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전 이야기 2
[죄명을 *로 대처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현재 어린 딸아이가 있기에 공개하기가 어렵습니다.]
"A 씨 그만 뜸 들이고 말 좀 해보세요."
"형수님! 충격을 적당히 받으세요. 형이 외도를 했는데요. 근데요. 그게....."
"바람을 폈다는 말인가요? 근데 왜 검찰에 송치된 거예요. 그만 뜸 들이세요"
"그게 죄명이 아****성**라서 그래요!"
"네!!! 뭐라고 하신 거예요?"
"형수님 충격받으셨죠. 사실 저도 그 소리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경찰이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묻고 또 묻고, 형에게 묻기를 반복했어요"
그 상태에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은 터질 거 같았고 눈물은 눈앞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어느 순간 '사랑해'라는 말과 문자를 수시로 보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심증은 있었으나 증거가 없었기에 그 사람이 그러는 걸 흘려보내야 했다. 왜냐면 일주일 멀다 하고 모텔을 이용했기에 심증은 있었다. 그러나 여자와 동행한 증거가 없었기에 잠시 덮어두어야만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그 곁을 지켜주지 못한 채 1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면 남자가 딴 짓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려고 했다. 결혼 생활하면서 줄곧 생각을 했기에 거기에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럴 수 있지! 그러나 내 눈앞에 걸리지는 말아라! 적당히 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생각했던 부분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소식을 접하기 전 친정엄마는 수없이 그 사람의 불륜을 의심했다. 잦은 서울 여행, 그리고 그 외 혼자 먹는 식사치 곤 큰 비용, 모텔비용 등 다양한 소비 패턴을 보며 엄마는 직감했다. 서울뿐만이 아니었다. 대전, 평택, 대구, 부산, 경남 등 다양한 곳을 다녔고 한참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할 때조차 공주에서의 모텔과 식사 카드 내용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공주는 왜 간 거야! 코로나로 여행을 자제하는 이 순간에도 너는 공주에 왜 다니는 거냐. 나 보고는 외출하지 말라는 문자를 빈번이 보내더니 너는 공주에 무슨 일로 간 건지?"
"공주에 동호회가 있었어! 거기서 하룻밤을 잤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 내가 싫어하는 동호회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또 동호회냐! 그리고 그날은 주간업무 보는 날인데 모텔에서 하룻밤을 자면 회사 출근은 어떻게 한다는 거야? 곧 우리가 새 삶을 살기로 했잖아. 근데 넌 버젓이 모텔을 들락거리고 그래. 여자 있냐?"
미안하다는 문자만 올뿐 더 이상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친정엄마가 듣고 있다 "김서방 분명히 여자 있다. 너 그렇게 있지 말고 알아봐!"
"엄마 다 부질없다. 알아본들 증거가 명백히 있더라도 버젓이 거짓말할 사람이야. 단, 하나 들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들켰다가는 그때는 나 죽고 그 사람 죽는 날이니까"
"참, 속도 좋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 어떻게 편안한 소리를 하고 있니!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증거를 잡아야 이혼할 거 아니야!"
"내가 불륜 장면을 목격하면 속이 편안할까? 더럽고 추잡스러운 모습을 본 후 그 기분으로 어떻게 가정을 일구겠어! 그냥 지금은 믿는 수밖에."
엄마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출근 준비를 했다. 나라고 속이 터지고 답답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그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고 더러웠기에 더욱더 알아보기 싫었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라면서 1년을 버티었다. 버티는 그 순간에도 그 사람은 아빠라는 신분을 남편이라는 신분을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신분을 다 버렸다.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가정을 버렸다는 사실에 억울했다. 그 상대가 내가 상상을 초월하는 상대였기에 더 분했다. 현재 사회에 이슈가 된 범죄가 내 남편이 내 아이 아빠가 했다는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졌다.
A 씨와 통화하기 전 9월 초 친정엄마 꿈이 이상하다며 불안한 마음을 말하곤 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자꾸 꿈에서 보인다는 건데. 엄마에게 외할머니가 꿈속에 보인다는 건 좋지 않은 일이 생기니 조심하라는 꿈이기 때문이다. 외 할머니와 함께 다른 사람이 잡혀가는 꿈을 꿨다며 연락을 해보라는 거다.
몇 주가 흐른 어느 날, 아이 우유와 장난감을 주문해야 했기에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해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그 후로 엄마 꿈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국번으로 뜨기 시작했다. 심각한 생각을 접어두고 폰이 고장 났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엄마와 대화하던 중 남동생이 거주 중인 홍천을 가는 날 우리 집에 들러볼까라는 제안을 했다. 썩 내키지 않았다.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걸 감지했지만 기다려보자며 엄마를 말렸다. 엄마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은 거의 다 맞았기에 김서방에게 문제가 있다며 같이 천안행을 권했지만 가기 싫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8월 28일 그 사람에게 문자가 왔다. 회사 직원 중 함께 카플 한 직원이 코로나에 걸려 회사가 비상이다는 문자였다. 자신 역시 코로나 검사 후 집에 있다며 향후 2주는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는 문자였다. 한참 코로나가 심했던 그때였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그때 강원도 여행 가자고 제안한 그 사람을 말렸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자고. 더 이상 권하지 않던 그 사람은 갑자기 코로나 검사를 했다는 말을 믿었다.
그리고 공주 여행을 간 카드 내역과 모텔 카드 내역을 보며 분노했던 날이었다. 8월 28일 그날은 잊을 수가 없다. 나를 속이고 걱정하게 했던 날이니까.
