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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Feb 03.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에세이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며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최근에는 바다 위에 반짝이는 빛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녁녘에 비치는 바다 위 반짝이는 윤슬은 푸른 쟁반 위에 은구슬이 빛을 내고 있었다. 동해 바다에서도 서해 바다에서도 남해 바다에서도 내 마음을 앗아갔다.


내면에 상처가 그득할 때는 바다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흘렀고 저녁 무렵은 서글퍼졌다. 노을이 지면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는 서러움이 나를 힘들게 했다. 힘들지 말자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이를 앙다물고 살아간다고 어설픈 위로를 했다. 그러나 위로는 진정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위로가 아닌 힘든데도 불구하고 안 힘들다고 외쳤고 기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기쁘다고 그야말로 내가 느끼는 감정 반대로 표현하며 살았다.


진정한 내 안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너는 장녀라서' '너는 네가 보호자라서' '너는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라서'라는 책임감과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낙오자이자 패배자이며 실패자라고' 온갖 부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나를 경멸하며 바라보다 보니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나를 경멸하고 하찮은 존재로 인지하고 있었다.


이걸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마흔이라는 단어이자 숫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숫자였다. 용기를 주는 숫자였고 단어였다. 마흔에 늦둥이를 출산을 했지만 가장 비참한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마흔 문턱에서 비참했고 처절하게 무너졌다. 10년마다 찾아오는 위기는 늘 기회가 되었다. 무너지려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신의 뜻이었다. 하지만 신의 뜻이라고 한들 내가 삶의 의지가 없었다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 말이 있다. 신은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준다 말, 유년시절 힘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었다. 곧 나의 인생철학이 되고 말았다. 내가 나를 버리며 살아온 길은 길고 긴 터널 속에 갇혀 살면서 신은 말했다. '너는 이 고통을 이길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너 안에 있다. 그게 뭔지 알아야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10대 비극적인 부모의 버림 20대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 맏이, 부모 곁이 싫어 결혼한 생활은 큰 병으로 맞이했고 30대 또다시 찾아온 처절한 병마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통은 힘겨움보다 더 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10년 텀으로 찾아온 위기는 내 생명을 담보로 찾아왔다. 생명 담보로 찾아온 위기를 기회로 삼는 건 쉽지 않았다. 몸이 부서졌고 가정이 파탄 났고 가족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비난하지 않았고 기회를 불평하지 않는다. 그 기회는 찬란했으니까.


30대까지 처절하게 버티고 이긴 고통의 위기는 마흔이 되어서도 처절한 기회로 이어졌다. 처절한 삶 속에서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마흔을 헛되게 보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늦둥이를 품에 안고 전전긍긍하며 내 인생을 살아보겠노라고 선포했다.


선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이제야 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선포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용기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문득 책이 눈에 들어왔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상대를 바꾸지 말고 나부터 나를 알아가고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삶으로 바꾸자고 결심했을 때 책이 보였고 책이 나를 살렸다.


1년 동안 110권의 책을 읽었고 2년이 되는 무렵 250권 책을 읽고 서평 하면 지내고 있었다. 나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 생계를 책임진 맏이라서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취업을 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 선생님이 했던 말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떠올랐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더라도 책은 꼭 읽어야 합니다. 책에는 여러분들이 갈망하는 길을 안내할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용기를 제시해줍니다. 늘 책과 친구가 되어 있어야 하고 책과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 말을 명심하고 언제 어디서든 책을 끼고 사세요"


선생님의 말은 의식 속에서가 아닌 무의식 속에 저장을 했던 것을 책을 읽고서야 떠올랐다. '그래 맞아. 선생님이 책을 꼭 읽으라고 했지. 선생님 조언을 일찍 감치 따랐다면 내 모습은 현재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며 2년 동안 책과 가까이했다. 그냥 무작정 인풋만 했었다. 책 종류도 다양했다. 소설, 에세이, 자기 계발서, 세법 등 정말 가리지 않고 읽으면서 인풋만 했다.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누구의 시선으로 인생을 사는가? 너는 누구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가? 혹은 누구의 시선으로 자식이나 아이들을 보는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가?' 질문이었다.


나는 누구의 시선으로 여태 인생을 살았는가에 대한 답은 상대의 시선으로 살았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정말 상대 시선으로 살았다. 그래서 늘 후회했고 원망했다. 억울했고 분노를 했다.


나는 누구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는가에 대한 답은 곁에 있는 사람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상대가 뚱뚱하다고 말하면 자신감 있게 나는 뚱뚱해도 내가 좋아 사랑스러워 말하지 못하고 정말 뚱뚱하고 볼품없어 생각하고 내가 나를 미워했다. 상대가 너는 맨날 아픈 거야라고 비난을 할 때는 내가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했다. 상대의 지적질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난 여전히 아름답고 이쁜데 상대의 비난을 나 자신이라고 믿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야 삶이 편안했으니까.


내 아이를 바라보는 눈은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고 있었고 다른 집의 아이와 비교하려고 했다. 내 안의 상처를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상처를 알아가고 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울컥하는 그 감정을 아이 것이 아닌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아이를 아이 자체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는 중이다.


책에서 질문을 던지면 한 번쯤 생각을 한다. 나에 대해서 말이다. 


