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은 두려운 그 자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한 채 뚜벅뚜벅 눈을 맞으며 아파트 앞에 들어섰다. 어디선가 깨끗한 냄새가 났다. 락스와 세제의 냄새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진동을 했다. 비번을 누르는 심정은 설레는 콩닥거림이 아닌 두려움의 콩닥 거림이었다.
곁에서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는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엄마 우리 집에 온 거야? 할머니 집은 언제가?" "우리 아기 우리 집 기억날까?" "음, 몰라 들어가 봐야지" 아이말이 맞다. 1년 만에 찾은 우리 집은 우리 집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의 집이 되었다. 정리를 못하는 남자답지 않게 너무나 깔끔했다. 그날 행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친정엄마는 한마디 거들었다. "분명히 여자가 청소한 거야. 우리가 온다고 청소하고 간 거야" 당연하다. 경찰에 연행되면서 시가집 부모에게 연락이 갔을 테고 먼저 이 사건을 아셨을 테니까. 청소를 부탁했을 남편의 행동이나 말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마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힘없는 부모에게 기대는 그 남자가 철이 없었다. 소장 역시 부모님 집으로 발송되었기에 사건의 전말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A 씨의 말 조금, 시가집 부모님 말 조금 그것으로 가지치기를 하며 상상해야만 했다.
집에 도착했다는 걸 안 A 씨는 곧장 집으로 왔다. 떨리는 순간이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무슨 말을 들을지 갑갑하고 두려웠다.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통 내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현재 일어나 일들의 잘못의 불행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고 있었다. 별거 1년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알지 못했으니까.
비난과 따가운 화살은 나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선 A 씨부터 만나야 했다. 상황을 알아야 했고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라며 말을 먼저 했다. 감사하게 먼저 말을 해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가요? 라며 알고 싶은 부분부터 물어보는 게 맞는 거 같았다. 그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자신이 알아보고 파악한 부분을 꼼꼼하게 적혀 있는 A4용지를 보니 심각했다.
"형수님! 놀래셨죠. 무슨 일인지!" "네 놀랬어요"
일단, 부산에서 확인한 내용들을 A 씨에게 말을 했다.
"부산에서 변호사를 만나 자문을 구했는데요. 저의 진단서와 진료확인서를 법원에 보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변호사 선임은 자문에서 반반이라고 하셨어요. 뭐 진단서나 진료확인서 및 탄원서도 판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니 재판을 진행해봐야 알 거 같아요. 역으로 생각해보면 반성 없이 자신의 죄가 당당하다고 법원에서 판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데. 지금 심정으로는 진단서나 진료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탄원서를 작성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아요. 참담한 심정으로 집에 왔으니까요. A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형수님 심정 충분히 공감해요. 저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동안 있었던 사건을 유치장 있을 때 들으니 사실 뒤죽박죽입니다. 자신은 잘못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까요. 형수님이 법률적으로 자문을 구한 내용을 들으니 변호사 선임은 말도 안 되는 거 같아요. 제가 판사라고 생각하면 괘씸할 거 같아요. 이 부분은 부모님과 의논을 하셔야 하고요. 지금 시급 한 건 집부터 매도하셔야 하고 형 명의로 된 모든 것들을 처분하고 정리해야 할거 같아요. 일이 많네요. "
"네! 그러려고 집에 왔으니 해야지요. 법적으로 아직 배우자이잖아요. 근데 이 상황까지 오게 한 것이 저 때문이라고 부모님은 말씀하시겠네요. 일 년 동안 집을 비웠으니. 부부 사이는 부부만 알지! 제삼자는 추측하지요. 아니면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니까요. A 씨 역시 그렇겠지요?"
