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에세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에 다른 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줌으로써 시간과 교통비를 아낄 수 있고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것이 작은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작은 기적은 점점 불어나서 이자를 내게 준다. 바로 일생일대의 죽음 앞에서 큰 기적으로 찾아온다.
20년 전 죽음 앞에서 기적을 본 적 있는 나는 죽음 선고를 받고서도 죽음을 이겨냈다. 의사 선생님은 보호자에게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죽을 거라는 걸, 시한부 삶이라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주지 않은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믿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기적처럼 일어나서 정상인처럼 걸어 다녔다.
크고 작은 기적을 맛 본 나로서는 죽음 앞에서도 정신만 차린다면 기적을 맛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느 날 드라마에서 대사로 나왔다.
작은 기적을 무시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기적은 그저 그런 값어치 없는 사소한 일로 치부된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나는 어렵고 힘든 위기에서 기회를 어떻게 잡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위기가 내 주위에는 도사리고 있다. 위기가 도사리지만 위기에서 기회를 잡으면 그거야 말로 기적을 잡은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드라마 대사를 듣다 보면 공감되는 내용이거나 내 인생과 닮은 대사를 듣게 되면 전율이 흐른다. 곧이어 사람 사는 세상은 별거 없다고 죽음 아니면 삶이다. 죽고 싶어도 쉽사리 죽지 못하는 게 인생이고 삶이라는 걸 아주 오래전에 경험했다.
죽음이라는 위기에서 멸치쌈밥을 먹고 기회를 알아차린 것처럼 다시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내비친다면 드라마 주인공처럼 기적을 경험하지 않을까. 나 또한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알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썩은 동아줄을 잡았고 다시 살아났다. 위기에서 기회를 봤고 기적을 일으켰다.
죽는다는 환자가 생긋 웃으며 의료진을 맞이 했고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호자분 우리가 기적을 일으킨 거 같아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축하합니다. 앞으로 경과를 보고 퇴원합시다. 환자분 좋은 경과로 퇴원하면 병원과 빠이 합시다. 약속해요"
교수의 말을 들은 후 이주만에 나는 퇴원을 했고 교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 병으로는 교수를 찾는 일이 없었으니까.
기적은 삶과 죽음 앞에서 늘 일으키고 있다. 살고자 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적이라는 이름을 달고 내 곁에 온다. 드라마를 보다 인생의 단어 하나에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 날에는 이렇게 글로 풀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한 단어로 글로 풀어쓰기란 힘든 작업이다. 예전에 나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을 단어와 문장을 요즘 들어 귀담아듣고 글감 노트에 기록하는 습관이 된 건 아마 이런 이유에서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감추어진 감정과 나도 내가 몰랐던 상처가 고스란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정이 아프면서도 통쾌하게 느껴져 습관처럼 메모하고 한 단어에 담긴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있는 거 같다. 작업은 힘들지만 그 뒷면에는 통쾌함이 있어 지속 가능한 거 같다.
삶 그리고 죽음 거기에는 기적이 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죽음과 싸우고 산다.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기를 미루고 까무러치게 잘 살아야 한다. 영화 대사처럼 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그럼 기적은 슬그머니 내 앞에 도착해서 손을 흔들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