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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an 21. 2022

[부산여행] 영도 목장원과 흰여울 문화 마을에서 힐링

엄마 에세이

작년 가을 문득,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부산을 지천에 두고 먼 곳을 갈망하는 나에게 물었다.


'너 지금 어디를 가고 싶은 거야. 네가 사는 곳도 멋진 곳인데 굳이 먼 곳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뭐니. 그 이유를 생각해봐'


마음의 소리를 곰곰이 생각한 결과 부산은 내가 모르는 멋진 곳이 있었다. 내가 부산을 떠나 타 지역에서 몇 년을 살면서 부산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다.


타 지역 사람들은 부산에 여행 오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갈망하는 지역에 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내가 사는 곳에서부터 여행을 했다.


가장 먼저 내가 태어난 곳, 부산 영도를 둘러보았다.


작년 가을에 시작된 내 지역 내 고향을 둘러보면서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다. 나만 늙고 변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깨워 준 곳이 바로 도심의 변화, 고향 변화였다.


낡고 허름한 지역이자 아무도 찾지 않던 섬의 동네 영도가 아름답게 변하고 있어 가슴 한편이 뿌듯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킥보드와 함께 외출을 했다. 공원이 없는 동네는 킥보드를 마음껏 탈 수 없는 아이를 위해 무거운 킥보드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내가 어릴 적 영도 목장원은 드넓고 큰 공원이 있었고 홍합탕을 끓여 팔던 포장마차가 있었다. 넓은 공원은 어느새 아주 작은 공원으로 변했고 포장마차는 사라졌다. 영도에서 자라면서 갈 곳은 목장원 앞 공원에서 한 여름 더위를 피했다. 바다 바람이 불어주면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를 눅눅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선물을 주었다.


뛰어놀던 나는 엄마에게 배고프다고 했다. 그럼 옆 포장마차에서 끓이고 있던 홍합탕과 먹거리를 잔뜩 내어준 주인아주머니가 많이 먹으라고 덤을 주었다.


어린 시절 10대에 머물렀던 목장원 공원은 행복 가득 그 자체였다. 어렸으니 넓었다고 생각한 공원은 마흔이 훌쩍 넘기고 공원을 찾으니 너무 작아져 있었다. 공원이 작아진 것이 아닌 내가 늙어가고 있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아마 내 아이가 지금 바라보는 공원은 넓고 광활할 거라는 생각이 미쳤다. 아주 작은 공원은 포차 대신 정자가 놓여 있었다.




영도 바다는 배들이 늘 떠 있다. 유조선과 선박들이 주로 배를 메운다.


가을 하늘은 드높고 새파란 색을 자랑한다. 운동하기 더없이 좋은 가을을 만끽하며...





엄마와 할머니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하면서 킥보드를 타고 있는 아이는 신이 났다.

파란 건물이 오래전 보았던 목장원 모습이 아니다. 어릴 땐 목장원의 고기가 비싸서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먼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근데 지금은 나이 든 모친을 모시고 그저 바라만 보던 목장원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만큼 나와 엄마는 나이 들고 있었기에 가능한 생각이다.





목장원 가는 길목마다 개미와 공벌레를 보며 신이 나는 아이는 종알 종알 말을 했다. 한 여름 집에만 있던 아이는 세상 밖은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을 것이다.


킥보드 타는 요령을 몰라 직진만 하는 아이는 샛길로 빠지는 킥보드를 멈추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가는 모습에 킥보드 운전하는 것처럼 너의 인생은 네가 원하는 방향대로 주도적으로 움직였음 하는 바람과 믿음으로 아이 뒤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간혹 살다 보면 옆길로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낙담이나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운전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책임일 것이다.




어릴 때는 영도 바다가 그저 슬펐다. 고뇌, 슬픔, 분노, 서러움, 화, 짜증 등 다양한 분노로 얼룩져 바다가 그저 아파 보였다. 


지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마흔이 훌쩍 넘긴 지금, 영도 바다는 황홀 그 자체였다.

영도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던 나는 엄마로 인해 영도를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목장원에 바라보는 영도 앞바다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잔잔한 파도에 맞춰 배들은 춤을 추었고 광활한 바다를 향해 운항 중일 것이다.


영도는 조선소가 유독 많다. 그 이유는 바다가 있으니까. 항구가 많다.


친정엄마는 종일 굶다 딸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그때서야 한 끼를 먹는다. 그런 엄마를 잘 알아서 일찍 감치 저녁을 먹는다. 


이날도 오후 4시에 목장원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목장원 음식이 변했다. 맛도 변했고 모든 인테리어가 바뀌었다. 사람만 늙고 변하는 것이 아닌 음식도 변하고 맛도 변하는 법.


고급지게 나온 음식은 요즘 추세를 따라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짓수는 많지만 고기와 먹을 수 있는 찬들뿐이었다. 주로 장아찌류...




