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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an 25. 2022

기적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엄마 에세이

"기적은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일상에서 기적을 맛볼 수 있다"


기적이라고 말하면 무슨 벼락부자가 되었냐고 말을 들을 것이고 또는 로또에 당첨되어야만 기적이라고 말을 하겠지만 이건 기적이 아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하는 일마다 걸림돌 없이 쭉 이어지는 즉, 승승장구하는 것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이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큰 기적을 바란다면 소소한 일상에서 작은 기적을 모아야 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기적으로 이루어진 삶으로 살았다. 그리고 안다. 그것이 기적이라는 걸. 길을 걷다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가 급정지를 하면서 나에게는 그 어떤 해가 되지 않았던 거, 일주일 한 번 미술 학원 가는 아이를 위해 엄마인 내가 먼 거리를 아이와 함께 다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보충수업을 하게 된다면 주중에 두 번을 학원을 찾아야 한다. 이런 힘든 상황을 안 선생님은 오늘 온 김에 다음 수업을 이번 시간에 다 듣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하는 것이 기적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에 다른 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줌으로써 시간과 교통비를 아낄 수 있고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것이 작은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작은 기적은 점점 불어나서 이자를 내게 준다. 바로 일생일대의 죽음 앞에서 큰 기적으로 찾아온다.


20년 전 죽음 앞에서 기적을 본 적 있는 나는 죽음 선고를 받고서도 죽음을 이겨냈다. 의사 선생님은 보호자에게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죽을 거라는 걸, 시한부 삶이라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주지 않은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믿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기적처럼 일어나서 정상인처럼 걸어 다녔다.


크고 작은 기적을 맛 본 나로서는 죽음 앞에서도 정신만 차린다면 기적을 맛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느 날 드라마에서 대사로 나왔다.


작은 기적을 무시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기적은 그저 그런 값어치 없는 사소한 일로 치부된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죽기 전 바위 위에 서있는데 어디선가 멸치 냄새가 나는 거야. 냄새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죽을 만큼 멸치 쌈밥이 먹고 싶은 거지. 결국 나는 이런 생각을 했지. 죽더라도 멸치쌈밥을 먹고 죽어야겠다고, 그 길로 나는 멸치쌈밥 집에서 밥 한 공기와 멸치찌개에 쌈을 싸서 먹었어. 그리고 생각을 바뀌었지. 이런 맛있는 음식을 두고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죽음에 '죽'자를 꺼내지 않게 되었어.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 멸치 쌈밥을 먹고 난 후 나는 고깃배를 타고 죽자 살자 일을 했어. 고깃배에서 번 돈으로 빚을 다 갚았고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거야. 그러니 사람 생명은 어느 순간 무슨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지는 법이야"


주인공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나는 어렵고 힘든 위기에서 기회를 어떻게 잡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위기가 내 주위에는 도사리고 있다. 위기가 도사리지만 위기에서 기회를 잡으면 그거야 말로 기적을 잡은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드라마 대사를 듣다 보면 공감되는 내용이거나 내 인생과 닮은 대사를 듣게 되면 전율이 흐른다. 곧이어 사람 사는 세상은 별거 없다고 죽음 아니면 삶이다. 죽고 싶어도 쉽사리 죽지 못하는 게 인생이고 삶이라는 걸 아주 오래전에 경험했다.


죽음이라는 위기에서 멸치쌈밥을 먹고 기회를 알아차린 것처럼 다시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내비친다면 드라마 주인공처럼 기적을 경험하지 않을까. 나 또한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알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썩은 동아줄을 잡았고 다시 살아났다. 위기에서 기회를 봤고 기적을 일으켰다. 


죽는다는 환자가 생긋 웃으며 의료진을 맞이 했고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호자분 우리가 기적을 일으킨 거 같아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축하합니다. 앞으로 경과를 보고 퇴원합시다. 환자분 좋은 경과로 퇴원하면 병원과 빠이 합시다. 약속해요"


교수의 말을 들은 후 이주만에 나는 퇴원을 했고 교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 병으로는 교수를 찾는 일이 없었으니까.


기적은 삶과 죽음 앞에서 늘 일으키고 있다. 살고자 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적이라는 이름을 달고 내 곁에 온다. 드라마를 보다 인생의 단어 하나에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 날에는 이렇게 글로 풀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한 단어로 글로 풀어쓰기란 힘든 작업이다. 예전에 나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을 단어와 문장을 요즘 들어 귀담아듣고 글감 노트에 기록하는 습관이 된 건 아마 이런 이유에서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감추어진 감정과 나도 내가 몰랐던 상처가 고스란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정이 아프면서도 통쾌하게 느껴져 습관처럼 메모하고 한 단어에 담긴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있는 거 같다. 작업은 힘들지만 그 뒷면에는 통쾌함이 있어 지속 가능한 거 같다. 


삶 그리고 죽음 거기에는 기적이 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죽음과 싸우고 산다.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기를 미루고 까무러치게 잘 살아야 한다. 영화 대사처럼 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그럼 기적은 슬그머니 내 앞에 도착해서 손을 흔들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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