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데드, 그리고 라스트 오브 어스 part 2
글의 제목은 엊그제 '워킹데드' 아홉 번째 시즌의 어느 에피소드를 보다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다. 정확히는 '사람 인'자 말고 더 거친 단어를 썼겠다. 뭐랄까, 드라마 속 인물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딱히 재는 게 없다. 세상의 종말 속에 참혹하게 맞이하는 그들의 죽음을 표현함에 있어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한참 감정을 이입해서 애정 어리게 지켜보던 인물들이,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참혹하고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을 맞으며 극 중에서 퇴장할 때마다, 밀려오는 당혹감과 허무함에 기운이 빠지기 일쑤다.
최근에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우리나라 드라마 '스위트 홈' 시즌 1을 몰아봤다. 갑자기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형상화 한 괴물로 변하게 되고, 일대 혼란 속에 오래된 아파트 건물에 고립된 이들의 생존기를 다룬 이야기다. 나름 제대로 된 크리쳐물을 표방한지라 표현의 수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살점이 뜯기고, 피가 솟구치는 상황이 반복된다. 앞서 얘기한 워킹데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특수효과와 분장으로 이야기에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아무리 잔인한 장면의 범벅이더라도, 이야기의 주축이 된 인물들의 죽음에는 장엄한 음악과 함께 슬로우가 걸려줘야 제 맛이다. 슬퍼하는 이의 품에 안겨서든, 홀로 남겨져 죽게 되든, 어떤 상황이든 비장하고 숭고한 분위기 속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의 유언은 빼먹지 않는다. 입에서 피를 뿜고 숨이 곧 넘어가지만 어떻게든 남은 이들을 향해 한 마디 남기고 죽을 수 있는 것이, 이야기를 끌고 온 인물을 향한 시청자들의 애정을 대우하는 전통적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워킹데드에는 그런 부분에 있어 무자비 한 점이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주인공의 비장한 죽음, 영웅의 액션이나 희생을 통한 해피엔딩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 죽음은 그저 순식간이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때가 되면 그간의 비중이나 호감 따윈 아무 상관없이 무참한 마지막을 맞는다. 뒤돌아 보는 순간 좀비에게 물어 뜯기고, 한 걸음 내딛을 때 적의 흉기에 목을 베이고 만다. '아, 이거 죽겠는데?' 하면 죽고, '설마 죽겠어?' 해도 죽어나가니, 그저 보는 이들은 어안이 벙벙하기 일쑤다.
문명이 파괴되자 오직 힘으로 자신의 생존을 지켜야 하는, 말 그대로 원시사회가 돼버린 세상에서, 서로의 연대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개인이나 집단 간의 투쟁을 다룬 이야기라 보면 되겠는데, 그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이 양인들이 다루는 폭력의 정도와 극단적 설정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콘텐츠로 PS4 게임 타이틀인 '라스트 오브 어스 part2'를 꼽을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수위 높은 폭력 묘사로 명성이 자자하다. 차이점이자 비교우위라 할 수 있는 점은, 단순히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진행해 나간다는 게임의 특성 때문이다.
전작인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는 일종의 '부성애'가 극의 중심요소가 될 수 있겠다. 주인공 '조엘'은 좀비가 창궐하던 그날 밤, 대피하는 도중에 딸을 잃고 만다. 한참 시간은 흐르고 격리 사회에서 밀수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엘은 '엘리'라는 소녀를 저항단체로 데려가라는 임무를 맡게 되고, 그 과정 속에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그 속에서 조엘의 엘리를 향한 부성애가 생기게 되고, 잘 만든 명작 게임의 대단한 몰입감까지 더해져 몇 번을 눈물 쏙 빼며 플레이 한 기억이 있다.
속편은 일단 '복수'에 관한 이야기. 극 초반 엘리의 눈 앞에서 '애비'라는 여자에게 조엘이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전작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갖고 플레이를 시작한 게이머들은 시작부터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조엘의 죽음 직전까지 게이머가 패드를 쥐고 조작한 인물이 바로 애비였던 것. 이후에도 게이머들은 조엘의 복수를 위해 애비를 추적하는 엘리와, 자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조엘을 죽인 뒤 자신의 조직에서 점점 위태로운 상황을 맞게 되는 애비를 번갈아가며 플레이하게 된다.
그 일련의 과정은 게이머들에게 상당한 피로감을 안겨준다. 두 주인공 각자의 분노 가득한 복수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정점에 오른 기술력으로 구현해 낸 게임이다.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서 맞닥드리는 좀비 크리쳐들과의 액션은, 그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는, 결국 게임의 마지막에 밀려오는 그 치열했던 복수의 예상치 못한 허무함을 맞이하는 순간 진이 다 빠져버리고야 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하여튼 자비라곤 없어, 이 망할 양ㄴ......"
두 작품이 정말 지독하다 일컬을만한 진짜 이유는, 바로 살아남은 이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참담하기 그지없는 설정들이다. 좀비가 사람을 뜯어먹는 세상이니 그림이 잔인하고 자극적인 건 말할 것도 없는데, 끝 간 데 없이 몰아붙이는 설정이 너무 충격적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고 하면 여지없이 그렇게까지, 아니 그 너머까지 해 버리고 만다. 우리가,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쉽게 용인될 수 없는 내용들을 그냥 툭하고 던져버리는데,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가 어떤 이유로, 혹은 급작스러운 사고 때문에 서로를 죽게 만들거나, 혹은 반드시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상황을 이가 갈릴 정도로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문장으로 차마 옮기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설정들이, 오백 년 조선 시대 유교 사상이 깊이 새겨있는 한국인인 내가 편히 받아들이기에는 마냥 편하지만 않았더랬다.
어쨌든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온갖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좀 더 현실감을 부여하는 건 아무래도 우리보단 저들이다. 저들의 이야기에는 확실히 거리낌이 덜하다. 듣기에 불편하고, 보기에 불쾌한 소재와 표현들을 거침없이 들이댄다. 그리고 그런 양인들의 방식은 무자비하게 내 멱살을 잡고 흔들며, 마치 나를 가르치려 들 것처럼 군다.
"야, 똑바로 봐라. 이게 진짜 세상이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