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죽음에 대한 자세를 배우는 책, 죽음의 처세술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by 치유빛 사빈 작가


아침에 눈을 뜨고 맨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떠지지 않는 눈으로 책장을 보는 일이다. 이건 3년 전에 생긴 습관이다. 자는 방에 책장이 있다. 언제 어디에서든 책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만든 루틴이기도 하다.



한동안 소설에 빠져 지내다 오늘 아침은 유독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꽤 오래된 책이지만, 분명 나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을 거 같았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새벽녘 늦게 잠이 들었다. 잠자리에 들어서 휴대폰을 보는데 머릿속에서 번쩍거리는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그동안 내가 일궈낸 일들이 참 많았다. 내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겠구나 생각이 들자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폰 메모장에 기록을 하고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문장들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태양을 보며 다시 정리하자고 마음을 다스리고 억지로 잠을 잤다.



그렇게 잔 잠은 7시간이 되고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곧장 책장을 훑어보았다.


나와 아이가 자는 안방에 있는 책장을 보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책을 빼서 읽었다. 의학박사가 쓴 책이었다. 국내 책이 아닌 번역된 책이었다.



배경이 한국이 아닌 외국이었으니까...



그렇게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불현듯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동안 마음속에 새기고 지낸 문장과 뜻이 비슷한 책을 찾았던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 한번 태어나면 영원히 살 수 없다. 언젠가는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간다. 저곳에 가기가 무섭고 두려워 우리는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노력만으로 건강해지지만 행동을 실천에 옮기면 더더 건강해진다.



하지만 우리 살아가는 인생사가 운동만 하게끔 두지 않는다. 온갖 일들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어서 운동을 못하고 몸이 아파서 못하고 힘들어서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조차 그러니까.



하루 종일 글과 노트북으로 씨름을 하다 보면 정말 운동할 맛이 안 난다.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운동은 그저 아이와 산책으로 끝을 낸다. 숨쉬기 운동만 한다고 보면 가장 어울린다.



근데 운동만큼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생각, 마음, 정신이다.



아프다고 그 아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 행동은 병이 나를 잡아먹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병아!! 나 좀 잡아먹어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이 생각을 할 때부터 병은 점점 깊어지고 더 깊어져서 힘도 맥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병이 장악하고 만다. 그러나 병과 타협을 하고 병이 더는 내 곁에 머물지 못하도록 생각과 정신을 정화해야 한다. 말처럼 글처럼 쉽지는 않겠지!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예전 습관을 버리고 예전 삶을 버리고 조금씩 새로운 삶과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한번 들어버린 습관과 삶은 쉽게 바꾸지 못한다. 힘들다. 왜냐면 내가 편안하고 쉽게 만들어놓은 길이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바꾸기 힘들다. 바꾸기 힘들지만 내가 원하는 것과 즐기는 것이 일치하면 예전에 가지고 있던 루틴을 깨부수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나를 아는 분들은 놀란다. 어떻게 살았냐고... 살도 찌고 예전보다 더 건강한 모습에 놀란다.






병과 타협을 하다






그건 병과 타협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무서운 병이 아닌 동반자라는 형태로 소중히 병을 다루었기에 8년 동안 정상인처럼 지낼 수 있었다.

재발 없이 병원 입원 없이 약으로 내 몸을 다스리고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투병 당시 복통이 심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담당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통이라고..



출산의 고통보다 몇 배로 아픈 고통이 바로 복통이었다. 장염과 또 다른 고통이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통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무서운 말과 무서운 생각을 멀리할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었다.



죽음을 바라느니 죽음 힘으로 다시 살아보자는 힘으로 죽기 살기로 이겨냈다. 정신이 들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생각을 바꾸는 일이었다.





'인마! 네가 내 곁으로 온 이유가 있지! 그래 우리 잘 지내보자. 어차피 나을 수 없으면 나와 손을 잡고 내 몸을 보살펴 줘. 스트레스를 인지 못하는 나에게 네가 먼저 반응해 주고 그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가장 무서운 복통으로 반응을 해줘. 나는 너를 근사하고 멋진 친구로 생각할 거야. 너를 미워하거나 수치스러워하지 않을게. 당당하게 너를 들어내고 나를 들어내면서 영원히 내가 죽는 그날까지 함께 하자'







이 마음을 바꾼 건 병명이 나오고 치료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내 삶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 마음을 안고 있을 무렵 병과 친구이자 동반자로 지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서로 손을 잡고 타협을 본 후 병은 호전하게 되었다. 지금은 왕래가 없는 동생 역시 자신의 병을 힘들어했다. 무서운 말과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는 방법은 아픈 이들의 말이 아닌 의사 선생님의 의료서적의 뻔한 말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 안에 미라클(기적)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믿지 않았다. 자신 병의 수명과 악화에 대한 정보만 머릿속과 정신 속에 박아두고 있었다. 참 안타까웠다. 어려운 수술도 이겨냈건만, 손톱보다 작은 혹이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에 기가 찼고 말이 막혔다.