딸은 심한 편식쟁이다. 국물 말고는 밥을 먹지 않은 아이를 위해서 된장찌개는 필수다. 맑은 국물에 흰밥을 비벼주면 밥 한 공기는 거뜬히 해결한다.


남은 건더기는 어른들 몫.



양념 소고기. 한우가 아닌 수입산이지만 가격은 비쌌다. 야들야들한 고기 한 점으로 오후를 맞이했다.

여자 둘이서 먹는 고기 양치고 너무 적은 양이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두둑하게 배를 불리고 나니 따뜻한 커피가 절로 났다. 


맛있는 고기를 먹지 않은 아이를 위해 이런 말 저런 말로 유혹했지만 아이는 먹지 않았다.

언제쯤 맛있는 고기 맛을 알지, 엄마는 애가 탔지만 먹기 싫은 음식을 눈앞에 두고 훈수 두는 일은 가급적 피한다. 많은 잔소리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만 자극하는 행위이다.


나중에 먹고 싶은 생각이 들면 말해라고 말한 뒤 어른들은 열심히 먹었다. 깔끔하고 고급진 식당을 쉽사리 가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이 날은 내가 내는 날.


"목장원 비싸지 않냐"

"비싸 봤자 고기 값이겠지. 죽으면 못 먹어.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야. 그냥 먹자. 다른 곳에 낭비하지 않으면 되니까.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거야. 돈은 벌면 되지만 건강을 잃으면 예전으로 되돌리기 힘들어. 여기 음식은 어떤 맛있지 먹어보자"


돈부터 걱정하는 우리네 엄마.


그런 엄마를 위해 맏이는 엄마를 이끌었다. 한우를 먹자는 맏이와 고기가 고기지 하며 수입 고기를 고르는 엄마 사이에서 갈등했다.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맏이보다 맏이 주머니 사정을 먼저 헤아리는 부모 마음이라서, 그래서 나는 엄마 뜻대로 수입산 고기를 주문하고 아주 맛있게 먹었다.




목장원 오후은 황홀 그 자체였다. 봄에 오면 더 황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며 사진을 찍고 찍었다.

석양은 늘 옳다.


이 날은 구름이 많은 오후라서 지는 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광활한 바다 아래 석양빛이 조금씩 물들고 있었다.





목장원에 왔으니 흰여울 문화 마을로 가자고 했다. 엄마 가게가 영도라서 아직 시간이 있다며 흰여울 문화 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가는 길마다 포토샵이 있었고 흔들의자가 있었다.


많이 걸은 아이는 흔들의자에서 한참을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길을 넓힌 영도 도로. 산복도로가 많은 영도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카메라가 들이대는 곳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흰여울 문화 마을이 다가왔다. 옹기종기 모인 주택을 헐고 그곳을 카페로 전환한 이곳은 영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한 집 걸러 카페가 있었다. 여기 살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드는 생각에 엄마에게 물었다. 하지만 엄마 역시 모르는 일. 


"야, 여기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어. 어떻게 이렇게 변했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 옮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일부분은 살겠지?"


"그거야 모르지. 관광객이 이렇게 많은데 시끄러워서 살 수 있을까? 다른 동네로 옮겼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친정이 있는 엄마, 고향인 영도가 아름답게 변한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은 익숙한 곳에 관심이 없다. 딱 엄마가 그랬으니까.


맏이 덕분에 영도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던 엄마였다. 내가 어릴 때 빼고는 태종대며 유적지를 다니지 않은 엄마다. 영도를 떠나 다른 동네에서 몇십 년을 살다 보니 자신이 가는 곳 말고는 관심을 두지 않은 엄마라서 새롭게 변한 영도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여기보다 더 아름답고 이쁜 카페가 있겠지만 일단 다리 아프다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눈에 띄는 카페로 들어섰다. 바리스타는 중년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해가 지고 노을이 내리는 영도 흰여울 문화 마을.

바다를 도로 삼아 운동하는 영도구민들이 보였다. 매일 보는 바다는 어쩌면 익숙해서 소중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처럼 몇십 년 만에 영도를 찾은 사람이라면 낯선 풍경에 감탄하고 소중하다고 느낄 테니까.




노을과 함께 불빛은 찬란하다.

멀리서 보이는 새 아파트.


다시 오기를 바라며,

봄, 여름, 가을, 겨울 다르게 표현하는 바다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곳곳에 앙증맞은 주택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쁜 포즈, 앙증맞은 포즈는 자신이 하고 싶을 때만 한다.


지나가던 커플들의 말에 해시시 웃는다.


"저 꼬마 너무 이쁘고 귀여워"

하는 말을 듣고선 더 이쁜 포즈로 자신을 표현한다.




친정엄마 권유로 아이와 한 컷 남겼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2021년 가을을 기록한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이 표정, 지금 이 나이, 지금 이 모습은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지나간 세월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사진뿐.


영도 포토 명소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다음엔 여유롭게 다녀올 생각이다.


자가격리 해제와 동시에 날이 풀리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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