"사실, 저는 형수님을 원망했어요. 일 년 동안 집을 비우고 오지 않는다고 형이 말했거든요. 형 말을 들으면 전부 형수님이 잘못한 걸로 들렸고 그렇게 판단을 했어요. 근데 지금 와서 보니 아니었어요. 형이 한 행동이 더 잘못되었음을 지금 상황에서 보여주고 있잖아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남해 여행을 떠났어요. 분명 부부 사이에 좋아질 거라는 기미가 보였죠. 그러나 그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대충 하는 행동이 보이더라고요. 사실 1년 별거는 그가 먼저 자초한 일이었어요. 혼자 애를 쓰고 부부 사이를 바꿔보지만 역부족이었죠. 숨을 쉴 수 없어 친정으로 갔어요. 친정에서 마음공부를 하며 저부터 바꿔보려고요. 이런 저를 아는지 모르는지 협박 문자가 매일 왔지요. 거기에 친정엄마에게 까지 함부로 하는 말투를 하며 아주 건방진 태도로 일괄했고요. 아이를 보러 오는 날은 자신 부모님에게 영상통화로 아이만 보여주고 이내 갔어요. 어느 날은 7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카드로 긁었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지만 거기에 대한 답은 회피했어요. 혼자 외로우니 그러려니 생각했어요. 엄마는 나보고 태평이라고 말을 했긴 했어요. 근데 두 다리로 움직이는 사람을 어떻게 감시할까요. 그 사람을 믿는 수밖에요. 심증은 있으나 증거가 없어서 힘들었던 1년이었어요. 카드와 공인인증서를 매번 중지시키는 바람에 힘들게 버티며 여기까지 온 거예요. 카드 중지하면 자포자기하고 집으로 올 줄 알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여기서 자포자기하고 집으로 오면 더 한 폭언과 폭행으로 심각할 거 같았어요. 매번 그랬으니까. 몇 개월에 한 번씩 부산 와서 아이만 보고 간 것이 여러 번 있었고요. 가정을 지키고 싶다면 우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사람은 모르더라고요. 무조건 집에 가자가 끝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요. 부산은 연중행사로 자신이 심심하거나 할 일 없으면 부산을 찾더라고요. 부부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A 씨에게 어떻게 말을 다해요. 저는 이미 미움받을 용기로 이 가정을 지켜왔어요. 그렇지 않음 정말 힘들 거 같았거든요. 내가 먼저 살아야 아이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남해 여행 후 집에 오니 마음이 이상했어요. 내 집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남의 집에 온 것처럼... 남해 여행을 하고 온 다음날 저의 생일이었어요. 뭔가 붕 떠 있는 그의 행동이 의심 갔지만 모르는 척해야 했어요. 싸움 나니까요. 붕떠 있는 마음은 나와 아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매력적인 설렘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합칠 마음이 있었다면 사소한 부분을 챙겨야 하는 거 아닐까요? 스마트폰 두대를 가지고 있길래 물었어요. 왜 두대를 가지고 다니냐고. 그랬더니 뭐라고 말하는 줄 아세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폰은 오래돼 배터리가 빨리 사라진다며 A 씨가 준 폰으로 SNS를 하고 있다고요. 검색도 하면서요. SNS 하며 소통한 글들은 일반 대화가 아니었어요. 적당히 하고 나오라고 남해 여행 때 말을 했거든요. 알겠다는 말만 할 뿐. 폰을 끼고 살더라고요. 뜬금없이 '사랑해'라는 문자를 매번 보냈던 요 몇 달이 이상했어요. 여자는 직감이 있잖아요. 소름이 돋았어요. 그뿐인 줄 아세요. 나를 위한 일이 아닌 아이를 위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려고 우리 부부만이 존재하는 부부 조항을 작성하고 서로 합의하면 합치기로 한 날이 8월이었어요. 근데 한 달이 다되도록 동의는커녕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물어보니 프린터 할 곳이 없다고 하더군요. 집에 프린터가 있는데도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그냥 믿었어요. 믿는 수밖에 없잖아요. 이혼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바쁘다는 문자가 왔어요. 제가 알기로는 바쁜 달이 아니거든요. 단순 직업인데 뭐가 바쁘겠어요. 토 달지 않고 믿었어요. 그 사람을. 그러나 배신할 줄 꿈에도 몰랐어요. 제가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그가 노력하지 않았던 거예요. 부부 조항에 사인하고 공증하면 가정이 다시 탄생되는 거였어요.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가정을 지키고 싶다던 그는 거짓말이었어요. 8월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달로, 그러나 거짓말과 회피성으로 자신을 속이고 나와 아이를 속이면서까지 놀고 싶었던 거예요. A 씨 이런 상황 속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듣던 후배는 자신이 들었던 말과 반대라며 놀라 했다.
