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야 하는 100가지 이유

이혼전 이야기 1

by 치유빛 사빈 작가




2020년 9월 15일 그 일이 있기 전



작년 그 해.

정확히 2020년 9월 15일.

오전, 오후는 행복했다. 아이와 동네 체육관에서 뛰어놀며 내가 어릴 적 경험한 꽃반지 놀이를 물려주며 행복했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소소한 행복이 휘몰아쳤다. 더 이상 괴로운 일과 힘겨운 일이 없을 거 같은 행복을 안겨주었다. 한여름 더위가 지나가지 않았던 초 가을.. 꽤나 더웠다. 아빠 없이 씩씩하게 자라난 아이를 볼 때마다 대견스러웠다. 유년시절 나를 보는듯해 마음이 아팠다.


몇 주전 시가집에서 전화가 왔다. 그것도 그 사람의 어머니 전화를..

별거를 한 지 1년 3개월 만에 시가집에서 전화가 왔고 피하고 싶었다. 좋은 소리 할 분들이 아니기에 피했다.

시가집에 전화 온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무리 아들이 못난 짓을 하고 못난 말을 했더라도 자기 자식을 두둔하기 마련이니깐. 상대 이야기를 듣지 않는 시가 부모님들을 잘 알기에 피했다.


그 후로 2주가 흐르고 난 후, 그 사람의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후배는 나의 폰번호를 모르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직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형수님, 급한 일이 있어 문자 보냅니다. 혹시 통화할 수 있을까요?"


문자가 왔다. 급한 일이라는 말에 무슨 일이 터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자로 나누어요. 저 폰번호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무슨 일인데요?


"문자로는 대화가 어려워요. 전화드릴게요."


문자가 끝나자마자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후배와 답답함을 숨기지 못하는 나와의 사이에서 초조함이 흘렀다. 다그쳤다.


"무슨 일인데요. 혹시 그 사람에게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싸웠어요? 유치장에 간 거예요?"


그 사람은 욱하는 자신의 성격을 참지 못한다. 거침없는 행동과 말들로 인해 싸움을 했다고 생각해 아주 가볍게 물어봤다. 그러나 후배는 말을 하지 못했다. 계속 "형수님, 형수님, 형수님 음..............."

후배가 미안할 일도 죄송할 일도 아닌데도 후배는 좀처럼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전, 오후를 행복한 추억을 안고 온 모녀에게 모진 후폭풍이 존재할 줄는 꿈에서조차 알지 못했다.


"A 씨 속 시원하게 말해봐요! 무슨 일인데요. 싸움도 아니면 더 큰 문제가 생긴 거예요"


한참을 뜸을 들이다 어렵게 입을 땐 A 씨.


"형수님 며칠 전 수원 부모님이 전화하지 않았던가요?"


"전화 왔었어요. 그렇지만 받고 싶지 않아 받지 않았어요. 아이가 모르고 누르다 전화가 끊기도 했고요. 왜요! 그걸로 한 소리 하시던가요 A 씨에게.."


"아니에요. 그날 전화한 이유가 있었는데 형수님이 전화를 받지 않고 피한다는 부모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전화받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별거로 인해 내 탓을 하실 거 같아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그 문제가 아닌가 봐요?"


"네! 더 큰 문제가 생겼어요. 형이 형이 형이 지금 검찰에 송치되어 구속되었어요?"


밑도 끝도 없이 구속이 되었고 현재 교도소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A 씨의 말을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뭐라고요! 교도소에 있다고요? 왜요? 사람을 죽였나요? 검찰에 송치된 이유는 아주 중형일 때 송치되는 거잖아요? 사람을 때려 사망하게 한 거예요?"


"음...... 형수님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 수원 부모님에게 들으세요! 제가 이야기할 범위가 아니에요"


2020년 9월 15일 그 일이 있기 전



머리가 띵했다.

