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전 이야기 3
전편 글을 쓰고 난 후 대장 포진이 왔습니다. 너무 아팠고 힘겨워 연재 글을 쓰지 못했어요. 아마 그동안 일어난 일들이 고통스러웠던 것을 몸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다시 연재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눈은 시뻘겋게 물들였고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애를 썼다.
"엄마! 나 천안 가야 할 거 같아. 지금 카드뿐인데 돈이 필요해! 그 사람이 수감 중이니 나와 아이부터 살아야 하니깐 천안을 가야 하고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 하잖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그 일이 맞는지 변호사도 만나야 할거 같아. 담당 변호사가 국선이라고 하는데... 그분이 모든 정황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부부라고 그 사람이 한 행동을 다 말해줄까? 의문스러워. 그러나 가야지. 시부모가 우리 집 청소를 했다고 A 씨가 말해줬거든. 모든 증거들 시부모가 다 정리하고 그 사람 지갑이며 OPT카드도 받아야 할 거 같아. A 씨가 부모님이 다 가지고 있다고 했거든"
"그럼 가야지! 아이를 위해서 내 딸을 위해서 가야지!! 아이고, 어리석은 사람. 일을 왜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엄마 꿈이 맞네. 어쩐지 불안하더라. 김서방이 끌려가는걸 외할머니가 엄마꿈속에서 말을 했네. 엄마가 천안 가자고 할 때 가야 했어!"라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 엄마 역시 믿어지지 않는다며 묻고 또 물었다.
일단, 내일 이야기 하자며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떨리는 심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왜 그럴까?
분노와 억울함으로 뒤덮어 있었다. 그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왜 그랬어! 남자이고 싶었던 거니! 딸 키우는 아빠가 정말 미친 거 아니니! 라며 속으로 분노했고 화를 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건 청심원이 전부였다. 약을 먹고서야 새근새근 자는 아이 옆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먼저 일어나 있었다.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고 아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던 엄마.
짧은 통화로는 자신이 궁금한 것들이 해소되지 않았을 터.
일어나기 싫었고 문제들을 대면하기 싫었다.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어나야 했다. 언제 다시 부산에 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아이의 가을 겨울 내복부터 겨울 옷까지. 아이가 줄곧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필수품을 챙겨야 했다. 나 역시 출판사와 약속한 책과 노트북 그리고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챙겨야 했다.
기척을 들은 엄마는 우리가 자는 방으로 들어오셨다.
"일단 천안부터 가지 말고 변호사를 만나 조언을 듣고 가자. A 씨가 그랬다며, 너 병원 진단서부터 진료내역서를 제출해달라고 했다며... 진단서 제출하고 싶냐?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니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대책을 마련하자"
"변호사를 만나야 하는 거야? 변호사가 먼저구나! 엄마 아는 변호사 있어?"
"지인에게 말해놨어! 연락 오면 바로 가자."
"변호사 만나고 내일 천안 가면 되겠네. A 씨는 다음 주 월요일 접견 예약했다고 했거든. 그 사람 얼굴 보고 싶지 않지만 한 번은 만나야 하는 건 아닌가? 변호사에게 물어보고 진단서 및 다른 것들을 왜 필요로 하는지 직접 물어봐야 할 거 같아!"
"안 그래도 오늘 가게 가면 이야기하고 올 거야! 며칠 천안에 가야 한다고 휴가 신청해야지!"
"고마워! 엄마. 우리 밥부터 먹자! 먹고 기운 차려야지!"
이때만 해도 가볍게 생각을 했던 나.
다른 일들이 터질 거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안타까운 나의 사정을 듣고 두 팔 걷어붙이고 알아봐 주신 엄마 친구.
그분만 믿고 변호사를 만나기로 했다. 모두가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 딸아이 아빠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말, 분노, 억울, 배신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간 택시 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시가집 식구들은 내 탓을 하고 있을 테니까.. 함께 있지 않았던 시간으로만 내 탓을 할 것이고 자신 아들의 잘못 보단 며느리 잘못을 할 어른들이었다.
엄마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1년여 동안 모녀에게 보여줬던 행동들을 생각하니 분노와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가 진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변호사를 만났다. 막상 변호사 앞에서는 물어봐야 할 질문들이 잊어버린 채 머릿속은 하얀 도화지가 되고 말았다. 밤새도록 생각했던 질문들과 궁금증은 변호사 앞에서는 캄캄한 암흑이 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변호사가 먼저 말을 하셨다.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뭐가 궁금하세요"
"이 사건으로 변호사 선임하는 게 더 유리한가요?"
"글쎄요! 그건 담당 판사나 검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겠죠"
"변호사 선임비는 어느 정도 될까요?"
"4~500만 원선일 겁니다."
"그렇다면 피고인 측에서 저의 진단서를 원하는데 이게 형량에 도움이 될까요?
"그것 역시 판사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득과 실의 반반입니다."
