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살기를 원하기에

by 일상버팀글


여러분, 요즘 고생 많으신 거 잘 압니다.
여러분이 주말 밤낮 할 것 없이 고생해서 일해 주신 덕분에,
이번 달 매출도 목표치를 수월하게 달성했습니다.


아침부터 생산부장이 직원들을 사무실에 불러 모았다. 일단 시작은 우리의 노고를 치하하는 고정 레퍼토리. 본론은 이제부터다.


"그런데 가공 불량이 너무 많아요. 이번 주에 미국에서만 두 건 터졌습니다. 물론 뭐 한 두 개 흠집 좀 난 것 가지고 트집 잡고 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빌미를 안 줘야죠.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서 쇠 깎으면 뭐합니까? 거기 현지인들 사서 선별 작업시키면 시급이 3만 원이 넘어요. 물류비에 이래저래 돈 천만 원 깨 먹는 건 일도 아니에요. 그 정도면 다행이지. 우리 회사 같은 조그만 공장 문 닫는 건 순식간입니다! 정신들 차려야죠!"


점점 흥분 지수가 높아지며 본인의 스트레스를 더 열렬히 전파하기 시작한다.


" 어제는 작업자 한 명이 하루 종일 일해서 가공한 제품 374개 전부 다 불량 나서 갖다 버렸어요.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그렇게나 많이 똑같은 불량이 계속 나고 있는대도 못 본다는 게 말이 됩니까? QC(품질관리) 부장이 나한테 와서 별 지적을 다 하는데, 내가 뭐 대꾸할 말이 있어야지. 요새 제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발 좀 부탁합시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일 해 주세요. 알겠습니까?"


부장의 간곡한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대답은 시원찮다. 일이 없어 직원들 휴무하고 매출 뚝뚝 떨어질 때는 그것대로 죽겠다더니, 일 많으면 불량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아마도 다들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 모양이다. 쳇, 맨날 우리만 갖고 그래.





공장은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기계들은 어느 하나 멈춘 것 없이 빠짐없이 돌아가고, 사람들 역시 빠짐없이 출근해서 하루를 채운다. 쉬는 시간 자판기 앞은 다시 만남의 광장이 되어 우리를 맞이하고, 점심시간 여유롭던 회사 식당 테이블과 의자들은 이제 조금 늦으면 빈자리 찾기가 어렵게 됐다. 평일 주말 밤낮 할 것 없이 공장의 조명은 항상 불을 밝힌 채, 주문받은 제품을 생산해 조달하기 위한 우리의 고단하지만 보람찬 노동을 환하게 비춘다.


나 또한 얼마 전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집을 사게 되면서, 이사할 때 이래저래 보태고자 주말 근무를 쉬지 않고 연달아하고 있다. 새삼 공장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느낀다. 내 동료들은 어떻게 1년 365일을 이렇게 일만 하고 사는지 새삼 느끼는 요즘. 하지만 일하는 양에 비하면 참으로 얼마 되지 않는 벌이다. 격주로 밤낮을 바꿔가며 하루에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 대비 통장에 꽂히는 돈은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다.