가슴이 뜀박질하듯 마구 뛰었다. 아이 얼굴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다. 고이 자는 아이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갈퀴 갈퀴 찢어졌다. 슬픈 예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A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를 몇 번을 강조했다. 시부모님에게 듣는다고 한들 상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자식 나쁜 이야기를 빼고 내 탓을 하며 하소연할게 자명한 일이었으니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띵한 머릿속을 정리라도 하듯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A 씨가 말할 범위가 아니더라도 현재 전후 상황을 다 알고 계시는 거잖아요. 내가 시부모님에게 전화를 한들 다 이야기 안 하실 거 같아요. 오직 저의 탓을 하며 하소연할 거 같은데...."


"그래도 제가 말할 수 없어요. 저와 통화가 되었으니 부모님에게 전화해보세요. 형에 관한 일이에요. 형이 9월 1일 경찰서에 잡혀갔고 9월 10일 딱, 10일 만에 검찰에 송치되었어요. 무슨 일인지 도무지 저도 모르겠어요. 며칠 전 현관에 메모를 보고 저도 알게 된 거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누가 메모를 남긴 거예요. 9월 1일 경찰서에 잡혔다면 메모를 할 시간조차 없었을 텐데요?"


"부모님이 작성하셨어요"


"A 씨 집은 어떻게 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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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송치되기 전까지 유치장에서 멘털이 붕괴된 채 지냈던 그 사람.

내가 왜 여기 있는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며칠을 멘털이 붕괴된 상태에서 문득 A 씨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에게 A 씨 존재를 알렸다고 한다. 와이프인 내가 연락이 닿지 않자 부모님은 A 씨 집을 찾았고 메모를 남겼고 A 씨 역시 그때 그 사람의 사건을 알게 되었다. 몇 번의 유치장 면회를 하며 A 씨 역시 헛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형이 어쩌다 저 속에 갇혀있나? 헛웃음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에 그 사람의 심부름꾼을 자청하고 지내고 있었다.


1년의 별거는 우리 부부에게 성장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살 것인지 헤어질 것인지 각자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몇 달 동안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내 탓이 아닌 상대 탓을 하며 문자로 싸우기도 수백 번. 44년 살아오면서 처음 듣는 욕설을 난무했던 재혼 생활의 5년. 아이를 위해서 참았다. 그리고 방법을 찾으려고 부산을 찾았다. 2019년 6월 중순 그 사람과 이별을 고했다. 한두 달 지내다 상처 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결심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시도 때도 없는 험한 소리와 나를 짖밞고 뭉개버리는 단어들로 힘겨웠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정엄마 역시 "저 사람 말이 안 통하네! 대화를 안 하려고 하고 오직 너 탓만 하는데. 너 속 타서 어떻게 살래! 이혼할래! 엄마한테도 욕을 퍼붓는데 너한테는 오죽할까?"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런 가정이라도 지켜야 할까? 엄마...

아니면 나를 위해서 또 이혼을 선택해야 할까? 엄마...


속으로 되뇌었던 말들을 갈팡질팡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친정에 머물면서 나를 바꾸기로 결론을 내리고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심리서적들 서평 이벤트가 보이면 주저 없이 신청하고 읽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상대는 절대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바꾸는 일이 최우선 선택이며 당신이 바뀌고 나면 주위 사람들도 바뀌게 된다는 글들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잘못은 그 사람이 더 많이 했기에..

상처는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많이 받았기에..


