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과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본관 건물 1층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회사의 전반적인 재정과 계획 실무를 담당하는 과장이 위원장과 나를 반긴다.
"어서 오세요. 늘 고생이 많습니다."
"뭘요. 과장님도 요즘 이래저래 수고 많으시겠네."
말이 어중간하게 짧은 건 셋 다 동갑인 탓. 실무적으로 만나는 탓에 말을 놓을 순 없으나, 몇 번 술자리도 갖고 하면서 그리 불편한 사이는 아니게 됐다. 그래도 회사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주로 보게 되는 터라, 이 곳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는 우리 마음은 서로 그리 편치만은 않다.
"이사님이 오늘 휴무라서, 우리끼리 봐야겠습니다."
직원 전체가 돌아가며 쉬고 있는 마당이라 회사 대표도 예외 없이 지정일에는 출근하지 않고 있다. 이래저래 갑갑한 상황이라 절로 나오는 한숨을 길게 뱉으며 테이블에 놓인 협약서를 집어 든다.
'코로나 19로 인한 임금 삭감 노사 협의서'
'삭감'이란 단어가 무척이나 거슬린다. 위원장도 같이 느꼈는지 삭감 대신 '조정'이란 표현을 제안한다. 내용은 임금 조정 금액과 기간, 그리고 향후 보전 방안에 대한 것들. 단순히 회사가 어렵다고 직원들의 희생만을 맹목적으로 요구할 순 없기에, 이후 매출이 어느 수준까지 회복되면 삭감된 부분을 보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쓰러지지 않고 이 위기를 잘 넘겼을 때 이야기. 사인을 하고 서로의 직인을 찍는 셋 다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솔직히 우리가 이런다고 은행이 대출을 해 준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굽신굽신 저희가 이렇게까지 대책을 마련했으니 돈 좀 빌려달라 해도 은행이 눈감으면 그만인 게다. 직원들 마음과 생계에 근심만 쌓이게 만든 채, 이 모든 행위가 다 헛 일이 될까 봐 두렵다.
"어쩌겠습니까, 버텨야죠. 그것 말고 다른 건 모르겠네요."
과장의 씁쓸한 한마디를 뒤로 한 채,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달궈진 불판 위에 두툼한 삼겹살을 집게로 집어 곱게 눕히기가 무섭게 기름이 튀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마치 공장에서 일할 때 가공 끝난 제품에다 대고 쏘는 에어건 소리 같다는 누군가의 농담에 일동 웃음. 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몇 잔의 소주가 돌고 돌아 다들 알딸딸한 얼굴로 또다시 잔을 부딪힌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동료들과 함께 노동의 고단함과 현실의 씁쓸함도 달랠 겸, 어느 허름한 고깃집에 모여 앉았다.
다들 회사 걱정이 앞선다. 각자가 소유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일터의 명운을 이야기한다. 뉴스를 보니 미국의 자동차 공장들이 일을 곧 시작한대더라, 곧 백신이 개발되어 코로나도 잡힐 거다는 '긍정파'와, 역시 뉴스를 보니 미국 제일의 중고차 판매회사가 부도가 났대더라,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이 악화일로를 걷는대더라는 '부정파'로 나뉘어 세계 경제와 이슈들까지 분석한다. 이어지는 대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운이 좋아 잘 넘어간대도, 앞으로 이 바닥이 예전 같진 않을 거야. 아마 자동차 구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뀔 것이고. 일은 많이 줄어들겠지. 주말에 특근 같은 건 이제 없어진다고 봐야 돼."
"미래를 대비를 해야 돼. 이 공장 바닥에서 어떻게 애들 대학까지 다 보낼래? 뭐라도 다른 걸 준비해야지. 돈이 될 만한 건 뭐든."
"함부로 장사할 생각 마라. 안에도 춥지만 밖은 시베리아 허허벌판이야. 목돈 들고 있는 거 있음 잘 쥐고 있을 생각이나 해야지, 괜히 장사할 거라고 설치다가 큰일 난다."
나이가 있는 형님들의 동생들을 향한 조언과 충고가 이어지지만, 뱉는 이나 듣는 이나 공허하긴 매한가지. 뭐 어쩌란 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저 불판 위에 올라 누운 고깃덩이 같다는, 나도 모르게 한숨 섞어 뱉어낸 얘기에 분위기는 처참해지고.
자, 자, 힘내자, 어떻게 잘 지나갈 테니 너무 걱정들 말고 한 잔 씩들하자는 다독임과 함께 술을 따르는 어느 동료의 배려 섞인 파이팅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잔을 받아 든다. 개인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이 상황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굳이 걱정하면 뭐하겠나'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 애써 좋은 생각 하나 머리에 떠올리며 잔을 채우는 그때, 우리 중 제일 막내가 한마디를 얹는다.
"형님들, 혹시 '존버'라고 아십니까?"
"좀버? 존버? 그게 뭐고? 좀비는 알아도?"
"무조건, 오래오래, 힘껏 버틴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냥 존버로 합시다!"
"그래, 그거다. 우리한테는 존버가 필요하네."
"자, 다 같이!"
"존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