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국수니? 물국수니? 넌 물국수, 난 비빔국수 어때

매일 끼니 걱정

by 치유빛 사빈 작가



20대 투병으로 인해 좋은 직장을 퇴사하고 나니 심심했던 찰나 집에서 노는 꼴을 못 보는 곁에 사람은 요리학원을 다녀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사실, 엄마 곁에서 지내면서 주방일을 시키지 않았다. 결혼하면 원 없이 하는 게 살림이고 요리라며 지금부터 할 필요 없다는 엄마 말에 그 흔한 과일조차 깍지 않았고 엄마가 깎아줘야 먹었던 큰 딸은 이때만큼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사랑을 받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아무것도 못하던 똥 손이 한식, 중식, 양식은 물론 퓨전 요리하는 모습을 보던 동생은 많이 놀라고 있었다.


"와! 과일도 못 깎던 언니가 이렇게 요리를 하다니! 지금 언니가 내 언니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데.."


동생은 놀리듯 하는 말을 유머러스하게 말했다. 요리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데 내가 요리학원을 6개월 다니면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걸 보면 요리를 안 했을 뿐이지 하면 손맛이 나는 재능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요리학원에서 배웠던 요리를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불러놓고 시식하게 했다. 그게 유일한 낙이었고 살아가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몸이 지치면서 우리 가족 요리만 했다. 김치는 물론, 퓨전요리까지 척척해내는 나는 엄마 손맛을 닮은 큰딸이었다. 식당에서 하는 음식, 나도 할 수 있다며 맛과 향을 음미해 곧장 집에서 해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가장 잘 맞는 음식은 한식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중년의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으니 당연히 한식의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한식 맛을 잊지 않게 끼니때마다 고민을 한다.


날은 덥고

입맛은 떨어져 가고

억지로 먹어야 하는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물국수 먹을래? 비빔국수 먹을래?"


아이는 아직 어려 물국수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나는 물국수 먹을래"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똑똑하게 말하는 아이가 참 대견스럽고 기특하다. 비빔이라고 해봤자 간장에 참기름 넣고 만들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비빔국수가 되니 뭐를 먹던 힘든 일이 아녔다.



비빔국수



초여름부터 한여름이 끝날 때까지 새콤달콤한 맛을 끊을 수 없다. 새콤달콤 음식이야말로 한여름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할까? 궤양성 대장염은 더위에 잘 지치고 추위에 복통이 오는 아주 예민한 병을 안고 살아간다. 더위를 잘 이기려면 입맛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내가 선택한 여름 음식은 냉국, 묵사발, 비빔국수, 쫄면을 즐겨 먹곤 한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문득 새콤달콤한 비빔국수가 생각났다.


고추장 듬뿍, 식초와 설탕, 참기름과 깨만 있으면 근사한 한 끼가 해결된다. 고명은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활용하면 좋다. 여름에는 오이가 제철이라 냉장고 속에 늘 있다. 시원한 오이를 채 썰고, 신김치를 다지고, 양상추나 상추가 있다면 쭉쭉 찢어서 넣고 김을 올리면 새콤달콤한 비빔국수가 탄생된다.


이날은 냉장고 속에 미나리가 있어 미나리도 넣고 단무지가 있어 단무지도 넣고 나니 정말 근사한 한 끼가 탄생되었다. 양념장에 다진 마늘을 가급적 넣지 않는다. 너무 매워 눈물 콧물을 빼기 때문이다. 이날은 다진 마늘까지 넣었더니 세상에 매워도 너무 매웠다.


호호거리며 먹었던 비빔국수.


요리학원에서는 궁중 음식으로 물국수를 배웠지만 나는 비빔이 더 좋은 걸 어떡해. 좋으면 먹어야지..

삶은 계란이 있으면 올려도 된다. 한식은 규칙이 없다. 요리는 규칙이 없다. 내가 먹고 싶은 재료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면 되는 거니까.


어떤 사람은 고춧가루도 넣고 매실청도 넣고 좋은 거 다 넣고 만드는 반면, 나 같은 경우는 기본만 넣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고추장, 설탕, 식초, 그리고 참기름과 깨만 넣을 때가 많다. 이것만으로도 멋진 한 끼가 탄생되니까.


눈물 콧물 흘리며 먹는 모습을 본 아이는 곁으로 와 이런 말을 한다.


"엄마 그렇게 맛있어?"

"응. 먹어볼래?"

"먹고 싶은데 너무 매울 거 같아서 못 먹겠어!"


맛있게 먹는 모습에 군침이 돌았던 아이. 그러나 새빨간 양념장이 압도적으로 다가와 무서웠던 것이다.


"아니! 매울 거 같아서 안 먹을래. 엄마 많이 먹어. 먹고 운동해. 뚱뚱해지니까"


명품요리


가스나! 엄마를 위하는 척하면서 운동하라고 정곡을 찌르고 갔다. 그러나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 행여 엄마가 아플까 걱정했던 아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날은 비빔국수로 배 터지게 먹고 요가를 한 날이다.


행복이라는 건

먹고 싶은 음식을 배 터지고 먹는 거


행복이라는 건

누군가가 나를 위해 정곡을 찔리게 말해주는 거


행복이라는 건

이 모든 걸 감사하게 생각하는 거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알기까지 46년이 걸렸네..

이제는 이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가장 멋진 분위기에서 커피를 마실 여유가 있고 가장 맛있는 식당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리고 두 다리 쭉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글을 쓸 수 있는 집이 있어 참 행복하다.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찾아온다. 비빔국수가 그렇다. 사 먹는 것도 맛있지만 내 입맛은 내가 잘 알기에 내가 원하는 양념을 듬뿍 넣고 만들면 그건 명품 양념장이 되고 행복 양념장이 된다. 아픈데 너무 자극적이지 않냐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몸에서 원한다면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좋은 것도 먹고 나쁜 것도 먹으면서 스스로 면역체계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먹으면서 죄책감을 가지면 그건 독약과 마찬가지다. 나는 뭐를 먹던 '이건 보약이야'라고 생각을 하며 먹는다. 나에게는 살이 되고 피가 될 테니까.


비빔국수는 나에게 많은 생각과 철학을 주는 음식 중 하나다. 궤양성 대장염으로 음식을 가릴 때조차 비빔국수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음식이고 비빔국수로 인해 복통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먹고 행복하면 아픈 병도 낫게 했다.


오늘도 난 매 끼니 걱정하며 아이에게 물어본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열거하면서 아이에게 물어본다.

"오늘은 국수 어때?"

"난 좋아" 외치면 곧장 주방으로 간다. 그리고 뚝딱뚝딱 근사한 한 끼를 완성한다.


똥 손인 내가 명품 요리를 하는 이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함이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명품 요리를 선물하고 싶었기에 똥 손도 명품요리를 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명품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