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정녕 내 아들이 맞느냐?
야간 근무를 마친 퇴근길.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하는데 큰 애한테서 전화가 온다. 아마 엄마랑 동생이랑 한참 학교 갈 준비 중일 텐데 왜 전화를?
"어, 아들. 무슨 일?"
"아빠, 식탁에 내 독서감상 노트 올려놨거든. 엄마가 잘 썼다고 아빠한테도 보여주라고 해서 두니까 꼭 읽어보고 어땠는지 톡으로 얘기해 줘."
녀석, 아빠의 칭찬이 고프구나. 알겠다, 기대된다 얘기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9살 초등학생인 아들은 여전히 엄마 아빠의 칭찬에 목마르다. 집에 도착해 주방 식탁에 놓인 노트부터 손에 집어 들었다. 잘 썼네. 대단히 특별한 건 아니지만 괜찮은 문장이었다. 글쓰기에 대단한 소질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래도 국문학을 전공한 엄마의 담백하고 따뜻한 글쓰기와, 나름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까진 손에 거머쥔 아빠의 유전자 조합이면 뭐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내심 기대만 하는 정도랄까?
꼭 감상을 톡으로 남겨달라는 당부가 떠올라 스마트폰을 열었다. 장난기가 괜히 발동한다. 조금 과하다 싶은 분석을 곁들인 칭찬과 응원을 전송했다.
아들의 재능과 관련해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것은 따로 있다. 어느 날 아들이 자기가 게임하는 걸 한 번만 봐 달라며 스마트폰을 들고 와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이 나이 때 아이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부모가 알아주고 함께 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것은 아이들의 것인지라, 마흔이 넘은 꽉 막힌 어른의 흥미를 끌기란 쉽지가 않다. 세상 귀찮다는 사인을 아들에게 한 껏 풍긴 뒤, 이번만 특별히 너의 청을 들어주겠노라며 마지못해 시선을 아이에게 옮겼다.
곧바로 게임이 시작되자 요란한 음악이 시작되고 화면 상단에서 수많은 4방향 화살표가 엄청난 속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그 속도보다 우리 아들의 손가락이 더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닌가? 화살표가 도착 지점에 맞닥드리는 순간과 음악의 리듬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모양인데, 아들의 손가락이 그것에 정확히 일치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일치하며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 내 눈은 그 정확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의심이 일었다. 아이의 손가락은 게임의 의도와 달리 그냥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게임이 끝나자 나는 곧바로 아들에게서 스마트폰을 넘겨받았다. 내가 직접 해 보기로 했다. 방금과 똑같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곧이어 화살표들이 쏟아지자 나는 거기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인다고 움직였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음악이 멈추며 게임이 끝나버렸다. 나의 스코어는 그냥 '실패'였다.
그제야 아들의 실력이 진짜임을 믿을 수 있었다. 다시 아들에게 폰을 주고 다른 몇 곡을 플레이하며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속도와 리듬감이었다. 혹시 다른 친구들도 너처럼 이렇게 잘하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자기가 압도적으로 높은 스코어를 기록한다며 배시시 웃었다.
순간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가 못하는 것을 아들이 잘한다는 게 어찌나 기쁘던지. 물론 아이의 동체 시력이나 손가락 유연성이 어른인 나보다 훨씬 좋겠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 이런 리듬 게임을 잘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원체 뻣뻣하고 리듬감 없는 나는 이런 게임은 항상 젬병이었다. 운동 신경 딱히 없어 보이는 아들이 나를 많이 닮았다고 평소에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발견은 내게 제법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그깟 게임 잘하는 거에 뭐 그렇게까지 의무 부여를 하느냐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이건 분명 괜찮은 소질 이자 자랑할만한 능력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 똑똑함은 순발력이 필수 요건이고, 그것이 빠른 판단으로 작용해 위기관리능력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몸으로 리듬을 타는 것도 자연스럽게 타고났다는 점도 나름 살아가는데 굉장한 플러스 요소다. 무엇보다 리듬감은 나에게 있어 예전에 노래하며 살던 시절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결핍이자 갈망이었다. 언젠가 아들이 관심 있어한다면 드럼 연주를 권해 봐야겠다.
그러고는 며칠 뒤, 문방구에서 산 발목 줄넘기를 처음 해 본다더니 곧 리듬을 타며 사뿐사뿐 넘어대는 아들의 모습을 집 앞 쉼터 벤치에 앉아 지켜보며 아들이 나 같지만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왠지 모르게 짜릿했다. 이런 게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 같은 건가 싶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배시시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