분노는 겁 잡을 수 없이 마음을 힘들게 했다. 이해가 안 되는 책을 붙들고 읽고 또 읽으며 마음 수양하듯 시간을 보내고 또 보냈다. 이유 없이 자신들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며 육아에 지쳐 있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 자신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시부모님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명절에 찾아오지 않는다며 태클을 거는 시부모와 그 사람 사이에서 결국 나는 미움받기로 스스로 선택했다. 남편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내 길을 찾아야 했다. 숨 쉴 곳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살아야 했고 아이도 살아야 했기에 하기 싫은 일은 못하겠다고 말했다. 맏며느리 노릇을 포기하겠다고 선포했다. 시가집 대소사 일은 더 이상 나에게 맡기지 말라며 남편에게 선포했다. 시가집 일이라면 야간 업무를 보고 아침에 퇴근해도 꼭 시가집을 가야 했다. 총각시절 절대 하지 않았던 일을 결혼 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자신이 그동안 부모님에게 속 썩였던 상처를 내가 치유해주기를 바라는 남자였다. 자신이 못했던 효도를 나에게 떠넘기며 효부 노릇 하기를 바라는 그 사람이 미웠다. 투병 중인데 아내를 뒤로 하고 자신 기준으로 모든 일들을 처리했다. 한마디 의논 없이 말이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열거해보지만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았다. 너부터 나에게 잘해보라고 욕하지 않고 욱하는 성격 자제하고 화가 나면 아이 앞에서 욕설을 멈추고 나가서 하라고. 상대가 있는 상태에서 욕하는 건 가정 폭력이라고 말해 보지만 통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한두 달만 있다 집으로 갈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저기서 상처 여기서 상처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아이와 우리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엄마! 나 좀 더 있다 갈게! 저 남자와 확실한 약속도 없이 그냥 올라가면 두 달 동안 서로 대화했던 말들은 물거품으로 돌아가! 그 사람은 단순해서 어쩔 수 없이 집에 온 거라고, 갈 데가 없어 다시 집에 온 거라고 생각을 해!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만 시부모님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을 해! 네가 그러면 그렇지 갈 데가 없지! 여기밖에?라고 나에게 말을 한단 말이야! 나도 그 사람도 조금은 성숙한 부부로 마주하는 게 좋을 듯 해!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이혼 아니면 재결합이잖아!"


"너 자신 있냐? 김서방이 저렇게 행포를 부리고 힘들게 하는데 어떻게 살래! 어른인 나에게도 이런 행동을 하는데.. 나는 김서방 보고 싶지 않다. "



꽃반지 만들어주며 다짐했다. 너만은 행복하게 너와 내가 힘차게 걸어가자고...약속했다. 꽃반지를 만들어주며...






마마보이 기질 역시 다분히 존재했던 남자였다. 어디를 가든 몇 분 간격으로 영상통화를 하며 우리가 어디에서 노는지 뭘 먹는지 실시간 방송을 한 사람이니깐. 우리 생활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다 보니 시부모에 대한 마음의 문 역시 닫아버렸다. 그 사람이 중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엄마 말에만 의존했던 사람이기에..

제발 부탁한다고 우리끼리 여행하면 우리에게 집중하면 좋겠다고 부모님에게는 영상 찍어서 보내던지 사진 찍어서 보내라고 매번 말하는 것도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절대 내 뜻대로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포기를 했다. 편안한 복장 (답답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던 시절)으로 집안을 돌아다녀도 자신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속옷을 입지 않고 겉옷만 입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녀도 자기 엄마와 아빠에게 영상 통화하는 행동은 기본이었으니까.


40 평생 결혼 못하고 혼자 늙어가는 큰 아들을 구해준 나에게 대하는 행동은 식모살이일 뿐이었고 목숨 바쳐 낳은 아이가 부모 자식처럼 여기는 그들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어쩌다 한 시간 간격으로 아이를 보고 가는 사람들이 며느리는 본채 만채하며 했던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우선, 아픈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인사가 먼저 아닌가? 홀로 늙어가는 아들 구제해 일반인과 똑같은 가정을 일구게 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가 먼저 아닌가?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인간적인 도리나 행동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대접받기를 바랐분 그 어떤 제스처를 하지 않았다.


마마보이 남자, 우리 가족보다 부모님이 우선인 남자, 아내보단 자신의 엄마가 먼저인 남자, 식모살이를 요청한 그 사람이 죽기보다 싫었다. 아픈 나이기에 아주 조금만 조심해달라고 요청해보지만 아프던 말던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투병생활이었기에 피부로 와 닿지 않았던 그 사람이었다. 궤양성 대장염은 어느 순간 터지고 마는 예고가 없는 병이기에 늘 조심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 병이지만 그 사람은 병에 대한 지식을 알아가기보단 그렇게 원했던 손녀를 안겨준 부모님에게 그동안 다 하지 못했던 효도하기 바빴다.


결혼생활 5년을 버티다 결국 터졌고 별거에 들어갔다. 별거를 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어른인으로써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고 말았다. 딸아이 아빠라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유혹에 이끌린 마흔다섯 살 어른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


A 씨는 쉽사리를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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