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틀렸어!!
예전에는 쌓아두는 습관이 없었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사면 되었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졌다. 그리고 굳이 챙겨두지 않아도 인생살이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매번 정리하고 비우는 과정을 습관처럼 했다. 분기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작은 옷, 2~3년 안에 한 번이라도 손이 가지 않은 물건이나 옷 음식들을 정리하고 비우는 일은 주부로 살아오면서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연중행사였다. 아주 큰 마음을 먹어야만 했던 비우는 일은 '아까워서, 언젠가는, 날씬해지면, 마음이 편안하면' 등 각종 이유와 변명 따위를 붙여가며 쟁여두다 큰 마음이 생겨 비울 때쯤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그때그때 보이는 대로 비우면 되는 일을 미루게 되는 습관은 살아가야 할 의욕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시간들이 나를 대변해주었다. 나태함보단 어깨가 너무 무거워 그저 바닥으로 내 몸을 맡기고 싶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청소에 미쳐 있었다.
집 정리는 연중행사이거나 마음을 크게 먹어야 실행에 옮겨졌다. 정리를 잘하다 이내 정신적으로 불안함과 두려우면 소파, 책상에 물건이 쌓이고 있었다. 쌓아둔 물건을 보며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받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하기 싫어! 나중에 하자.'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매번 큰 시련이 다가오고서야 그리고 경험을 하고서야 작은 깨달음이 왔다. 강박관념이 자리 잡은 불안한 마음을 헤아리며 내려놓고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뭐가 두렵고 뭐가 무서운지 그건 허상이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내 마음을 함부로 했고 상처를 냈다.
열심히 정리하고 비우며 청소를 해도 그때뿐이며 표가 나지 않은 집안일이라는 걸 일찍 감치 깨달아야 했다. 아프고 나서야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빛 좋은 개살구를 보이기 위함이었다.
방치하며 지낸 날은 불과 5년 정도다. 그전에는 머리카락 한 톨, 정리가 가지런히 있지 않으면 강박관념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물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소한 물건만 있으면 살아지는 삶을 알아 살림을 늘리지 않았다. 하지만 재혼을 하면서 상대 습관이 나의 습관이 되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는 그야말로 내 안이 편안해야 되는 작업이다. 나는 그렇다. 내 안이 편안하고 평온해야 미니멀이 되었다. 정리를 손에서 놓고 생각을 바꿨다. '아이 키우는 집은 어쩔 수 없어! 자기 전에 치우면 돼' 생각을 바꾸니 한결 편안했다. 예전 나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아이 둘을 키우면서 치우고 정리하고 쓸고 닦고를 무한 반복하다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청소에 쏟아부었다.
그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트레스를 청소하며 풀었던 것이다. 정리를 하면 생각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건 자리를 정해 그 자리에 각자의 물건이 있을 수 있도록 했다. 베란다는 가장 신경 쓰지 않은 곳이라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베란다 청소를 했다. 나가고 싶어도 갈 때가 없으니 결국 집안에서 숨 쉴 공간을 찾았던 것이다.
숨 쉴 공간에서 버리고 비우면서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그때부터 미니멀을 실행했다. 그러다 재혼을 하면서 숨 쉴 공간조차 없었다. 나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남편이 점령했고 혼자 내버려 두지 않았다.
미니멀 대신 물건을 쟁여두면서 심적인 변화가 생겼다. 소형 아파트에 살면서 물건을 쟁여두려는 그 남자는 전쟁이 나면 먹어야 한다며 인스턴트식품들을 모아 두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사차원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두려움과 불안함 즉, 허상을 두고 물건을 쟁여두고 있었다. 그 후로 함께 생활하면서 쟁여두는 습관은 아주 강렬했다. 정리하고 비우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쟁여두는 그 사람 습관에 물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역경과 함께 아이와 단둘이 되고 나니 불안한 마음, 두려움 마음,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먹성이 좋은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쟁여두기 시작했다. 주부이다 보니 주방에 필요한 물건부터 세탁세제를 비롯해 샴푸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일 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구입하고 나니 사람이 살아야 할 공간에 물건들이 늘어져 있었다.
부산으로 이사하고 나니 확연히 드러났다. 큰집에서 모아둔 물건은 작은집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짐 정리를 하다 보니 비로소 나의 불안한 내면과 마음을 대면할 수 있었다.