더는 말을 해도 잔소리로 들릴 거 같아 그만두고 스스로 깨달아야만 아는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병과 손을 잡고 무서워도 더 무서운 병이 오지 않기 위해 네가 온 거라고 믿었다. 대장암보다 궤양성 대장염을 가진 나는 운이 좋은 사람, 운이 좋은 여자라고 스스로 칭찬을 했다.



배변 통을 차지 않아도 인공 항문을 하지 않아도 우주가 신이 부모가 주신 몸 그대로 주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만으로 감사했다. 수술하지 않고 약만으로도 병이 호전되고 있어 나를 감사해했고 병에게 감사했으며 온 우주에게 감사함의 기도를 했다.



내가 안고 있던 병은 10년 전만 해도 생소한 병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의료진도 긴가민가 하면서 병의 진행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은 같은 치료를 한다. 다른 점은 발병한 부위가 다를 뿐이다.



궤양성 대장염 장점은 대장에만 염증이 있다. 그러나 단점은 대장암 발병이 높다는 거.



크론병 단점은 소화기 계통에 염증이 다 분포되어 있다. 목구멍부터 항문까지 (소장 대장 전부 염증) 염증으로 시술이나 검사가 힘들다. 그러나 정점은 암이 늦게 아주 늦게 발병한다는 거다.



장단점이 다르지만 무서운 병이긴 하다. 언제 어떻게 병이 터져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병이기도 하고 치료제가 없어 힘든 병이기도 하다. 이런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알아가다 보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아픈 배보다 정신적으로 아픈 것이 더 미치게 아팠다.



더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병을 회피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그 후로 병과 타협하고 무서운 정보를 멀리하고 마음과 정신을 정화하고 아플 때마다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나를 알아가는 작업을 놓치지 않고 있다.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하지만 나는 아파서 죽는 것보다 건강하게 내 몸과 정신을 가진 상태에서 평온하고 편안하게 죽고 싶다.



그래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같은 병을 가진 환우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다독여주고 희망을 주는 책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육체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부터 바꾸는 이야기이다. 나의 10년 전 병마, 20년 전 병마에 대한 자세를 이 책에서 그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병에 대한 처세술을 알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참 신기하다. 오늘 이 책이 꽂히고 눈으로 읽게 되다니... 2년 동안 꺼내지도 읽지도 않은 책이다.



제아무리 죽을병에 걸려도 내 마음과 정신을 바로잡으면 이겨낼 수 있다. 나처럼.



나는 병이 진행되면서 죽을 만큼 아팠고 죽을 문턱까지 갔다. 그런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다시 살고자 하는 욕구가 커서 신이 우주가 나를 데리고 온 거 같았다. 나는 영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믿는다.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렇다고 전체를 다 믿을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적당한 선에서 내가 경험한 경험치만 깨달으면 살아가는데 그리 힘들고 지치지 않다. 한번 병든 몸 [육체이든, 정신이 든, 마음이든] 예전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단군 할아버지가 신이 우주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하고 가져가야 할 것은 정신과 마음만 잘 다스리면 그러니깐 병이 나를 잡아먹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암도 희귀병도 난치병도 타협을 한다.



그건 단군 할아버지도 우주도 신도 알고 있는 거 같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나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병이 무섭지만 그렇다고 이겨내지 못할 건 없다.

치료가 두렵지만 그렇다고 죽지는 않았다.



고통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만큼 힘들지 않다.


내가 직접 겪고 경험한 경험치를 말하고 있다. 거짓 1도 없는 글이다.

죽음보다 현재 이 고통이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럽고 덜 무섭다.



그래서 살아가는 거니까.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힘이 난다. 살아야 하니까...



그 어떤 것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때가 가장 아름답고 고통이 없을 것이다.


모든 이가 바라는 것일지도..



죽음 앞에 무너지지 말고 똑바로 살아야 한다. 죽는 것보다 훨씬 좋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