결국 나는 책에서 말하는 반대로 살고 있었다. 존재 자체를 사랑하지 못한 나, 병들어 버린 나를 다독이지 못했다. 아픔을 참았고 또 참았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살았다. 참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부적처럼 되뇌기만 했다. 


아픈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해야 했고 뚱뚱해져 버린 나를 인정해야 했고 나이 들어 늘어진 피부를 인정해야만 했다. 아픈 내 마음을 안아주고 알아주면 되는 그 쉬운 일을 포기하고 살았다. 다른 이가 나를 사랑해주면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타인의 사랑만 있으면 세상은 아름답게 다가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이 잘 못 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경해야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고 존경한다는 이치를 알게 되었다. 마흔 끝자락에 다시 맞이해야 하는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단서는 바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10년 트라우마가 다가오고 있다. 병으로 나를 앗아가는 위기를 나를 내가 사랑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만날 기회를 만들 용기가 생겼다.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먼저 알아야 했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행동을 실천하면서 아픈 나를 알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바라던 사랑을 내가 나를 사랑함으로써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인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토록 거부했던 밤하늘과 노을은 내가 가장 원하는 감정이었다.


좋음을 싫다고 애써 거부했던 감정을 하나씩 찾고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만 내 안에 간직하고 있는 빛깔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숫자 계산에 탁월한 뇌가 아니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다 풀리면 온 몸에 전율이 흐르듯 뒤죽박죽 얽혀버린 내 감정을 문자로 풀어내는 과정이 나에게는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감정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전율이 흘렀고 단어와 단어가 연결해서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지면 뒤섞인 감정과 아픈 상처는 어느 순간 치유가 되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힘든 이 삶을 이겨내고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건 나에게는 참 다양하게 찾아왔다.


얼마만큼 글을 쓰고 또 써 내려가야 내가 원하는 문장이 언제쯤 탄생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허접한 단어와 단어를 이어 문장을 만들고 있다. 겉도는 감정을 먼저 쏟아내며 글을 쓴다. 갈 길은 멀고 시간은 부족하고 어린 나이가 아닐지라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 메마른 땅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듯 내 마음에는 촉촉한 단비가 내려주고 있다.  메말려 버려 비틀어지는 마음 땅에 봄비처럼 내리는 비는 갈증을 갈무리한다. 지금 내 나이는 내가 나를 알아가기 가장 좋은 나이이라고 위로하며 쉼 없이 달려본다.


내가 사랑하는 건 나이며 내 안의  분노와 불행의 감정을 사랑한다. 설사 잘못된 감정일지라도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를 사랑하니 내 아이가 더 사랑스럽고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위로해주니 아이의 실수 역시 너그럽게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다.


내가 나를 사랑하니 꽃이 너무 아름답다는 내 감정에 솔직해졌다. 내가 바라보는 꽃의 시선은 부자들의 취미이자 낭비하는 일이라고 치부했고 나 같은 사람은 꽃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신세한탄을 했다. 꽃 한 송이 살 수 있는 마음 여유가 없던 나를 인지 하지 못했다. 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몰랐다.


인생이 꼬이고 꼬인 이유를 슬픈 발라드라고 단정 짓고 노래와 인연을 끊어버렸다. 슬픈 노래가 나를 더 고립된 인생으로 가게 했다고 미워했다. 슬픈 노래가 나를 고립된 삶을 불러온 것이 아닌 내 안에 슬픔이 너무 많아 슬픈 노래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무서워서 노래를 미워하고 싫어했다.


저녁이 찾아오는 노을을 바라보는 건 나를 괴롭히는 밤이라고 두려워했다. 어린 시절 밤만 되면 나를 괴롭힌 부친을 떠올리면 온몸이 덜덜 떨렸다. 밤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찬란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다. 몽환적인 석양이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선물이라는 걸 몰랐다. 


강이나 바다 위의 반짝이는 은구슬 같은 윤슬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했고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이 떠올라 바다나 강을 외면했다. 아픈 과거가 떠오르면 상처는 깊어졌다. 상처 난 곳에 상처를 내고 후벼 판다고 생각했다. 아픈 상처를 외면하거나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덮어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픈 상처를 치유할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오늘도 나와 나를 마주 보며 글로 대면한다. 


'사빈아 아픈 곳이 어디야? 내가 호호 불어줄게. 아프면 속으로 울지 말고 조용히 내 귀에 속삭여줘. 상처를 마음속에 묻어두지 말고 표현하자. 표현해도 괜찮아. 너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아. 다 잘되고 있어. 신나게 슬퍼하고 울자. 그리고 훌훌 털어버리자. 그럴 수 있지. 울지 못하는 너는 이제는 울어도 된단다. 더는 우는 너에게 비난하지 않아. 비난하는 사람은 여기 없어. 온전히 너 혼자야. 죽는 그날까지 영원히 두 손 꼭 잡고 아픈 상처 쓰다듬어 주자.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러자. 사랑한다. 사랑해 사빈아. 뚱뚱해도 넌 여전히 이쁘고 못 생긴 얼굴도 내 눈에는 이뻐. 슬픈 뒤에 숨겨 둔 웃음을 꺼내서 마음껏 웃자.'


글이 가장 잘 풀릴 때는 새벽과 석양이 비추는 오후가 나에게는 가장 감성이 풍부해진다. 글로 하루를 시작해서 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여자였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알게 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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