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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an 27. 2022

마흔이 지나는 나는 다시 여자로 태어나다

마흔이 넘도록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잊고 살았다. 그만큼 삶이 치열하면서도 버거웠던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를 회상하면 나는 이러했다. 나를 위하는 일을 찾다 보면 어느새 아프다. 아프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은 돌아가지 않았고 현재 지금 생활에 안주하는 일상이 늘 지배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야 내 안에 꽁꽁 숨겨둔 열정적인 마음, 바라고 애타게 그리운 마음을 알았다. 


먼저 찾은 건 꽃이었다. 예전에는 어느 누가 꽃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면 나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꽃보다 돈이 좋은 거 아니야. 꽃은 금방 시들고 버려야 하는 쓰레기에 불과한데 왜 꽃 선물이 좋을 거지?'라고 말이다.


근데 이제 생각해보니 내가 나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꽃 선물을 그리워하면서도 꽃 선물을 받은 친구를 질투했던 것이다. 돈이 아까워서, 시들면 더는 볼 수 없어서. 나와는 꽃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아름다운 꽃은 자신의 생명을 다하면 사라졌다. 나에게 설렘, 기쁨, 평온함 등 다양한 긍정적인 에너지와 말을 남기고 짧은 시간에 사라지는 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 같은 경우는 오롯이 혼자여야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깨닫게 되고 인정할 수 있었다. 과거에 묻힌 나는 상대의 부정적인 말에 숨죽여야 했고 상대의 곱지 않은 시선에 주눅 들었던 그 시절 당당하지 못했다. 뭘 하든 나를 깎아내리려는 사람들만 내 주위에 있었으니까.


이제는 아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스스로 나를 지키고 있다. 

요즘 나는 당당하게 말한다.


"나, 꽃 너무 좋아해. 꽃 사러 갈 거야. 나는 양초가 너무 사랑스러워. 촛불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지거든. 요즘 가수가 불러주는 노래가 너무 좋아. 듣다 보면 온 몸에 전율이 흐르게 해 주잖아. 거기에 더해 감성이 충만해져. 나 노래 부르고 싶어. 열심히 노래 불러서 노래 잘 부르는 가수를 부러워하지 않고 내가 나를 부러워할 거야. 이걸 왜 숨기고 억압하며 살았을까? 이제는 내 인생을 기준으로 살 거야. "


이처럼 나는 나와 약속을 했고 나와 아이에게 약속을 했다. 1년 정도 온전히 나만 바라보며 내 안의 소리를 들었다. 거기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반응은 붉은 노을을 바라보면  문득 옛 추억에 잠기다 잊고 있던 꿈이 상기된다. 캔들에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화려한 촛불처럼 내가 나를 아름답게 바라봐야만, 내 안에 메말라 버린 감정을 버릴 수 있었다.


카라 꽃을 바라보면 황홀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을 알았다. 이러는 나는 여자였다. 주부가 아닌 엄마가 아닌, 누구의 여자가 아닌 내 이름 석자인 여자가 되고 싶었다.


"누구 엄마. 누구 어머니. 누구 큰 딸 아니야" 부르기보단 "무한계 미인님, 사빈님, 효정님" 나의 이름이 불러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20대는 이름 대신 '미스 김, 김양' 불러졌다. 하지만 이때는 나 자체만으로 인정을 받았고 성과를 내면서 살았기에 성취감이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서 더는 나의 이름이 사라져 버렸다. 이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이름이 내 이름이라고 착각할 만큼 살았다. 아이 이름이 내 이름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제는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나에게 마음껏 내 이름을 불러본다. 마음껏 불러본다. 

'효정아, 효정아, 사빈아, 사빈아, 무한계 미인아 무한계 미인아' 이렇게 부르다 보면 내가 살아 숨 쉬는 거 같다. 내가 여기에 서 있다고 말하는 거 같다.


엄마가 불러준 '야' 보다 '효정아' 불러 줄 때가 희열을 느낀다. '영아야' 부르는 건 싫다. 예전 이름인 영아는 아픔이 많이 담겨 있다. 36년을 동안 불린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고 이제는 닉네임으로 불러진다. 그리고 사빈이라고 불러진다. 


한 여자가 다시 살아보려고 한다. 가슴 깊게 묻어 둔 '사랑' '이쁨' '아름다움'을 마음에서 피어나게 한다. 나는 여자다. 엄마 이기전에 여자이고 딸 이기전에 여자다. 


20대 좋아하는 것만 찾았던 나로 다시 돌아간다. 27년이 흘러 버린 지금 그때처럼 좋아하는 것만 쫓아 나를 찾아보려고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뜻이기도 하다.


매일이 신비롭다. 내가 나를 찾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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