"이런 죄명으로 몇 년 형이 나올까요"
"3년은 판사가 아주 잘 봐야 하고 드문 일입니다. 최소 5~7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혼을 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부터 해야 하는 게 맞을까요"
"이혼은 나중 문제입니다. 일단, 아이를 양육하셔야 하잖아요. 필요한 부분들 다 챙기셔야 합니다."
"뭐를 챙겨야 하는 건지....."
"집이 있잖아요. 집부터 처분하셔야죠. 돈이 나올 곳은 집 말고는 없으시잖아요. 남편분이 수감 중이니 돈을 벌어다 줄 사람 역시 없는 거니까..."
"네, 그러네요! 집부터 처분해야 하고 남편 명의로 된 모든 것들을 정리해야 하는군요."
"네, 맞습니다. 돈 되는 부분들 정리하셔야죠. 그것도 서류상 부부로 되어 있으니 위임장 받아서 하셔야 할 거예요. 정확한 소장을 알 수 없으니 국선과 많은 대화를 하셔야 할 듯합니다."
엄마, 엄마의 친구분, 나 그리고 아이까지 변호사실에서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들었다.
그러나 뾰족한 결과는 없었다. 다만, 상황을 지켜보고 선고가 된 후 이혼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혼이 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문가의 자문을 들고나니 뭐부터 해야 할지 윤곽이 드러났다.
일단, 집으로 가야만 했고 A 씨를 만나 그동안의 근황을 들어야 했고 시부모님을 만나야 했으며 국선 변호사를 만나야만 했다. 노부모님들이 아들 뒷바라지하는 걸 원치 않았다. 부부로 있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어머니와의 마찰이 비번이 일어났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코로나와 추운 겨울 날씨를 뒤로 한채 뛰어다니는 병든 며느리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변호사를 만난 후 기차표 예매를 했다. 부산에서 천안을 갈 수 있는 SRT나 KTX가 우리들을 기다렸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변호사를 만난 후 엄마는 가게로.. 나와 아이는 엄마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천안 갈 채비를 준비했고 떨리는 마음은 설레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떨렸다. 무슨 일들이 나를 기다릴지, 무슨 일들로 나를 기절시킬지 미래와 앞날은 아무도 몰랐다. 신의 영역이었으니까...
마음을 단단히 준비했다고 했지만 막상 천안 가는 기차를 타는 순간 참담했고 암흑이었다.
천안 가야 하는 날이 돌아오고 말았다. 1년 동안의 친정살이를 정리하고 나니 짐들이 너무 많았다. 아이 물건만 해도 몇 박스가 나왔다.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 모든 짐들은 택배로 보낸 후 간단한 짐들만 가지고 기찻길에 올랐다.
기차 타기 몇 시간 전
엄마가 입을 떼었다.
"기차 타기 전에 용한 점술가를 만나고 가자. 이런 일은 처음이라 엄마도 너무 황당스럽고 힘든데 너는 오직 하겠어. 한번 물어보고 가자"
엄마 말에 가만히 생각을 했다. 점술가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무슨 일로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이미 갇혀 있는 그 사람에게 치조 하듯이 물어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편지 역시 한계가 있었다. 모든 증거가 다 있는 폰 역시 우리 소속이 아닌 검찰 소속으로 폰을 볼 수가 없었다. 교도소는 법무부 소속의 직원들과 검사와 판사의 직원이기에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곳인지 이 일을 겪고 난 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점술가가 모든 걸 꽤 뚫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 볼까 하는 마음의 위로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들 때 어딘가에 위로를 받고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겪는 일이라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현금이 없었기에 현금서비스를 받아 마음의 위안을 받기로 하고 비가 오는 날 점술가를 찾았다.
점술가의 말은 그랬다. 숫자 3만 보인다고.. 자꾸만 '내가 왜 여기 있지!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인 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며 가슴을 치고 있다는 이야기 했다. 면회를 가서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내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 화산이 되고 있는데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줘라.. 그렇다고 그 사람이 그동안 해왔던 행위나 행동을 말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든 나를 붙들고 애원할 텐데. 그 애원이 듣기 싫어 매정하고 냉정하게 말하고 싶은데 점술가는 그 사람의 억울한 이야기만 듣고 나오라는 거였다.
A 씨의 말은 접견 시간은 단 10분. 코로나로 인해 주 1회 면회에 10분만 허용된다고 했다. 10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더 답답함을 안고 부산역으로 향하는 동안 서글프게 비가 오고 있었다. 내 마음을 대변하듯 울지 못하는 바보를 대변하듯 하늘이 대신 울어주고 있었다.
엄마와 나 아무 말 없이 기차 속에서 참담한 마음을 스스로 추슬렀다.
두 시간 지나고 나니 천안아산역에 도착. 어둑어둑한 하늘인 천안.
눈이 와 새하얗게 물들인 천안.
마냥 즐거운 아이와 반대로 새 하얀 눈에 어두운 그림자를 버리고 싶었다.
1년 만에 찾은 우리 집.
그러나 이 곳은 더러운 곳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