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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Aug 27. 2021

폭력의 굴레

방관자로서 용서를 구하며


  그는 앞에 선 스리랑칸을 향해 갖은 욕을 쏟아낸 뒤, 그래도 분이 안 풀린 듯 바닥에 놓인 파란색 빈 절삭유 원액 통을 있는 힘껏 발로 차 버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튀며 나뒹구는 깡통을 따라 공장 안 다른 모두의 눈길이 모이지만, 어느 하나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그냥 너네 나라로 가라고 이 새끼야!"

  소란이 잦아들기 무섭게 끝내 한 마디를 더 날리더니 그는 휙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스리랑칸은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자신 앞으로 쏟아진 모욕적 언사를 그는 과연 보고 듣기는 한 것일까? 놀랍도록 차분하고 고요한 그의 커다란 두 눈은 자신을 등진 채 멀어지는 관리자의 뒷모습을 조용히 응시했다.



  언젠가 폭언과 추행을 일삼는 한국인 공장 관리자가 야간 업무 중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린치와 고문을 당하는 내용의 짧은 소설을 써 본 적이 있다. '무덤덤한 폭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몹쓸 짓을 행하고, 피해자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그것을 받아들이며, 주변인은 그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기고 마는, 이는 실제로 내가 일하는 곳에서 종종 목격했던 일상이었다.


  화를 내야 했다. 달려가서 그 한국인 관리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감당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 여기며 애써 모른 체했다. 심지어 관리자가 내게로 다가와서 저 영악한 놈들은 불리할 땐 꼭 말귀 못 알아먹는 척을 한다며 씩씩거릴 때, 나는 그의 말에 동의라도 한다는 듯 씩 웃어주고 말았다.


  뒤돌아서서 유유히 떠나가는 그의 등 뒤에다 대고 있는 힘껏 속으로 쌍욕을 날려보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런다고 내 비겁함이 감춰지지는 않는다. 늘 그래 왔다. 부당한 경우를 목격하고도 나서서 바꿔내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다. 평온한 얼굴로 어떻게든 외면하려 드는 나를 보기가 싫어서, 애초부터 나는 화가 없는 사람이라 여기기도 했다.




  군 복무 시절, 갓 일병이 되었을 때였다. 점호가 끝나고 잠자리에 든 불 꺼진 내무반 한 구석에서 제일 고참이던 병장이 자기 관물대 앞에 기대고 앉아 특유의 더듬거리는 말투로 침상 아래 서 있는 후임 상병에게 말했다.


 "야, 기, 기, 기역, 니은, 디, 디귿, 리을 쭈, 쭉 끝까지 해, 해봐."


  상병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한글 자음을 순서대로 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발음은 병장의 그것보다 나빴다.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자 병장은 미간에 주름이 잡으며 아까보다 조금 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기역, 니, 니은, 디그, 귿, 리을 이 새끼야 제대로 소리 안 내?"


  하지만 상병이 우물쭈물 제대로 하지 않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던 병장의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가 상병의 배를 발로 차며 밀어버렸다. 그 갑작스러운 충격에 무방비로 서 있던 상병은 억 소리를 내며 반대쪽 침상까지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상병은 용수철처럼 재빨리 튀어 올라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 섰다.


  "가, 가나다라마바사, 사, 아자차, 차 다 해 봐. 해 보라고."


  병장의 목소리에 증오의 감정 같은 게 섞여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나지막했다. 상병은 그저 멍한 눈빛으로 조금씩 입을 열었지만 얼마 못 가 말려버렸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걸어야 할 길을 걷는 오랜 고행자처럼 묵묵히 다음 순간을 맞이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내무반 바닥 위로 엎어졌다.


  말을 더듬는 병장은 자기 위 선임들에게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금 자기가 상병에게 가하고 있는 폭력을 똑같이 겪어야만 했다. 배움의 정도도 짧은 편이고 긴장하면 특히 말을 더듬다 보니, 어느 정도 선임 자리에 올랐는데도 그만큼의 권한과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군 생활 대부분을 보내온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자신이 내무반 맨 윗 선임이 되자 마침 자기 밑에 자기와 같은, 아니 그에 비해 더 심한 언어장애가 있던 상병을 향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식의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 자기의 원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약자를 향해.


  그 지독한 광경을 그들보다 계급이 낮은 나를 포함한 후임들은 눈을 질끈 감고 못 본 채 해야 했다. 아무도 나서서 병장을 제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이 끊을 수 없는 폭력의 굴레 속에 이미 갇혀 있었다. 저 병장이 그의 선임들로부터 갖은 모욕을 당할 때, 이들 중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가 저러는 걸 우리가 말린다는 것은, 이 폭력의 역사 속 엄연히 존재하는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여기며 애써 모른 채 했다. 그날도 그저 일어나야 할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뿐이라는 듯, 모두가 꼼짝 않고 누워 조용히 그 밤을 넘어가고 있었다.





  야간 근무 중 허리도 좀 펼까 해서 잠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니 노란빛 달이 훤하게 떠 있다. 며칠 전 문득 나는 그 관리자와 병장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내가 소환한 건지, 그들이 내 머릿속으로 강제 침입이라도 한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들은 갑작스레 내 기억 속에서 불쑥하고 떠올랐다. 그러고는 이내 심장 쪽 마음 한 구석으로 내려가 조용히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늘까지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언론에서 어느 조직 내 계급적 우위에 있던 자가 약자를 향해 지속적으로 저지른 폭력과 그에 따른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 그리고 긴 시간 외면해 온 방관자들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나의 안녕이 중요했다. 옆에 있는 후임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바라보며, 같이 일하는 동료가 단순한 실수에 비해 과도한 지적과 비난을 당하는 걸 옆에서 바라보며 되려 나의 안전함을 확인했다. 감히 윗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비난하고 저지할 수 없었다. 나는 저들처럼 가해하지도 않을 것이고 피해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저들에게 밑 보여 불편하게 지내기에는 군대에서 보내야 할 2년이란 시간은 너무나 길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직장을 내가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하고 스스로 정의롭지 못함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소설의 레퍼런스가 됐던 한국인 관리자는 이미 오래전에 퇴사했다. 폭언도 문제였지만 관리자로서의 업무 능력도 평균 수준 이하였다. 자신의 무능력함이 초래하는 위기와 그에 따른 좋지 못한 주변 평판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아랫사람, 그것도 가장 힘없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고압적인 태도로 자신의 부족함을 가려보고자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부당함을 참을 없다며 사내 스리랑칸 전원이 모여 사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그가 사표를 쓰게 된 결정적 한 방이 되었다.


  병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몇 번을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한풀이를 해댔다. 그렇게 짧은 왕고 생활을 누리다가 제대하기 바로 전 날 밤, 엉뚱하게도 다른 병과 상병에게 화장실로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는 의무병이었고 병장이 괴롭히던 상병과는 자대 동기였다. 다음 날 퉁퉁 부은 얼굴을 애써 가려가며 그는 우리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도망치 듯 부대를 빠져나갔다.


  그 가해자들 둘 다 이제 내가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이들이다. 피해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스리랑칸은 이미 고국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상병은 당시 경기도 어딘가에 살았다는 기억뿐이다. 밤하늘에 달을 보며 용서를 빈다. 정말 미안하다. 그때 방관하지 말았어야 했다. 당신을 외면한 나 역시 가해자였음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일상적으로 폭력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와 같은 방관자 때문이었음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무엇을 하든, 잘 살고 있기를 빈다. 그날의 상처를 모두 지우고 아무 일 없는 듯 잘 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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