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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Aug 26. 2021

요즘 책을 귀로 읽습니다

오디오북 콘텐츠에 빠지다



  나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일 년에 기껏해야 한 권? 그만큼도 안 될 때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되고 싶다? 부끄러웠다. 이를 고백하는 지금도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아무튼 그래서 올해의 시작과 동시에 독서의 일상화를 가족과 지인들 앞에 다짐했더랬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여전히 책과의 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한 두 개겠냐만은, 대충 정리하자면 '책 읽을 체력은 없고, 다른 즐길 것들은 너무 많다' 정도가 되겠다.


  그러다 요즘 오디오북이 인기라는 얘기를 듣고 '밀리의 서재'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설치해 몇 권 듣게 되었다. 일단 나의 근무여건 상 하루 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게 가능하기에 독서 시간을 확보하는데 매우 용의 했다. 하지만 신간들이나 인기 책들 대부분이 연예인이나 샐럽들의 도입부 읽어주기에 그쳤다. 완독 해주는 책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A.I라는 이름의 기계음이었다. 독점 형식으로 만든 국내 SF 작가들의 단편들을 성우들의 목소리로 들은 작품 말고는 성에 차지 않아 무료 체험 한 달을 한참 남겨두고 어플을 삭제했다.


  그리고 얼마 전, 언제가 브런치에서 '윌라'와 함께 진행했던 공모전이 떠올라 큰 기대 없이 그곳을 훑어봤다. 그런데 이곳은 기계 목소리 없이 성우들이 전 권을 읽어주는 시스템이었다. 일단 마음에 들었다. 빠르게 스캔해서 호기심이 이는 몇 권을 고른 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를 눌렀다.

'블랙쇼맨과 이름없는 마을의 살인'

 

  처음 귀로 읽은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이었다. '용의자 X의 헌신', '방황하는 칼날' 같은 영화화된 작품들로 알고 있던 작가의 이름을 믿고 선택했고 꽤 재밌게 읽었다. 어릴 때 읽었던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심지어 최근에 집에서 아이들과 본 '엉덩이 탐정' 등에서 봤던 주요 인물에 부여된 과장된 신비주의나 사건 해결 능력 등이 이 작품에 만화적 색채를 덧입힌다. 반면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조금씩 이야기 배경에 녹이는 등 현실감 부여도 탁월해 더욱 흥미로웠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두 번째로는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밀리의 서재에서 읽은 SF 소설 단편집을 통해 이 작가를 알게 되었고, 윌라에서 검색했더니 이 작품이 나와 단번에 선택했다. 기발한 상상과 더불어 탄탄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쓴 차분하고 따뜻한 여성 서사들이 의외로 나와 잘 맞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들이라 느꼈다. 그 감정을 다양한 SF적인 설정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윌라 오디오북 '삼체'

  

  그리고 요즘 듣고 있는 작품이 중국 SF 소설 작가 '류츠신'의 삼체'이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오디오 플레이 시간만 장장 62시간에 달하는 대작. 윌라에서 작정하고 만들었다며 힘주어 광고하길래 괜찮나 싶어 듣기 시작했다가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하루에 7~8시간씩 들으며 이제 3부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아직 완독 전이라 이 소설의 작품성을 뭐라 단언까지 할 순 없지만, 아마 SF 콘텐츠를 좋아하는 내게 두고두고 기억될만한 작품이 되리라 예상해 본다.


  고도로 발전한 외계 문명이 우리 인류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들의 척박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함선을 이끌고 지구로 향한다. 인류도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이 지구에 도착하는 450 동안  침략을 맞서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온갖 인물들이 갖은 방법으로  위기에 맞서기 위해 발버둥 치고,  과정이 작가의 방대한 지식과 상상력을 통해 구현된다.


  물리학, 천문학, 각종 우주 관측이나 이론 등의 과학적 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역사적 부분이나 군사, 무기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상상의 미래 세계와 외계 문명을 그림을 그리듯 펼쳐놓는다. 이를 배경으로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그들이 짊어진 인류 문명의 운명을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지키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성우들의 정확한 발음과 가미된 연기,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음악과 효과음들이 귀로 듣는 즐거움을 더한다. 개인적인 업무 환경 탓에 하루 중 상당히 긴 시간을 이 '책 듣기'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무료 체험 한 달이 끝나더라도 나는 이 서비스를 유료로 계속 이용할 것이다. 늘 듣던 음악과 팟캐스트 등은 상당 부분 이것으로 대체됐다. 요즘은 일하러 가는 시간이 책을 만나는 시간이라 여겨질 만큼 내게 새로운 일상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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