코로나로 인해 격리된 아파트에 면역력이 약한 엄마가 찾아간다는 건 정말 안 되는 행동이었고 설사 내가 집을 찾는다고 한들 면역력이 약한 어린 딸아이와 내가 찾아야 했기에 혹시 모르니 나중에 가보자며 동생네만 다녀오기로 했다. 엄마가 불안했던 그 날부터 동생네를 찾는 그 날 그리고 외할머니 꿈을 꾼 날이 일치했다.
그 사람의 범죄로 인해 경찰에 연행되었던 날과 일치했다.
A 씨에게 듣던 말들이 뉴스에나 나올법한 단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혼동의 시간이었다. 가슴이 뜀박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얼굴에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형수님 저 다음 주에 접견 예약해놨거든요.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그리고 집에 오셔야 할 듯해요."
"제가 왜요? 제가 뭐하러 접견을 해야 하는 건가요? 죄짓은 놈은 죗값을 받아야죠. 집은 가야죠. 여기 정리해서 이번 주 내로 천안 갈게요. 근데요. 접견은 생각해볼게요. 지금은 그 사람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 저 혼자는 못 가겠고 엄마와 의논해 날짜 정해지면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부모님에게 A 씨가 연락 좀 부탁드릴게요. 제가 천안 가면 연락하겠다고요."
"네. 형수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지내세요. 여기서 변호사 알아보고 있으니깐요?"
"승률이 높은 변호사여야 하는데 이 사건으로 누가 변호를 맡는다고 할까요? 저도 알아볼게요."
그렇게 긴 통화가 끝이 났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만큼 큰 충격이었다. 헛웃음이 나오지만 두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어린 딸아이가 불쌍했다. 내 처지가 불쌍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나에게 온 건지. 더 이상 큰 고통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고통은 아직 존재했음을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나였지만 그 바람과 정 반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7월 남해 여행 후 1년 만에 우리 집을 찾았다. 어딘가 모르게 붕 떠있는 그 사람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 곧장 부산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부산에 온 뒤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우리 부부만 있는 조항을 만들 테니 거기에 당신이 모두 오케이 하면 합치자. 별거 생활을 그만 하는 거야! 근데 조항 중 당신이 싫어하는 조항이 있을 거야. 그걸 받아줘야만 하는 거야. 만약 하나라도 지키지 못한 채 어길 시에는 바로 이혼하는 거야. 조항에 사인하고 이혼 서류도 작성해야 해. 어길 시 바로 법원에 접수하는 걸로 하자. 우리가 합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하니깐. 내가 뭘 싫어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조항을 읽고 서로 배려해가며 다시 살아보는 걸로 하자"
그 사람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그래, 그러자"
성의도 진심도 없는 단답형의 문자였다. 일단,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성의 없는 답변이 온 것에 화가 났지만 일단, 중요한 핵심만 생각하며 한 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지만 부부 조항 계약서류와 이혼 서류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8월 중순쯤 문자를 보냈다.
"합치기 싫어! 조항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아니, 요즘 바빠서. 프린터 할 곳도 없고"
그 사람 답은 얼토당토 하지 못한 말을 했다. 집에 버젓이 존재하는 프린터가 있었고 자신이 다니는 회사는 바쁜 일을 하는 곳도 아니었다. 일단, 그 사람 거짓말을 믿어주었다. 계속 지켜보던 엄마는 바보라고 나에게 말하지만 같이 살기로 한 이상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한 이상 믿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 뜬 봉사처럼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거나 물어보지 않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 나를 믿어주는 힘이 있었기에 참았다. 그 사람은 인내가 부족한 사람이라 어느 순간 자신을 컨트롤 못하고 부부 조항을 벗어나 행동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너의 탓 즉, 남의 탓을 하지 않을 듯했다. 서로가 정정당당한 이유로 홀가분하게 이혼할 거라는 생각과 믿음이 있었다.
A 씨와의 통화가 끝나고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 했다. 터져버릴 거 같은 심장이 나댔기에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편이 필요했다. 출근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분하게 말하겠노라고 엄마를 놀라게 말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엄마 폰 번호를 떨리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꾸역꾸역 눌렀다.
"엄마, 엄마 김서방 후배에게 전화가 왔어. 근데 엄마가 며칠 전 꿨던 꿈과 엄마 예감이 맞는 거 같아!"
"무슨 말이고! 와! 김서방에게 연락 왔더나?" (부산 사투리라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 사람 전화는 이미 정지된 상태였기에 통화가 되지 않았고 휴대폰은 연행되면서 경찰관에게 압수된 물품이었다. 검찰에 송치되면서 검사의 증거 물품이 되었기에 통화가 되지 않았다. 바로 엄마가 예감하고 직감했던 부분이 며칠간 꿨던 꿈과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일반인에서 비정상인으로 살아가는 그 사람이 예초롭기도 불쌍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받아줄 용기는 더더욱 없다. 아이 아빠라는 이유로 아직 살아야 할 인생을 그 사람에게 헌신하고 받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해 결론 내기 전 일단 천안 우리 집으로 가야만 했다.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더러운 그곳을 찾아야만 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그곳, 우리 집에 있었기에. 서류상 부부로 되어 있는 이상 뒷바라지라도 해야만 했다. 그건 아이 아빠이기에 아이에게 떳떳하게 당당하게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행동을 이해시켜야 했기에 최선을 다해해 달라는 모든 걸 해주기로 결정했다. 결정하는 순간 부정적인 에너지와 긍정적인 에너지가 수없이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서로가 싸우면서 나의 마음을 후벼 파며 아프게 상처를 내기도 수십 번이었다.
엄마는 재촉한다. 버스 안에서 조용히 말하는 엄마 목소리에도 차분함 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엄마, 김서방 검찰에 송치되었고 구속되었다고 하네. **교도소에 수감 중 이래!"
한참 동안 말이 없는 엄마..
눈물이 뺨 위로 흐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