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만 닥치는 그 해, 겨울 현명한 방법은 내 안에

이혼 전 이야기 5

by 치유빛 사빈 작가

변호사를 만나는 날.

손톱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나대면 손톱이 검게 물들며 현재 상황을 직감할 수 있게 했다. 청심원 한 병을 마신 후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고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여직원.


"안녕하세요! 2시에 예약한 누구누구 배우자입니다."


"어서 오세요. 빨리 오셨네요?"


"시간이 어중간해 사무실로 바로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변호사님 계시니 들어가 보세요"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법조계 사람들을 만났다면 심장이 나대지 않았을 테고, 쭈그리가 되지 않고 당당하게 들어갔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회의 테이블로 오지 않고 뭐하러 왔냐는 말투로 입을 때는 변호사.


"저는 이번 상황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황을 알고 싶고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형량은 어떻게 되는지? 합의는 왜 해야 하는지? 궁금한 것이 많아 찾아왔습니다. 시간 내주시겠어요?"


변호사는 할 말이 없다는 말투였다. 설사 나에게 할 말이 없다고 해도 당사자인 배우자가 왜 궁금한 점이 없을까? 변호사는 냉철하고 냉정했다. 말투와 행동에서 보였다. 쉽사리 감정으로 맞서지 않는 그런 직업이니깐! 법 앞에서는 감정은 개나 줘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배우자에게 상황을 말할 수 없어요. 당사자인 본인이 배우자에게 정보공유를 허락하지 않았거든요?"


"그럼 어디서 물어봐야 하나요? 답답합니다. 알아야 서류 준비할 거 아닙니까? 아무 말 없이 서류만 준비해달라고 하는 건 사람 된 도리일까요? 서류를 왜 필요합니까? 저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설사, 제가 진단서 및 각종 서류를 준비하면 법적으로 효력이 생기는 겁니까? 형량은 얼마나 감형되는 건가요?"


변호사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의 서류를 뒤적이더니 큰 그림만 이야기했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바로 집. 1년 전 우리 아이와 살던 집에서 사건이 발생되었다는 말에 피가 거꾸로 쏘기 시작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변호사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들어도 이해가 되는 범위가 아녔다. 10분 내외의 상담. 그러나 답은 없었다. 인생은 정답이 없다. 그저 살아가면서 터득하고 이해하며 잘못된 판단으로 시작한 불행을 피하지 않고 부딪혀야만 하는 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탄원서, 진단서, 진료내역서, 병원 소견서 등 법적으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슬슬 시작해야 했다. 이 일이 펼쳐지는 순간 또 다른 일들이 사방천지에 펼쳐지고 있었다. 집 매도부터 남편 명의로 된 모든 것들을 처분해야 했다. 본인이 아닌 이상 은행 업무, 카드업무, 그리고 각종 민원서류는 하루를 힘겹게 했다.










2020년 겨울, 왜 그렇게 추울까?

천안은 매서운 겨울바람을 한없이 퍼붓었다. 추운 겨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빼고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만 했다. 1심 선고가 있기 전에 모든 서류는 법원에 제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집 매도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산에 있는 소형 아파트는 자신 아들이 나오면 거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는 시어머니 말에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명의로 남게 된다면 법적으로 알 수 없는 뭔가에 당할 거 같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면서 나에게 말했다.


소형 아파트조차 매도해 아이를 위해 써야겠다는 모진 말을 하며 어머니 말을 막았다. 소형 아파트가 위치한 주위는 이미 24평형 새 아파트가 널브러져 있는 곳이었다. 상한가에 매수한 아파트는 매도 당시 하한가로 매도해야 했다. 끝 층은 비인기 층이라 높은 가격대로 내놓아도 매도할 수 없다는 공인중개사 아줌마 말에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놓았다. 오히려 천안 집이 쉽사리 판매되지 않았다.


부산에서 올 때는 천안 집이 빨리 매도되면 일찍 감치 부산으로 이사 가는 건 아닌가 내심 초조했다. 그때 상황을 보면 소형 아파트 매도가 더 쉬웠다. 서울 거주하는 부부가 아이들 명의로 소형 아파트를 매도했고 투자목적이었다. 11월 쉽게 매도된 아산 소형 아파트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면 천안 집은 될 듯 안 되는 그런 형국으로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다.


차량은 또 어떠한가? 매도될듯한 차는 크게 사고 난 차량으로 발견돼 매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감증명서조차 발급하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인간보호를 해놓은 상태였다. 퇴짜를 먹은 동사무소. 자신의 집을 드나들어야 하는 동사무소는 매일 다녀야만 했다. 코로나 유행으로 아이는 집 아니면 엄마 따라다녀야 했다. 나보다 아이가 불쌍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위해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해주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를, 바쁜 엄마를 대신해 장난감과 놀아주기를 바랐다.






먹성이 좋은 아이는 야채 빼고 고기 빼고 모두 좋아했다. 간식과 식품들로 허기진 사랑을 먹거리에 채우기를 바랐지만 그건 엄마 욕심이었다. 아이는 엄마와 놀고 싶고 엄마만 바라봤다. 아이와 놀아줄 여유조차 사치라며 일들이 쉴 새 없이 닥쳤다.