누군가 보면 배부른 소리 한다 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돈 주는 공장이 지방에 잘 있지도 않다며, 보너스도 있고 푼돈이지만 명절이라고 떡값도 주고, 임금을 협상할 수 있는 노동조합까지 있는 재하청 공장이 그리 흔한 줄 아냐며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 바닥에 특별한 기술자도 아닌데 별 탈 없이 벌써 7년째 일하는 중이니 말이다. 심지어 여기 오기 전에는 돈도 제대로 못 벌었다.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했는데도 한 달에 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불안정하게 벌어왔었다. 가장으로서 적어도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남들의 어림 반푼 어치만큼도 못하며 살았더랬다. 그때에 비하면 확실히 배부르긴 하다. 전보다 나와 내 가족을 훨씬 배 불리고 따뜻하게 해 주는 고마운 일터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불만이다. 최저시급보다 고작 일이백 원 많은 돈. 우리의 매해 임금 협상은 최저임금이 얼마나 인상되느냐가 관건이다. 그 이상의 인상이나 더해지는 복지 따윈 기대하기 어렵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최저임금이란 말도 참 뭣 같다. 그래, 최저임금 좋다. 그럼 최고 임금은 왜 없나? 어떻게든 덜 주려는 제약만 있고, 더 많이 받아가는 데 있어선 그 어떤 한계도 없다. 매년 반복된다. 제일 많이 받아가는 이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최선을 다해 최저임금을 묶어놓고 그 이익을 공유한다. 최저임금 적용자들은 그 적용분을 통해 더 많이 벌어가는 이들 쪽은 쳐다도 못 본 채, 서로들 너보단 내가 더 많이 벌어야겠다며 아우성치기만 반복하는 구조. 그렇게 내년엔 올해보다 시간당 130원을 더 받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 나의 고마운 일터, 소중한 직장. 이 곳은 올해를 끝으로 주말의 특근이 사라진다. 주 52시간 노동시간 엄수가 일종의 법적 유예를 끝내고 내년부터는 무조건적으로 시행됨에 따라서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1년 동안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어떻게든 일해서 몇 푼이라도 더 벌어갔던 이들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일을 적게 하는 것, 대환영이다. 언제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52시간도 많다. 48시간, 36시간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곤두박질친 노동의 가치는 그대로 처박아 둔 채 오로지 시간의 단축만 강요한다면, 이 땅의 어떤 최저임금 노동자가 이를 반길까?


이런 변화를 목전에 두고 내년 최저임금이 역대 최저 인상폭을 기록한 것이다. 말 그대로 '최저 최저임금'이다. 서글프다. 월급날인 어제는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지난달부터 주말을 일터에서 보낸 대가다. 나와 내 동료들은 이번 주도 토요일 저녁까지 출근해 일요일 아침에야 한 주를 마무리할 것이다. 누구든 주말까지 나와서 일하는 게 좋겠냐마는, 모두가 어떻게든 주말에 나와 일하고 싶어 한다. 개인의 선택이다. 일하기 싫으면 집에 있어도 된다. 하지만 주말 특근이 없는 한 주의 벌이로는 생계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는 게 공장 노동자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위기 속에 쓰러질 것 같던 회사가 살아나고, 다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을 하고 돈을 벌어가게 됐다. 하지만 열악한 작업환경, 노동강도 대비 결코 많지 않은 임금, 자동차 산업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들은 코로나 시대 이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런 타이밍에 나는 이전보다 현실을 직면하고 보다 더 잘 살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의 현실이 더 갑갑해져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뭘 해야 할까? 가장으로서 어떻게 해야 안정적인 미래를 도모할까?






당신 글 쓰는 거, 그래서 쓰는 거 아니야?
지금보다 더 잘 살려고 말이야.


식탁에 앉아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한숨을 섞어가며 맥주 캔을 홀짝이는 내게, 맞은편에 앉아 내내 웃기만 하던 아내가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정답이 나오자 나 역시 따라 웃을 수밖에. 그러게, 나는 길을 생각해뒀는데 말이야. 물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고, 결코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믿어보고 싶다.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풍요롭게 해 줄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막연히 상상하고 그리기만 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코로나 19가 안겨줬던 공포는 어마어마했다. 한순간에 일터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나를 비롯한 동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미래에 대한 보장까진 바란 적도 없는 이 작고 힘없는 공장은, 이제는 우리의 오늘조차 장담할 수 없다며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중이다. 그래도 아직 그 누구도 쓰러지지 않았다. 공장도, 우리도, 아직은 말이다. 그리고 내 옆에는 '글'이 남았다. 코로나가 할퀴고 간 위기의 생채기가 한바탕 지난 뒤에야,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을 씀으로써, 더 잘 사는 노동자가 되려 한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소회를 글로 옮겨보려 한다. 이 책은 그 시작으로서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준다. 짧고 어설프지만, 하루 10시간의 육체노동 속에서 조금씩 짬을 내고 정성을 내어 쓴 글들이기에 무척이나 귀하고 소중하다. 반드시 지금보다 더 잘 살아서, 그 과정을 함께 걸어갈 나의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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