후배가 준 폰은 우리 아이에게 주라고 한 폰이었다. 집에는 와이파이가 있으니 유튜브를 보던지 아이가 쓰게 해달라고 부탁한 폰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던 후배는 자신이 들었던 말과 반대였기에 적지 않은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 사람은 폰을 아이에게 줬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후배였다.
그렇다. 그는 자신을 포장하는 이야기들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을 것이다. 나만 나쁜 여자, 나쁜 아내, 나쁜 며느리가 되었으니까. 이미 예상한 대로 상황은 전개되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결국 들통 나고 만다. 시간은 걸렸지만.
우주는 안다. 내가 한 행동과 말을.. 그동안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이겨내려고 노려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나 대신 벌을 줬다. 행불행은 함께 존재함을 또 한 번 깨닫게 했다.
우주가 던진 메시지는 그랬다. 너를 위해 살아라고, 지금이 기회라고 말을 했다. 감정에 이끌러 일을 그르치지 말고 현명하고 냉철하게 행동을 하라고, 너의 목표와 꿈을 위해 실행하라는 메시지로 받아 들었다.
남을 원망하고 탓하지 않았다. 잘못하지 않았던 부분이 잘못되어 있었으니 바로 잡아야만 했다. 인정받으려고 한 것이 아닌 오해를 풀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렇게 A 씨와의 첫 만남은 다음 주 접견 시 해야 할 말들을 간추리고 요약했다. 후배 역시 알려줘야 할 말들이 있었으니 아주 간단하게 팩트만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어 시간 대화를 하며 황당함과 절망감이 왔다 갔다 긍정과 부정이 수없이 부딪히고 부딪히며 혼돈의 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며 이겨냈던 건 오직 아이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할 거 같았다.
너와 내가 살아야 했기에.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불행 속에서 긍정의 씨앗을 찾기 시작했다.
씨앗은 정신을 차리고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거였다.
그의 성격을 알기에 일단,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기로 다짐했다. 다짐은 쉽지 않았다. 먼 훗날을 위해 지금 감정을 앞세워서는 안 될 거 같았다. 말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소리쳤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그럴 수만 없었다.
다음으로 만날 사람은 그를 낳아준 부모님을 만나야 했다. 각오를 단단히 했다.
이 모든 상황이 나로 인해 벌어졌다는 말을 할 거라는 걸 잘 알기에 친정엄마에게도 말해주었다.
'집에 왔으니 이번주내로 오셨음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일요일이 되었고 시간 맞추어 그의 부모님이 도착했다.
경찰서에서 온 소장을 찢어버렸다는 말에 탄식이 나왔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상황들이 다 있었을 텐데 어머님은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의 글들이 있어 찢어 버렸다는 것이다.
교도소에 자식을 둔 부모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펼쳐져 어쩔 수 없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열했다. 며느리가 왜 별거를 선택했는지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 년 동안 집을 비웠기에 생긴 일이라며 며느리 탓을 했다.
차근차근 말을 했다. 그 사람이 그동안 했던 행동과 말들을..
몇 시간 동안의 이야기는 되돌이표였지만 아들의 씀씀이를 낱낱이 알게 된 부모님은 우선 돈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말만 했다. 돈을 무슨 수로 해결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집을 매도해 빚부터 갚으라는 말이었다.
결국 시가 부모님과의 의견이 대립되면서 언쟁이 높아졌다. 보다 못한 후배가 도와주었고 생각을 정리한 시부 모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아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며 며느리에게 말을 했다. 아픈 며느리에게. 사실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혼생활 5년 동안. 이 남자는 자신의 부모가 걱정할 거라는 걸 알았기에 감추고 숨겼다. 진단서와 진료내역서 말이 나오면서 며느리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다 못한 친정엄마는 다시 사돈과의 만남을 약속하고 자신의 딸과 손녀를 위해 아들이 먼저가 아니라 현재 살아야 하는 두 모녀가 먼저라며 말을 이어갔다.
이성을 잃었던 그 시간들. 막말을 하며 퍼붓었던 나, 다시 합치기로 합의 한 그 시점이 아들이 즐겼던 날이며 나와 아이에게 거짓말로 집에 못 오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믿지 않던 시부모님은 문자를 보고서야 이해를 했다.
