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Jan 24. 2022

가족은 나를 받아주는 곳

엄마 에세이

3년 전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상처 입은 곳에 또 상처를 내는 행동을 우리는 했었다. 내가 더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건 내가 나를 아프게 했던 일이었다.


내가 나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남 탓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3년 동안 떨어져 지냈다. 매일 같이 연락하던 자매가 그리고 끔찍하게 생각했던 엄마마저 등을 지고 말았다. 


죽어서도 찾지 말라던 동생의 말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세 모녀는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3년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다 어느 날 동생은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이날은 나와 아이가 자가격리 통보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불행이든 행복이든 한꺼번에 터진다. 하나씩 곁으로 다가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 동생은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상기된 목소리로 엄마는 맏이에게 말을 했다.


"동생이 연락 왔어"


"정말? 이게 무슨 일이야"


사실 그때 감정은 불길했다. 그 아이가 연락했다는 건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암시와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많이 아팠다. 


"오늘 집으로 온다는데 너도 와라"

"나 지금 못 가지. 자가 격리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나가? 만약 나갔다 들키면 누가 벌금을 물어?"

"하긴 그렇네"

"그냥 엄마와 동생 내외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그래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자가격리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동생 근황을 전화로만 알 수 있었다.


긴 한 숨을 쉬는 엄마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3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던 동생은 자신의 인생이 다급하다고 했다. 세 모녀는 늘 불행 앞에서는 똘똘 뭉쳤다. 


그간 주었던 상처는 잊어버린 채 그 아이가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였다. 엄마와 나는...


동생은 자신이 아픈 몸이라서 엄마에게 그리고 언니에게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건만, 부모와 언니에게 힘을 얻고 싶었던 동생 마음을 읽었다. 그동안 마음공부를 하며 그 아이의 잘못을 용서했고 내가 잘 못한 부분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용서를 구하고 더는 너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동생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하니 동생은 그 상처를 가슴에 묻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억압이었고 상처를 치유한 채 아픈 부분을 숨기고 말았다. 동생은 그 자체가 억압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아프니깐 괜히 건들어서 불편한 관계로 돌아갈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내가 동생에게 말을 했다. '그동안 애썼어. 힘들었지. 내가 너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 미안해. 용서해 줘' 다양한 말로 그 아이 아픈 부분을 만져주었다. 


나는 나의 상처를 마주하고 만져줄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동생은 없었다. 동생 상처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안에 머물고 있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동생 상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동생은 그랬다.


"진작에 언니와 통화를 할 걸. 너무 늦었어. 미안해"

"아니야. 오히려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았을까?"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잖아. 떨어져 지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으르렁거렸을 걸. 그리고 네가 더 손해야. 내가 더 손해야 하며 손익을 따지고 있었을 거야."

"그렇게 말하니 또 그러네"

"3년 동안 우리는 아마 많이 성장했을 거야"

"맞아. 언니야"


어눌한 발음으로 답을 해주는 동생이 대견스러웠다. 우리가 다시는 떨어지지 않고 잘 지내려면 이유 없이 올라오는 상처와 분노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내 안의 상처는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다고 그러니 내가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야 한다는 말을 긴 설명으로 이어졌다. 동생은 지금 수술을 하고 회복하고 있다. 어려운 단어는 지금 동생에게 힘들게 했다. 동생 병을 너무 잘 알아서 조금 더 건강한 내가 길고 길게 설명을 했다. 설명했더니 동생은 공감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가족은 그런 거 같다. 아무리 아픈 상처를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도 용서가 되는 거. 안 볼 것처럼 말을 내뱉고 연락을 끊더라도 아프거나 기쁜 일이 생기면 연락하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사회이다.


동생이 더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내 몸을 함부로 해서도 안되고 학대해서도 안된다. 자신은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그러니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아픈 내면 아이를 다독이고 떠나보내자고 했다. 엄마가 섭섭하게 했던 일, 아빠가 힘들게 했던 그때,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했던 상처가 내 안에 머물고 있다면 스스로 풀어주고 놓아주어야 한다. 놓아주기 위해서는 아픈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봐야 한다. 아픈 상처를 보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지만 그 실체를 알아야 내가 나에게 나와 연결된 가족에게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 더는 바라지 않게 된다. 


마지막엔 스스로 살아갈 용기와 힘이 생긴다. 동생에게 신신당부했다. 너와 나 그리고 엄마는 아픈 사람이니 더는 나를 힘들게 하지 말고 나를 위해 살자고, 그래야만 한다고 했다.


동생은 무한한 공감으로 3년 동안 미루었던 대화를 이어갔다.


세 모녀는 더는 자신을 학대하지 말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한 여자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제는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고 많이 후회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부산여행] 영도 목장원과 흰여울 문화 마을에서 힐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