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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an 18. 2022

내가 카페를 다니는 이유는

엄마 에세이

작년 가을 무렵 백신을 맞고는 부산 이곳저곳을 다니며 힐링을 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 아마도 공허함이 몰려왔던 거 같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에 갇혀 지냈으니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색다른 곳을 찾기 위함이기도 하고...


거기에 아이도 한몫했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다고 하니 엄마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방에 사는 분들도 부산 여행을 하는데 부산에 사는 부산 토박이가 부산을 모른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수치스러워할 필요가 없었지만, 15년 동안 부산을 싫어했다. 부산은 상처의 얼룩으로 곳곳에 그 상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부산과 멀어지더니 어느 날, 부산에서 둥지를 틀고 지내고 있었다.


아이는 부산이 처음이다. 태어난 곳이 다른 곳이어서 부산은 외할머니 집이 전부였다. 


내 아이를 위해서 결심을 했다. 내가 사는 가까운 곳부터 탐색해보자고.

그동안 상대 뒤에 숨어 지내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바보가 되었다. 그 바보는 일어서야 했다.


현재를 털고 일어나 아이를 위해 부산을 구경하며 새로운 시야를 넓혀야만 했다.

여기저기 검색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작년 가을에는 작지만 추억을 만들었다.



물레방아 부산 영도 청학동


부산 영도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근데 영도와 헤어지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이유는 상처가 너무 깊어서다. 영도만 오면 숨이 쉬어지지 않고 힘들다.


근데 왜 이곳을 찾냐고 물어보면 친정엄마가 영도에서 가게를 한다. 출근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일이다. 그리고 영도부터 여행하기로 했다. 영도 청학동은 큰 이모가 사신다.


외갓집 식구는 영도 토박이다. 그래서 그럴까? 영도를 더 멀리 하게 되었다. 나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줬던 외가 식구와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으니까.


아이에게 엄마는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아이는 아직 공간 감각이 없다. 그저 엄마 말만 듣고 있었다.





검색을 하면 영도 청학동 신기산업 카페 리뷰가 가장 많다. 영도에 태어난 부산 토박이가 영도 카페를 모른다니.. 그만큼 영도에 애정이 없었다. 


강산이 3번 변하고 찾은 영도는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영도 앞바다를 벗 삼아 바다 뷰를 볼 수 있도록 카페며 호텔이 들어섰다.


어린 시절 영도는 정말 섬이었다. 섬에 갇힌 삶은 꼭 섬사람된 기분이 들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시간이 너무 걸려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가까운 남포동 외는 잘 다니지 않았던 기억, 태종대, 자갈치, 영도 목장원 등 다니는 곳은 딱 정해져 있었다.


근데 아이와 함께 다닌 지금은 갈 곳도 많고 놀 곳도 많았다.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일단, 가볍게 영도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를 찾았다. 길도 새로 나 있었고 새로운 버스도 있어서 그저 신기했고 옛 추억을 되새김질했다.


친정 엄마 역시 청학동을 거의 다니지 않아 멋지게 변한 청학동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예전 영도는 아파트가 없는 곳이다. 주택들만 빼곡히 들어찬 그런 곳이었는데 아파트가 즐비했고 도로와 다리가 놓여 있었다. 신기산업 카페에서 바라보는 뷰는 고층 아파트를 올리고 있었다.


영도는 그저 그런 동네, 발전 가능성이 없던 동네라서 자만한 거 같다. 멋지게 변할 거라는 걸 예상을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영도에서 나왔다.


고불고불한 골목길 따라가다 보면 동삼동과 고신대학교도 나왔다. 부산에 갑자기 내린 눈으로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을 땐 걸어서 학교를 등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남자고등학교가 있어 여중생이었던 나는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런 나에게도 좋아하는 오빠가 생겼고 오빠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어린 시절 여중생이 보였다. 영도는 그런 동네다. 


나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


불행과 행복이 공존한 그런 동네,

서러움과 기쁨이 공존한 동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동네..


그러나 마음이 너무 아파 영도 쪽으로는 쳐다보지 않았다. 이제는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며 내 아이에게는 좋은 추억만 남기려고 한다.




앙버터 소보루가 하나 남아 맛보았다. 따뜻한 라테와 시원 달달한 아이 음료수까지..




영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저기가 어디인지 훈수를 두며 바라만 보았다.

내가 운전하는 그날이 오면 높은 빌딩 저곳이 정말 해운대인지 확인해 보겠다며 엄마에게 말했다.


영도 바다는 부두가 있고 조선소 배와 유조선이 많은 바다다. 그래서 아름다운 바다 보단 삶을 살아가는 바다라고 한다. 선장부터 선인이 많은 영도, 러시아 배가 들어오면 러시아인과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그런 동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많아 일본어를 가장 많은 쓰는 동네, 일본인이 뿌리고 간 씨앗으로 아직 그 배추를 찾는 그런 동네, 곳곳에 일본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동네가 바로 영도다.


이제는 우리의 삶 방식대로 살아가는 모습에 덩달아 포근하다.


영도는 부산에서 가장 저렴한 집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동네보다 값비싼 아파트가 즐비한다. 

영도를 조금만 관심을 두었다면 변하는 영도를 지켜봤을 텐데...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고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기 두려워 멀리 했던 내 고향 영도는 많은 사람들이 투자하고 있었다.


더 많은 카페와 더 멋진 뷰를 자랑할 영도..


눈여겨보며 영도 탐방을 해보려고 한다. 옛 정취가 남아 있어 오래전 기억을 살릴 수 있었다.

내가 카페를 찾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 옛 추억을 생각하고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어서 자주 찾는다. 


새로운 맛과 감각을 익히기에는 카페만큼 좋은 공간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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