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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Dec 08. 2021

서랍 속 정리는 나의 작은 미니멀 실천

싱글맘 미니멀 라이프

나에게는 이상 증상이 있다. 내려놓을 때 내 마음만 내려놓는 것이 아닌 집안 살림까지 내려놓는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다 보면 아이도 덩달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다.

서랍 속부터 먼저 미니멀을 시작했다. 올여름부터 이어지던 무기력함과 나태함을 유지한 채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이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서랍 속이었다.

여기에는 비상약품과 아이 로션 등 보관하는 서랍장이다. 근데 올여름부터 여기는 엉망진창이 되어 찾아야 하는 물건은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때마다 숨바꼭질을 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노랫말처럼 정말 급할 때 보이지 않는 물건 때문에 스트레스는 최고조로 향했고 결국, 넋 놓고 지내던 여름, 서랍 속을 열어 두서없이 나열된 물건들을 꺼내기로 했다.


정리하면 그때뿐, 또다시 두서없이 엉망진창이 되지만 그렇다고 정리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다.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24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 마음도 황폐해지고 긍정적인 기운보다 부정적인 기운으로 아이에게도 짜증 내지 말아야 할 일도 쉽게 짜증이 낸다.


이런 악순환이 시작되면 아이와의 관계도 무너지고 그동안 쌓아둔 신뢰도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슬럼프에 빠지면 기본 생활인 의식주가 힘들 때가 많아 쉽사리 지치고 만다.


지친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곁에 있는 아이까지 피해 입을 거 같아 덜컥 겁이 났다.






지친 몸을 일으켜 서랍장을 활짝 열었다. 어지럽힌 서랍 속은 지금 내 마음과 같아 쓰라림이 올라왔다. 하수구에 마음을 처박고 정신을 구정물에 버려진 엉망진창인 내 마음이 서랍 속과 같았다.


정신없고,

마음 둘 곳 없고,

서럽고,

불안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서랍 속.


그래서 더 외면했다. 더러운 내 마음을 보는 거 같아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뭐 하나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나를 비교할 거 같아서..


집구석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집은 내 안의 수치심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방증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했다. 때로는 방치하는 것도 이로울 때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경우는 이로울 때가 아닌 내 마음을 더 숨기고 내 수치심을 숨기며 외면하려는 습성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방증이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해 집구석을 거지꼴로 만들었다.







마음과 정신을 어지럽히는 모든 것을 털어버리기 위해선 두서없이 진열된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힘든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워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올여름은 참혹할 만큼 힘들었다. 해야 할 일도 산더미, 해결해야 할 일도 산더미인 데다 매일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삼시세끼 챙기는 일은 버거웠다.


그냥 늘어져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고 싶었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일 년 동안 힘들었던 나를 다독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숨겨진 마음이 담금질을 쳤다. 누구는 성장하는데 너는 뭐 하고 있냐고 나약해질 거냐고, 앞으로 도약하지 않을 거냐고 속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속 시끄러운 소리가 듣기 싫어 귀 막고, 눈도 감아 버렸던 여름.


3개월을 처참하게 무너지고 질책하고 채찍질을 하며 내가 사용한 책상과 책장 그리고 내가 손을 대고 아이가 손대는 물건에는 속 시끄럽게 어지러웠다.


글을 쓰기에 자신감과 자존감이 무너졌고 바닥을 쳤다.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허우적거렸다. 너무 허우적거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어지러운 서랍장도 보였고 지천에 널브러진 옷도 보였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이루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버리고 비우고 정리하며 생각과 마음을 심플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토록 외면한 인정하지 않았던 부분이 보였다. 즉,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수치심으로 가져오고 말았다.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찮은 나를 취급했다.


이제는 정리된 물건 그대로

내 마음과 생각도 잘 정리되어 앞으로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버리고 정리하며 비워지고 나니 좋은 소식이 들어왔다. 그동안 침체기였던 내가 비로소 빛을 보며 환하게 웃게 되었다.


미니멀은 곧 정리다. 버리고 정리하고 난 뒤 비워진 그곳에는 천운이 들어왔다. 좋은 운으로 나를 찾아왔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더욱 성장하게 된다. 어려움을 겪어 봐야 깨닫게 된다.


나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충분하다는 걸..

나 존재 자체로 멋지고 대단하다는 걸...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족함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비워진 공간에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정리의 미학,

비움의 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나는 오늘도 버리고 비우고 정리하면서 새로운 생각과 마음을 채워 넣는다. 양 어깨가 무거워 버겁지만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어 조금 더 멀리고 가보려고 한다. 느리게 가더라도 내가 원하는 그곳에 가보려고 한다.


2021년 슬럼프와 번아웃으로 오락가락한 마음이었다면

2022년 올곧은 목표와 꿈으로 향해 전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손에서 놓았던 책을 들어 잘근잘근 씹어 먹어 소화하려고 한다.


2021년 충분히 쉬고 충분히 놀았다면

2022년 충분히 뛰어다니고 충분히 나를 위해 성장할 것이다.


집안을 한 번 둘러보자. 내 안의 불안의 근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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