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답이다

손해보지 않으려는 피해의식 때문에 괴로웠다

by 치유빛 사빈 작가

아주 오래전 일이다. 18년 전 일이 갑작스레 생각난 이유는 친구가 꿈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교류가 없던 친구가 꿈에 나타난 이유를 궁금해하다 친구와 장본 일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29세쯤 만난 친구이니까. 지금껏 연락이 되었다면 오래된 사회친구일 텐데 친구는 내가 신도시로 이사한 후 연락두절이 되고 말았다. 요리학원에서 만난 친구였고 나와 나이 차이가 한 살 정도 위아래였다. 친구로 지내면서 낯선 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 친구이기도 하다.






친구와 함께 지내다 보면 무의식 속에서 손해보지 않으려는 피해의식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사실 첫 아이 임신이 되고 친구가 부러워했다. 임신이 안된다며, 뜻대로 되지 않아 슬픔을 머금고 토해내듯 말을 했다. 괜스레 먼저 임신한 내가 미안할 정도로...


임신을 기다렸던 친구는 입덧이 가장 심한 임신 3개월에 기쁜 소식을 전했다. 자신도 임신했다며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를 물어보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입덧이 심해 변기를 잡고 살던 그때 잠시 입덧을 잊을 수 있었던 건 친구의 임신 소식이 정말 기뻤다. 그렇게 둘은 만삭인 몸으로 장도 보고 친구 집에서 놀기도 하며 임신기간 동안 즐거웠다. 하지만 친구도 나도 절약하는 사람이었다.


18년 전 콩나물 500원 치 주는 시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두식구가 먹기에는 콩나물 양이 어마 무시하게 많았다. 사실 요리학원을 다녔지만 콩나물 하나로 여러 가지 요리를 못했던 시절이라 상해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때 친구가 제안을 했다.


"우리 콩나물 사서 반 나눌까?"


"그래! 나누자. 그러면 음식쓰레기도 줄고 돈도 아끼고 좋다야"


그때부터 시작된 반반 나누기는 어느 순간 동전이 없다며 뒤 단위를 제하고 반을 나누는 친구 행동이 불쾌했다. 그 후로 일원까지도 나누려는 나의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말로 하면 될 것을...

내 감정이 아프니까 제대로 나누자고 하면 될 것을...


얼굴과 행동으로 불쾌한 표정을 잔뜩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는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집에 오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내일은 친구가 먼저 계산하게 해야지' 라며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다음날 친구를 만나는 나는 정말 친구가 없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하하하







반반 나누기는 피로가 쌓이고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친구를 멀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감정을 살피고 상대에게 불쾌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그리고 피로와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했다. 거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상대가 나를 미워할 거 같았고 친구를 잃을 거 같아 거절을 못했던 시절이다. 책을 읽었다면 그 감정은 당연한 거고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고 보면 거절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책을 읽고 시작되었다. 그 전에는 거절을 못해 전전긍긍하며 피하기 바빴고 설사 거절하는 상황이 닥치면 변명을 하며 거절했다. 없는 일을 만드는 지경까지.


반반 나누는 일, 그만하자고 말하지 못했던 건 나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내 감정에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 신도시로 이사를 한 후 왕래도 없어지고 각자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더는 친구를 찾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와 함께 장 보지 않아도 되고 반반 나누는 싫은 일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 피로가 풀렸다. 동전 하나로 스트레스와 피로를 쌓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왜? 동전 하나에 목숨을 걸고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친구의 결단력이 부러웠다. 친구가 말하는 대로 따라 간 내가 싫었다. 주도권이 뺏겼다는 감정도 있었다. 그래서 동전 하나에 목숨을 걸었고 똑 부러지는 예전 내 모습을 찾고 싶었다. 반반 나누면서 예전 나를 찾고 싶었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욕구를 알아차렸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피해의식의 감정은 갖지 않았을 텐데. 그 시절 나는 어렸고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해 손해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손해를 보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나를 힘들게 했다.





친구가 미웠던 감정, 불쾌한 감정은 내가 바보라는 걸 인정한 셈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했던 시절 관계가 멀어지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친구를 떠나보내고 나를 편안한 상황을 만들었다. 친구는 동전이 없어했던 행동이었지만 번번이 했고 자신이 자주한 행동을 친구는 몰랐다.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인지 모르는 친구는 나 혼자 감정의 골을 난 상태로 관계를 유지했고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아픈 마음을 친구에게 공유해야 했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했던 관계는 각자 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레 끊기고 말았다. 이제는 사람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유지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상처 받지 않고 YES와 NO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걸. 아무리 친하더라도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한다. 서로가 손해 보지 않은 선에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내 마음이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 그건 진심일 테지만 문득문득 불쾌한 감정이 올라온다면 싫은 행동을 억지로 한 결과일 테니까.


부모 지간에도 거리두기를 하는데 하물며 남과의 친분은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관계가 오래 유지된다. 여동생과의 사이에서 비밀이 없을 정도로 지내다 결국 터져 연락하지 않는 것처럼 내 속을 훤히 보이도록 보여주는 것도 나중에는 나에게 상처로 돌아온다. 서로가 조금씩 자신을 지키며 타인과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관계가 오래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