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낙원의 밤'을 보다가
이십 대 초반 어느 해 명절날 저녁, 고향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혼자 걸어가는 중이었다.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간판들을 거의 지나쳐 갈 때쯤, 저 앞 건물 이층 주점 계단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뛰어내려 오더니 주차된 검은 세단 앞에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섰다. 뒤이어 모두의 '형님'으로 보이는 편안한 차림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내려와서는 동생들의 허리가 꺾이는 인사를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차가 움직이자 그제야 굽혔던 허리를 펴는 무리 중에 내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얼굴, 그는 중학생 시절을 잠시 함께 보냈던 친구였다.
작은 키지만 다부진 몸, 웃음은 해맑았지만 가끔씩 번뜩이는 눈빛이 매서웠던 친구. 속된 말로 '깡다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학교에서 싸움 잘하기로 유명했던 녀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그와 같은 반이 되었고, 서로 결은 달랐지만 녀석은 나를 좋아했다. 당시 반장이던 내게 녀석은 나름의 인정을 표했고, 나 역시 존재감이 상당한 녀석에게 밉보일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평소에는 유쾌하고 재밌는 캐릭터였기에 대부분 친구들과 잘 지냈다. 하지만 한 번 눈이 돌아가면 주저 없이 주먹을 날렸던지라 다들 어울리면서도 어려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과 다른 반 친구가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어났다. 교실 뒤에서 투닥거리며 시작됐지만 곧 일방적인 폭행으로 바뀌었다. 녀석은 중학생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현란한 스텝을 밟아가며 동시에 주먹과 하이킥을 날려댔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막아내기 급급하던 옆 반 친구는 이내 코피를 쏟으며 주저앉았고, 그렇게 싸움이 끝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녀석은 교실 한편에 놓인 대걸레 자루를 손에 쥐고는, 일어서는 상대의 뒤로 달려가 있는 힘껏 휘둘렀다.
'퍽'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친구가 쓰러졌고, 지켜보던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위 높은 폭력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우리를 뒤로 한 채, 녀석은 그대로 가방을 들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게 내가 본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참 학교에 나오지 않더니 자퇴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우리의 기억에서도 녀석의 존재는 점점 잊혀져갔다.
그렇게 몇 년 만에 다시 본 녀석은 폭력 조직의 일원이 되어 이십 대를 보내고 있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그는 무리들과 함께 곧 사라졌고, 나 역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집을 향해 옮겼다. 뭔가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던 기억. 그랬구나. 결국 저렇게 됐구나. 안타까움과 걱정이 밀려왔다. 좀 더 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절로 한숨이 나왔더랬다.
넷플릭스로 최근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을 보다가 문득 그 녀석이 떠올랐다. 영화는 제주도에서 건달인 남자와 시한부 여자가 만나 나누게 된 짧은 우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하지만 폭력으로 점철된 그들의 삶은 예정된 비극을 피하지는 못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피하지 않는다. 영화는 누아르 장르의 현실성에 위에 낭만을 덧입힌 판타지물이다.
밤거리에서 녀석을 목격한 그날 이후로 얼마나 저런 생활을 더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마흔 하나가 된 지금은 어쩌면 동생들에게 인사를 받으며 고급 세단에 오르는 형님이 됐을 수도 있겠다. 그 과정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있겠고, 동료들과 의리를 나누며 승승장구하는 건달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돼먹지 않는 그딴 성공 스토리 따위에 그래도 한 때 친구라 불렀던 녀석의 행복을 기대해 보지는 않으련다. 부디 마음 고쳐 먹고 다른 삶을 살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영화 속 '태구'의 현실처럼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자신의 생활로 인해 파괴당하고, 철썩 같이 믿었던 관계에 배신당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 날, 부러진 대걸레 자루를 내던지며 복도를 가로지르며 뛰어나가던 녀석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굳이 학교를 그만둘 필요는 없었다. 징계를 받고 용서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게 뭐가 그리 두려웠을까? 아니면 애당초 그만두고 싶었던 걸까? 친구였지만 나는 녀석에 대해 그때도 지금도 아는 게 없다. 부디 영화처럼 말고, 현실을 살고 있길. 우리와 더불어, 누군가와 나누며 함께 살고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