비워야 생각이 정리되고 삶이 정리가 된다고 머리로는 인지가 되었다. 머리로는 인지가 되었지만 마음은 반대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결국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물건 사놓고도 고마움을 잊어버렸고 감사함은 당연하다고 착각했다. 여백의 공간은 여유로운 마음을 대변한다.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면 이것저것 구입해 내적인 불안을 잠재우려고 했다는 걸.
지금은 쟁여둔 물건들을 열심히 사용 중이다. 조금씩 여백의 공간, 여백의 미를 발견하고 있다.
그러다 이내 불안한 마음을 내비친다.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불안하면 물건을 쟁여두려고 하면 어쩌나?
쟁여두면 두고두고 쓰지 않을까?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리면 마음이 흔들려 미니멀을 포기하고 싶어 진다.
살림과 물건이 많아지니 정리를 포기하게 된다.
이제는 조금씩 안정을 찾았고 버리고 비우는 정리의 미학을 실천하려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글로 풀어야만 내 안의 불안한 근원이 무엇인지 조금 알 수 있다. 내 안의 불안한 근원은 돈을 못 벌면 어쩌나? 내가 아프면 어쩌나? 어린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내가 능력이 없으면 어쩌나? 마음의 불안함을 깨닫게 되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물건을 사고 또 사며 불안함을 달래고 있었다.
'이제 불안하지 않아도 돼'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지금처럼 말이지!' '물건 사지 않아도 충분한 능력이 있어' '쟁여두는 습관을 버려도 네가 불안해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아. 마음 편안하게 해도 돼'
하루에도 수십 번 되뇌며 머릿속에 가슴속에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문득 불안한 요소들이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을 달래곤 한다. 전문가처럼 미니멀은 할 수 없지만 여백의 미를 조금씩 늘려보려고 한다.
여백의 공간에는 그동안 상상하고 있는 공간이 탄생되기를 바라며..
이번 생에는 약간의 여백의 미를 알아가며 살아가 보려고 한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으로 태어나는 영광을 누린다면 집 안을 텅텅 빈 미니멀로 살아가지 않을까?
지금은 마음껏 누리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갖고 싶은 거 다 가지며 욕구를 충족해보려고 한다. 살아가면서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모든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이 거라며 욕심 내지 않았다. 그저 부러워 쳐다만 본 어릴 적 나를 발견했다.
이종사촌이 백화점에서 산 필기도구를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미치도록 필기도구를 모으고 있는 나를 알게 되었다. 다이소에 판매하는 다양한 볼펜과 형광펜 그리고 아이 색연필을 사고 또 샀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쓴다며 구입했다.
여동생을 바라보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림살이를 모아두는 모습에 부러웠다. 남편 눈치 보지 않고 구입한 물건을 또 구입하며 챙겨두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그 당시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남편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욕구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6년 전 남편 눈치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샀던 난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었고 지금은.. 그저 불안해서 두려워서 이거 없으면 살 수 없을까 봐 미치도록 구입했다.
아이 장난감, 교재, 문구류를 미치도록 산 나는 조카에게 원 없이 해주던 동생을 바라보며 부러웠기에 지금 아이에게 해주고 있었다.
쌓아둔 물건 또 사는 습관은 40년 전 하지 못한 억압된 욕구였으리라.
억지로 미니멀하며 스스로 칭찬했던 지난 세월은 나를 포장이었다. 살림 잘하는 아내, 며느리, 딸, 엄마가 되기 위한 나의 포장지...
지금은 그 포장지를 한 겹 두 겹 세 겹을 벗기면서 억압된 욕구를 털어버리고 있다. 언젠가는 미니멀 라이프 삶을 살아가는 나, 생각을 심플하게 정리하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그날을 고대하며 서랍에 쌓아둔 물건들을 바라보며
'이 정도면 충분해!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다 있어!
축하해! 원하는 모든 걸 가지고 살아가고 있잖아!
고마워!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어서,
감사해! 억압된 포장지를 풀 수 있는 지금이 곁에 있어서'
설레지 않은 물건이 생기도록 나름대로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20년 전 나로.. 돌아가기 위해 미니멀은 다음 생에, 지금은 그저 내 마음 알아가는 현생의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