천안 집이 매도되기 전 피해자 측은 손해배상 청구라는 민사소송을 재기했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었도 집이 넘어가는 상황에 처했다. 11월 말, 매수자는 전세 세입자가 들어오면 잔금을 치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매수자 대변인인 부동산 아줌마 말이었다. 상황을 말해야 했다.


"지금 손해배상 청구로 인해 민사가 재기될 거 같아요. 그러니 매도 진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 않는다면 이 집은 그냥 법원에 넘어갈 거 같아요. 손대지 못하게 제가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하고요. 안 그러면 이 집은 법원으로 넘어가니까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매수인에게 말을 전해주세요"


부동산 아줌마는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그때.

이혼소송과 함께 진행해야 했다.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말이다. 부부로 있는 이상 나까지 진흙탕 속에 빠지고 말 거 같았다. 아이와 살기 위해서는 이 길만이 최선이었다.


가처분 진행이 되면서 전세 세입자와 계약이 되었고 이사날짜만 앞당겨진다면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될 거 같았다. 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12월 초 이사날짜가 잡혔다면 가처분 진행을 하지 않았을 텐데.. 12월 말에 전세 세입자 이사 날짜가 잡혔고 가처분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 아니면 모가 되고 있었다. 여기서도 정답은 없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져야 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가처분 진행과 이혼소송을 진행하면서 돈은 돈대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말았다.

12월 말에 전세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 가압류가 들어가게 되면 세입자는 전세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가압류를 하지 않게 되면 상대측에게 집이 넘어갈 판이었다.


읽는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처하자 이성을 잃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앞이 막막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죽어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제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힘이 빠졌고 두려웠다.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다. 넋 놓고 있다간 나와 아이는 한 겨울 길거리에 나앉게 될 거 같았다. 다른 사람 의견을 들어야 했다. 냉정하고 냉철한 사람의 조언이 필요했다.


지인은 그랬다.


"어차피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면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해야죠. 그게 뭐겠어요. 가처분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거죠. 세입자 이삿날까지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오지 않게 기도하는 수밖에요."


정말 냉철했다.

답이 없다면 해결하기 쉬운 방법을 선택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답은 그거였다. 해결하기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거. 그게 세상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만 넣으면 가압류가 되는 상황까지 온 그때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변호사님 가압류를 하면 상대측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맞아요?"


"맞아요. 가압류로 인해 대출이 정지됩니다."


"그럼, 전세 세입자가 12월 30일 이사라고 해요. 그때까지 가압류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날짜를 보니 3주 정도 남았네요. 가처분하고 일주일 전에 압류해제를 한다면 하나마나예요. 가처분을 하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결국, 가처분을 취소 선택을 했다. 세입자가 무사히 12월 30일 이사를 하고 나 역시 모든 서류가 정리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했다. 절박한 순간 적절한 방법을 선택했다.


선택했으니 그 선택을 믿어야 했다. 선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의심하지 말아야 했다. 묵묵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기도 했다. 절박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고 있었다.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이 숨통을 트이게 했다. 불행은 길게, 행복은 짧게 다가왔다.


이사날짜 잡는 것부터 이삿짐센터까지 급하게 이루어진 탓에 돈에 돈을 써야 했다. 가압류로 인해 변호사 비용은 헛돈을 썼고 이삿짐 비용조차 비쌌다. 돈잔치를 하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돈으로 이루어진 세상. 비참하면서도 인생을 새로이 배웠다.


매도를 하면서 남편의 재판 일정이 잡혔고 법원을 찾을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두 번의 재판 중 한 번은 관람이 어려웠다. 이유가 있었다.


큰 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 남자가 불쌍했고 미련해 보였다. 재판이 끝나고 나온 국변을 만났다.

어떻게 된 건지.. 선고는 언제인지? 형량은 얼마인지? 물었다.


간단하게 말하는 국변. 변호사들은 친절함이 왜 없을까? 특히나 국가에서 돈 받는 변호사가 왜 의뢰인에게는 이토록 죄인 취급을 하는지 불공평했다. 누가 죄짓고 싶어 짓었을까?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죄짓고 살아가는 게 인간 아닌가? 말하고 싶었다. 국변 앞에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 일을 봐주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주위 사람들 말에 조심했다. 그저 답을 말하는 국변 입만 쳐다봤다.


남편 혼자만의 잘못은 아녔다. 상대방도 잘못이 있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상대에게 잘못을 전가할 수 없는 유형이었다. 답답했다.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국변은 더 이상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9월부터 12월 중순까지 접견과 교도소 방문은 제집 드나들듯 다녀야 했고 수없이 오는 편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으며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처분해야 작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석 달 동안 쉼 없이 뛰어다니며 정리할 건 하고 버릴 건 버리면서 내 마음도 정리하고 버려야 했다. 오직, 아이만 생각하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법만 생각했다.


1심 재판이 끝났다. 부산으로 이사 온 후 선고기일이 잡혔다. 선고는 참석하지 못했기에 변호사에게 들었다.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된 거 같았다. 하지만, 뒷간 갔다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뭔가 해결하지 않은 찜찜한 부분이 남았다.


불쾌한 기분은 결국, 새로운 일들이 들이닥치는 예후였다. 여자의 직감은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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