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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an 20. 2022

백 사부 요리는 참 쉽다. 감자탕으로 집밥을 할 줄이야

엄마 에세이


요리를 과감하게 했던 기억을 거슬러 보면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곁에 있는 사람은 나에게 똥 손이라고 했다. 뭐를 만들어도 감칠맛이 나지 않아 똥 손이라고 놀렸다. 사실, 엄마 곁에서 죽자 살자 일을 했다.


주방은커녕 요리에 '요'자도 모르고 지냈다. 엄마가 알아서 내 앞에 대령했으니까.

아쉬움이 없었다.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장금이 뺨치는 미각을 가지지 않은 나로선 음식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이 지독하게 싫었다. 살 수 있을 만큼 먹었다. 다들 그렇게 먹고살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욕구를 채울 만큼 먹고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나니 주방은 곧 여자의 두 번째 방처럼 느껴졌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맞벌이하고 집에 오면 늘어지게 자고 싶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라는 두 단어 '아내'라는 두 단어 때문에 싫은 일을 해야 했고 주방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회사에서 요리 레시피를 뒤져 프린터 한다. 프린터 한 인쇄물을 집으로 가져와 요리할 때마다 보며 음식 하다 보니 한 시간은 기본이고 두 시간 정도 되어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엄마가 해준 밑반찬이 바닥이 나면 혼자 안절부절못했다. 양가 부모님들이 주는 밑반찬이 그 시절에는 소중했다. 지금은 뭐든 만들 수 있는 용기도 있고 감도 있었지만, 그 시절은 한식의 기본적인 양념을 몰랐다.


매번 새로운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신혼생활 중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고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 요리학원을 다녔다. 곁에 있는 사람의 권유가 가장 컸다. 회사를 관뒀으니 실업급여와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직업훈련에 요리학원이 있었고 요리만 배우는 것이 아닌 조리사 공부까지 해야 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한식과 양식을 배우며 공부도 했다. 6개월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식 조리사 자격증만 취득한 채 임신이 되었다. 


주방 생활 20년이 되고 나니 못하는 음식이 없다. 매장에서 만든 음식은 어느 정도 흉내를 낼 수 있었고 티브이에서 만든 요리는 거의 다 했다. 그중 백종원 클라쓰에서 만든 감자탕은 군침이 돌았다.


가마솥에 한가득 끓이는 감자탕은 그야말로 한 겨울 먹기 좋은 음식이다. 거기에 무청만 있으면 섬유질까지 섭취 할 수 있는 요리 중 하나다. 된장을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감칠맛은 더 깊어진다.






20년 전 시모가 끓여 준 감자탕은 정말 맹물이었다. 이게 감자탕이야? 의문이 들 정도로 맛이 없었다. 멀건 물에 된장 푼 그저 그런 감자탕이었다. 시모가 해준 감자탕 후로 감자탕은 외식으로 하자고 했다.


시모가 하는데 나는 더 잘 만들 거 같아 돼지등뼈를 사서 끓였다. 무청과 시래기를 넣고 끓이니 가게에서 맛 본 맛 그대로 재연이 되었다. 어렵다고 느낀 요리가 성공하니 자신감은 하늘로 치솟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동생은 언니 집에 와서 감자탕을 맛보고 집들이 음식으로 해야겠다면 레시피를 적었다.


똥 손인 내가 금손으로 되면서 요리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요리프로 중 백종원 이름 석자가 나오면 거의 챙겨본다. 그는 요리에 진심이 사람이다.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료로 몇 가지 요리를 내놓는 사람은 고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백종원 요리 프로는 어느 누가 따라 해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만큼 자신 있는 분야라서 쉽게 알려주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는 양념은 정말 소박하다. 된장과 국간장과 소금, 시래기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만 있으면 근사한 감자탕이 탄생한다. 감자를 좋아하지 않아 감자를 빼고 감자탕을 끓이기도 한다.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도 근사한 음식이 탄생하는 한식은 정말 매력적이다.


나 같은 경우 등뼈를 한 번 끓여준다. 등뼈를 자르다 보면 뼛가루가 남아 있을 테니 한 번 끓여주고 나면 등뼈를 깨끗이 씻어준다. 여기에 잡내를 잡아주기 위해 등뼈 한 번 끓일 때 월계수 잎을 넣는다. 잡내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번 끓인 등뼈를 찬물에 씻어 육수와 물을 섞어 냄비에 붓고 등뼈와 된장을 풀고 푹 끓어주면 된다.

시간은 한 시간 가량 끓인다. 센 불에서 중불로 조절하면서 말이다.


말린 무청이라면 물에 불리고 삶아서 준비하면 되고 등뼈와 함께 끓이면 된다. 집에 무청이 없어 얼갈이배추 데쳐놓은 것으로 시래기를 대체했다. 얼갈이배추는 말린 재료가 아니라서 감자탕을 어느 정도 끓인 후 얼갈이배추를 넣고 간을 맞춘다. 마지막엔 양파나 대파를 넣고 한소끔 끓이면 멋진 감자탕이 탄생한다.





국물은 늘 아이가 먹어서 건더기는 엄마 차지가 된다. 국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엄마라서 다행이라고 말하곤 한다. 국물에 밥 말아먹는 아이를 둔 덕분에 매일 국 요리가 늘어나고 있다.


그 대신 밑반찬 실력은 떨어지고 있지만...


이날 등뼈와 얼갈이배추로 한상을 차렸다. 보름에 한 번씩 육수를 끓여두기 때문에 감자탕에도 육수를 붓고 끓인다. 그러면 깊은 맛은 두배 이상이 된다. 야채나 고기를 먹지 않은 아이를 위해질 좋은 국물을 만들기 위해 연구한 결과 채수, 멸치 육수, 고기 육수 등 다양하게 끓여두고 냉동실에 구비해 둔다.


육수가 늘 집에 있다 보니 카레나 라면을 끓일 때도 육수를 이용한다. 


맛의 풍미는 두배 이상이다. 맹물보다 더 고급진 요리가 탄생된다고 해야 하나..


등뼈가 신선한 거라면 더더 맛있게 되는 요리 중 하나다. 백종원 사부만큼은 노련하고 능숙하지 않지만 나름 자부한다. 요리만큼은 자신 있다고...


근데 안 해서 문제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친구와 바깥에서 먹는 날이 더 많아질 테고 혼자 남겨진 나는 대충 먹지 싶다. 만약 이런 날이 오면 요리 솜씨는 줄어들 것이고 예전에 뭐를 해 먹고살았나 기억을 더듬게 될 것이다.


기억을 더듬지 않고 이렇게 기록해두면 언제 어디서나 써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록해 둔다.


요리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정말 맛없는 요리가 탄생된다. 뭐든 과감하게 하면 뭐라도 탄생된다. 실패해야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감자탕은 실패할 확률이 낮다. 된장만 있으면 감자탕이 나오니까.


똥 손이라고 놀렸던 지인 덕분에 금손으로 거듭날 수 있었고 요리에 '요'자를 거부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 백종원 사부 덕분에 요리가 한결 수월해진 것도 있다. 요리 프로를 보다 보면 잊고 지냈던 음식을 찾을 수 있어 참 좋다. 


백종원 레시피는 내가 먹고 싶은 맛을 내는 것이 바로 백종원 레시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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