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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Sep 25. 2020

차를 향한 마음

시기와 질투, 동경과 부러움을 넘어



어서 와 포르쉐는 처음이지,
yeah I bet that
1억짜리 SUV white skin,
fat ass
배낭 메던 대학생에서
이제는 랩 베테랑
이라 말해 페나메란
나의 next step



 일리네어 레코즈'의 '가'라는 곡의 도입부 랩 가사다. 공장 일을 시작하고 몇 달 뒤 옵션 하나 없는 깡통 국산 준중형 세단을 중고로 구입했더랬다. 출근길에 이런 힙합 음악을 틀어놓고 내 별 볼 일 없는 차를 마치 몇 억 짜리 슈퍼카로 여기며 허세 넘치는 핸들링을 구사하곤 했더랬다. 한심하지 애도 아니고. 그런데 그게 참 뭐랄까,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피곤에 쩔은 얼굴로 야간 근무를 위해 공장으로 출근하는 현실과의 괴리에 자괴감이 들 법도 한데 말이다. 고급 외제차에 손목에 찬 몇 천만 원짜리 시계를 자랑하는 노랫말을 따라 흥얼거리며 마치 내 얘기인 것처럼 으쓱거렸다.


 일단 '차'라는 재화를 좋아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저 그런 차 말고 비싸고 좋은 차. 좋은 집보다 좋은 차다. 남자들의 공통적인 성향이라고도 하던데 아무튼. 다만 그냥 비싸고 좋은 차만 좋아하는 거라 정작 차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다. 엔진, 부품, 원리, 점검, 수리 같은 차의 속성이나 운용하고 관리하는 것 따위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대신 차의 가격, 옵션 사양, 디자인, 판매량, 출시 시기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 승차감 보단 하차감이 중요하고, 외제차는 돈이 아닌 용기로 사는 거란 말을 진리로 여긴다.


 그래, 나는 속물이다.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 면허를 늦게 딴 편이라 운전경력이 그리 길지 않은 게 이유일 수도. 아무튼 차를 몰고 어디로든 이동하는 과정이 좋다.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에 반복되는 출퇴근길에 운전하는 그 시간마저도 좋아한다. 날씨가 좋으면 창밖으로 보이는 그 화창함이 좋고, 비가 오면 나름의 그 운치가 좋다. 도시의 화려한 밤거리도, 시골길의 유유자적 한 자연의 풍경도, 내가 모는 차를 통해 만끽하는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한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지만, 가족과 함께일 때도 차는 너무나 소중하고 편리한 공간이자 수단이다. 특히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옆에 앉은 아내와 평소에 나누지 못한 속 깊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주고받아진다. 여행의 피로에 지쳐 잠이 든 아이들을 룸미러로 바라볼 때, '오늘도 아빠가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줬구나' 하는 생각으로 흐뭇해진다.


  하지만 그 좋은 모든 순간들을

  더 비싸고 좋은 차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는데 저 옆에 커다란 SUV 한 대가 눈에 확 들어온다. 평소에 저거 진짜 사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그 차였다. 작년부터 캠핑을 시작하게 되면서 지금 타고 있는 세단보다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대형 SUV로 차를 바꾸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올해 집을 사게 되면서 이래저래 큰돈 쓰기가 어렵게 돼버렸다. 대도시가 아닌지라 평소에 길에서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내 이웃 중 누군가가 이 차를 샀구나! 남의 차 앞뒤 양옆을 한참 살펴보며 부러움과 배아픔을 동시에 느끼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서 있었다.


 그보다 더 최근인 지난 주말, 대형마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맞은편 라인에 차를 세운 그리 친하진 않은 지인과 맞닥 드렸다. 전날 아내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새 차가 출고됐단 게시물을 보고는 속으로만 흥칫뿡을 날렸더랬는데, 어떻게 그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차를 마주 보며 자리한 채 이리 만날 수 있는지. 차에서 내리기가 싫을 정도로 기분이 상해버렸다. 그 순간 나는 시기와 질투가 범벅이 된 채, 번쩍거리는 카본 메탈 그레이 컬러의 고급 세단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진짜 속물 중에 속물이다.


이게 뭐라고 사람을 이리도 찌질하게 만드는가...





 

 아닌 척하고 살았다. 나는 그런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인간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포장했다. 속으로는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집, 많은 돈을 쉴 새 없이 원하면서, 겉으로는 초월한 척, 돈 따위 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걸로는 내 속성을 감추기엔 방어막이 약하다고 여겼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이들의 욕망을 조롱하고 나무랐다. 돈이 뭐가 중요하냐? 주말에 나와 일해서 버는 푼돈보단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게 옳지. 그게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빠지. 그러면서 보란 듯이 주말에 어디로 놀러 갔다 왔음을 자랑하고, 이래저래 돈 좀 썼다며 여유로운 척 굴어댔다. 그래서 실제로 공장에서 제일 일 안 하기로 명성을 날렸으며, 그래도 씀씀이가 적진 않은 것처럼 보이니 동료들은 내가 집에 쌓아둔 돈이 많을 거라 여겼고, 그런 시선을 즐겼더랬다.


 이제 좀 솔직해지기로 했다. 적어도 나 자신은 속이지 말아야지. 예전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고자 마음먹으면서 나 스스로가 달라짐을 느낀다. 무탈하게 자라온 환경, 괜찮았던 초년운, 좌절 없이 커 온 내 인생의 전반은, 나이 마흔의 다 자란 사내를 세상 물정 모르는, 낯설고 어려운 것들과 부딪히기보단 피하는 방향으로만 끌고 왔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 움직일 줄 알아야겠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더 풍요롭기 위해 결핍을 감내할 줄도 알아야겠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의 삶을 일구는 과정을 폄하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내가 갖고픈 걸 가진 이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샘솟는다. 나는 원래 다른 이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을 줄 아는 성인군자 같은 인물이라 여겼는데, 그동안 사실 안 그런 척 나를 누르고 살았던 게지. 욕망에 솔직해지고, 가진 이들을 부러워할 줄도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시간을 쓰고 노력도 기울일 줄 알아야겠다.


 그렇게 멀지 않아 벤츠 정도는 타 보리라 마음먹는다.



 내 차
에 올라타
볼륨은 높이고 지붕은 내려가지
Let's ride
다 올라타
Double R
lamborghini
and Ferrari
확 갈 때까지 가 가 가 가 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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