한 간단한 토닥임 후, 바쁘게 공장을 빠져나가는 이들. 그 뒤로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돌아가야 할 기계들이 불 꺼진 조명 아래 우두커니 서서 작업 중지를 알리는 붉은색 알람 불빛만 속절없이 껌뻑거린다.
브리핑이 있기 며칠 전 아침, 생산부장은 급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휴무 중인 노동조합 위원장과 사무장인 나를 회사로 불러들였다. 회사의 매출은 전적으로 생산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현장에서 담당하는 사람이기에, 그가 요즘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밝지 못한 낯빛에 근심으로 가득한 표정까지 더한 채 우리를 맞은 부장의 첫마디 역시 하소연이었다.
"나도 죽겠다 정말. 이렇게 어려운 적이 있었나 싶네. 우리 같은 조그만 공장 문 닫는 건 시간문제다. 내도 집 짓고 차 사고 은행에 대출이 얼만데, 월급도 나오니 마니 하니까 내가 너네를 보고 지금 이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허허허."
횡설수설 끝에 웃어 보이는 부장에게 걸맞은 리액션을 보이긴 우리도 힘든 상황. 무슨 일로 보자 했냐는 위원장의 굳은 얼굴에, 표정을 가다듬으며 회사의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읊어놓는다.
"돈이 없단다. 이 달 말에 나갈 상여금은 고사하고 다음 주에 줘야 하는 월급도 빵꾸란다. 미국 완성차 공장들이 멈추니까 더 이상은 부품을 받아 안기가 힘들다네. 항구 컨테이너에 물건은 자꾸 쌓이는데 배가 안 뜨니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은행에 대출을 내려고 엊그제 이사님이 갔는데, 이것들이 우리 회사 사정 뻔하니 그냥 빌려주기가 곤란하다며 자구책을 만들어서 오라 했다네. 그래서 노조랑 이야기를 해 보라고 나한테 지시가 와서... 어떡하면 좋을까나?"
어떡하면 좋겠냐니? 이놈의 회사는 정말 어떡하면 좋을까? 먼저 방법을 강구하고 우리와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게 순서 아닌가? 그렇게 이 상황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부장도 난감한 듯 이야기를 꺼낸다.
"위에서는 석 달 동안 전 직원 5퍼센트 임금 삭감을 이야기는 하던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일정 부분 포기하지 않으면 월급에 문제가 생긴다니 마냥 안된다고 뻗대기도 힘든 상황. 우리의 동의가 없으면 대출 신청 서류를 작성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우리 둘이서 결정하고 도장 찍을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현재 직원들 다수가 휴업에 들어간지라, 전체의 의견을 묻기도 쉽지가 않다.
"일단 노동조합원들 포함 직원들 전원 다 회사로 불러 모으시고 지금 하신 이야기 그대로 브리핑하시죠. 거기서 이견없이 동의하면 저희도 그때 도장 찍겠습니다..."
부장은 다소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알겠다며 곧 연락해서 다 모이게 하겠다며 자리를 파했다. 무거운 얼굴로 회사를 나온 위원장과 나는 근처 설렁탕 집에 들어가 앉았다. 소주를 부르는 아침이었다. 잔을 가득 채운 위원장, 위원장이기 전에 동갑내기 친구다. 밥도 나오기 전에 디립다 들이키며 한숨을 내쉰다.
"다들 별 말 없겠지. 늘 그랬잖아 우리는. 하자면 하자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리고 오늘, 그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