나에게 별거 1년은 무엇보다 값진 시간들이었다. 나를 알고 나의 내면을 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머물고 있는 슬픈 내면 아이를 다독이며 보내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시간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했던 시간들이 별거 1년이었다면 그는 그저 욕망과 욕구를 이겨내지 못한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집안 곳곳에는 코스트코 물품들로 가득했고 보지 못한 가전제품들이 늘어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중요했다. 후배가 집으로 와야만 한다는 말에 피하고 싶었다. 피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 읽었던 책들의 조언에 따라 어려운 상황일수록 부딪히고 깨져야만 불행의 상황을 행복이라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지체할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감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마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여만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큰 산은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먼저 작은 산을 넘어 구비구비 이루어진 바위와 골짜기 그리고 낭떠러지를 건너야지만 큰 산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등산을 하며 알게 되었다.
산을 만나는 자세는 우리 인생을 만나는 것과 같았다. 어렵게 올라간 산 정상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힘겨웠다. 산 정상을 올라가다 보면 내리막길도 있지만 평지도 있다. 그러다 가파르게 오르는 비탈길이 존재한다. 숨이 차오르도록 오르다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평지를 만나면 스스로 위안과 칭찬을 한다. 잘 살아왔다고, 힘겨운 세상을 잘 버텼다고 칭찬하며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별 탈 없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으로 만족하며 모두에게 감사함을 보낸다. 그렇게 정상에 오른 산, 이제는 내려와야만 한다. 거기서 살아갈 수 없기에 조용히 내려오지만 내리막길 역시 만만치 않다. 큰 돌부리에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로 내 자리로 돌아온다.
결국, 인생은 산과 같다. 오르기와 내리기를 반복하는 삶은 산과 같은 인생이다.
세상은 현재 자리에 만족하면 어김없이 우주는 신호를 보낸다. 거기에 있지 말고 현재 위치에 만족하지 말라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등산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나는 고등학교 시절 등산이라는 동아리에 겁 없이 도전을 했다. 작은아이에게 닥친 시련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곧장 힘을 내어보지만 지옥 같은 삶이 싫었다. 산과 친구를 맺기 위해 등산 동아리에 참여를 했고 영남 알프스 산을 오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나이 열여덞....
산 오르는 것이 마치 내 인생과 같구나! 오르는 것만으로 숨이 벅차네.. 그렇다 평지가 나오면 벅찬 숨을 편안하게 쉴 수가 있는 산은 인생과 닮았네. 산을 내려오는 것조차 쉽지만 않구나. 여기저기 부딪히고 쓰러져야만 내가 원하는 곳을 맞이하는 산은 인생과 참 닮았네. 힘들고 지칠 때 산을 찾아 친구를 불러봐야지. 힘겨운 등산이지만 산은 나의 고통을 알고 산들바람을 불어주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며 힘내라고 하네. 등산 동아리 참 좋아. 내 인생에서 처음 선택한 동아리 너는 나의 힘이야.
작년...
동아리 시절이 다시 온 것만 같았다. 힘겨운 상황과 싸우고 전투를 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뛰고 부딪히고 오르고 내리며 고통을 감내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삶 앞에 서 있을 테니까.
드디어,
새로운 경험을 할 한주가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는 '뭐하러 접견 가냐' 고 '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지만 속은 내려앉았을 것이다.
"어머니 미워요. 가기 싫어요. 하지만 사회와 격리된 채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지 궁금하지 않을까요? 저 혼자라면 도와주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하면 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있잖아요. 먼 훗날 아이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죄는 정말 밉고 끔찍해요. 용서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죄는 죄고 그 사람 입장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 아빠가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한 여자의 남편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지만 그 사람 입장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소장을 버리지 않았다면 굳이 만나지 않고 국선 변호사를 만나 대화가 되겠지만 저는 아는 게 없어요. 어머니 이야기 조금, 후배 이야기 조금입니다. 다음 주 접견 후 국선 변호사를 만나 상황을 물어볼 참이니 국선 변호사 전화번호를 남겨주세요."
가만히 듣던 노부모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이곳을 찾은 건 모든 걸 깔끔히 정리하고 모녀가 살아가야 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 이불을 덮고 살아간 죄, 미운 정이 남아 있었기에 뒷바라지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직 산을 오르고 있다. 구비 구비 펼쳐진 산 등반은 아직 숨이 꼴딱 넘어가기 전이었으니까.
후배는 집 근처 나를 데리러 왔다. 형제가 해야 할 일들을 남이 솔선수범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후배가 없었다면 정말 힘든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누군가와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위안이 될 줄이야! 새삼 느꼈다.
매일 청심원 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듯 콩 쾅 거리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엄마다. 나는 나다. 지금 여기 나를 위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한 이상 심장이 그만 나대 줄래. 잠을 보내줄래'
달래지만 불안과 초조, 배신과 억울함으로 쉽사리 그곳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약에 의존하며 하루를 버티고 이겨냈다. 엄마가 계셨지만 마냥 투정 부릴 수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기에, 내가 극복해야 할 일들이기에 그 누구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자는 아이를 두고 교도소를 찾는 그 길은 외로웠다. 작년 가을 어찌 그토록 아름다울까?
충청도에서 5년을 살았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가을은 힘든 나에게 선물로 줬을 것이다. 우주가 말이다. 힘내라고..
청심원 한 병을 먹고서야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번호가 떴다. 세상에.. 세상에 잘난 저 사람이 왜 화면에 이름이 아닌 수용자 번호가 뜨는 걸까? 속상했다.
님아,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말이 실감 났다.
쿵쾅쿵쾅.
한 달 만에 집에서 보던 사람이 사회와 격리된 상태로 죄인인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티브이에서나 볼법한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내가 올 거라는 생각을 못한 그 사람은 나를 보는 순간 동공이 커졌고 머리를 푹 숙인 채로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그 사람이 하는 말들을 경청한 후에야 준비한 말을 할 수 있었다.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서류를 준비해달라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투병자와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이라도 편안하게 해 준 적이 있었던가? 투병자를 위해 노력한 것들이 있었는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억울함으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는 "미안하다"라는 말과 나를 속이고 아이를 속이며 한 행동을 미안하다고 했다. 이건 미안하다는 말로 상처가 아물 일이 아니었다.
남은 시간 단, 2분 후배에게 주어졌고 국선 변호사가 말한 그대로 서류를 준비해달라는 말을 했다. 자신에게 득이 되던 실이 되던 서류를 원한 그 사람이 참 뻔뻔했다.
시간이 끝나고 마이크가 꺼지는 순간 울먹이는 그 사람은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 걸까?
반성이 아닌 자신이 처한 상황에 통곡하는 모습이었다.
접견 후 집으로 귀가했다. 기다리던 엄마는 어떤 모습인지 어떤 말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그가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엄마는 해주지 말라는 말을 했지만 엄마 역시 화가 난 상태였기에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변호사 선임은 다음 문제였다. 피해자와의 합의가 문제였다. 그러나 합의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라는 걸 직감했다. 국선 변호사를 만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억대라는 걸..
하루가 멀다 하고 오는 옥중의 편지는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오직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의 소리만 있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우리를 위해 캠핑을 가주었다면 덜 억울할까? 모녀가 없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차박 캠핑 용품을 사들었다. 창고 안에는 캠핑 용품으로 뒤죽박죽이었다. 옥중 편지는 캠핑 용품들을 중고로 판매하라는 글과 그 돈을 영치금으로 넣어달라는 부탁.. 옥중 편지는 부탁뿐이었다.
일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그가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잘못을 뉘우쳐야 했다. 어린아이를 위해 미래를 보장하는 말만 했었어야 했다. 편지 그대로 시어머니에게 말을 했다. 자신에게도 온 편지와 같다는 말을 들었다.
어이없는 옥중 편지는 상처가 난 자리에 또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아이와 다시 온 여기.. 남아 있던 미련과 미운 정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옥중 편지로 후배와 의논하며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어이없는 편지를 후배에게까지 보낸 그 사람은 정말 절박했다. 하루빨리 사회에 복귀해 가정을 지키겠다는 신념뿐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옥중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 하루빨리 사회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절반 이상이라는 걸 잘 알기에 그의 비명을 그냥 듣기만 해야 했다.
9월 검찰에 송치되면서 자신이 한 행동은 심각하지 않다고 인식했다. 왜냐면.. 합의하에 이루어진 행동들이었기에.. 스스로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고 편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