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Feb 18. 2022

네일숍에서 나눈 대화에 나의 교육 철학이 있었다

엄마 에세이

어제는 미루고 미루던 네일을 했다. 손톱이 깨지고 갈라져 관리를 받아야 할 시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친정엄마 역시 손톱이 갈라지고 깨진다는 말을 우연찮게 들었고 같이 예약을 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예약을 하고 한 사람만 관리를 받는 시스템이라서 나름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잦는거 같다. 속에 담아두었던 속마음을 어렴풋이 내보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계기라서 일대일 예약제가 오히려 좋은듯 하다. 예전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 떨던 그런 풍경은 옛말이 된 거 같다. 카페를 가더라도 혼자 있거든 두세 명이 전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백신 패스가 도입되면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카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이 되어서 북적이지 않는다. 나는 면역력이 약한 사람 중 한 명이라서 필수적으로 백신을 맞았다. 1차와 2차를 맞아서 어디를 가던 백신 패스가 되었다. 그러니 어려움 없이 어디든 시술을 받을 수 있고 관리를 받을 수 있으며 식당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아직 백신을 맞지 않았기에 안심할 수 없어 배달이나 포장을 해서 집에서 먹는다.


이 시기가 길어지니 이제는 덤덤하게 받아들여지고 사람을 만나는 걸 피곤해하는 나로서는 그저 감사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동네 언니들과 친구들이 모이면 기가 빨리고 집에 오면 힘이 없던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보단 마음이 맞는 사람 한 두명만 모여서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으로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걸 선호한다. 나는 외향과 내향이 적절한 사람이지만 내향이 더 깊은 사람이다. 혼자 사부작 하는 걸 좋아하고 혼자 목표와 계획을 세워 나와 내가 경쟁자가 되어 치열하게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오히려 에너지가 덜 소비되고 덜 피곤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내 이야기보단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그리고 이내 기가 빨리고 지쳐간다. 어제 만난 네일숍 사장님 역시 많은 사람이 모이면 기가 빨리고 지치기 일쑤라며 넋두리를 했다.


나와 너무 닮은 젊은 사장을 보며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엄마들은 아이 학교 학부모이자 유치원 동기 엄마라는 거다. 그들을 만나면 자식 자랑 신랑 자랑이 부족한지 시부모 자랑까지 했다는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과거의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엄마들 이야기를 듣다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저 집 신랑은 일을 안 하나. 뻑 하면 회사는 안 가고 와이프 따라다니면서 시중을 드는 거지' 생각을 했다는 거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내 경험을 보태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그건 그 사람들의 생활 중 일부분 아닐까요. 생활의 일부분을 극대화해서 부풀리다 보면 크게 보이잖아요. 마침 풍선처럼 말이죠. 기 빨린다고 하셨는데 그런 모임 안 나가면 되죠. 왜 나가요?" 오히려 내가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안 나가면 내가 바보 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엄마들 모임에 빠지면 내가 도태된다고 말해야 할까요. 좀 그래요. 엄마들과 정부 교류가 없으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녀의 마음을 알 거 같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힘들고 지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그 모임에 나갔다 집으로 오면 도리어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냈으니까. 아이들에게 괜한 짜증과 화를 내는 나를 보고 일찍 감치 그 모임에서 빠져나왔으며 모임에 참석하지 않게 되는 명분을 만들었다. 엄마인 내가 가지고 있던 소신과 믿음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키웠던 기억이 났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사장님 생각이 맞다면 대한민국 엄마들 다 모여서 정보를 교류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거기 모인 사람들 정보 교류로 만나는 거 같아요. 아니에요. 정보 교류 즉, 아이들 빌미로 자랑질하려고 만나는 거잖아요. 누구는 남편이 없나. 자신이 없나. 시부모가 없나요. 다 있잖아요. 다만, 말을 아끼는 거죠. 아이들을 위해 만난 장이 서로 자랑질을 하려고 만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리고요. 부자들은 절대로 자신이 부자다 나는 돈이 많다 등 자랑하지 않아요. 오히려 숨기고 일반인보다 더 소박하게 사는 부자도 많아요. 근데 빈껍데기가 요란한 법이잖아요. 겉만 요란하고 시끄러운 거예요. 내세울 것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작은 집단을 만들어 자랑하는 거예요. 거기에 에너지 쏟을 봐에는 저는 저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편이 나아요. 그렇게 했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할 예정이고요. 뭐하러 상대 기분 맞춰 가며 장단을 맞추나요. 시간 아깝게"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며 격하게 공감했다. 그녀는 그들 앞에서 하루 매출이 얼마가 된다는 둥, 남편의 자랑 아이 자랑을 일제히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당연하다. 말이 많으면 그 말이 와전되어 안 했던 말까지 나오는 법이니까. 말 조심하라고 자기계발서를 보면 십팔번으로 나오는 거 같았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유지가 필요하다. 아이를 위한 모임이 아니라 서로 자랑을 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니까. 어떤 엄마를 보면 신상 명품 백을 등원할 때 메고 나오는 학부모도 본 적이 있다. 일명 치맛바람이라고 할까. 말 많고 탈 많은 동네에 살다보면 별의 별 일을 듣고 보게 된다. 다 엄마들의 욕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에게 명확한 답은 아닐지라도  공감되는 말에 자신의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 달만에 찾은 네일숍에서 그녀는 시술을 시작하면서 운을 떼었다. "그때 말씀하신 말을 친구와 대화를 했는데요.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분 말이 맞는 거 같다고요. 저도 그 말을 듣고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아침마다 마주치는 엄마들을 모르는 척하지는 못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애를 쓰는데 참 힘들긴 하더라고요. 요즘은 심리서적을 보는데 활자가 안 보이는 거예요. 내 마음을 달래는 그런 책이 필요한데요.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말하는 그녀는 절실해 보였다. 자신의 생각과 마인드가 상대로 인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책을 읽었는데 이것 조금 저것 조금 읽다 보면 명확하게 드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 또한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그저 이건 종이요, 이건 글이다 이 정도로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처음부터 저자의 깊은 생각을 알지 못한다. 여러 번 책을 읽고 또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것이 책이었다. 그녀는 이해가 잘 되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자기 계발을 위한 책이든 심리서적이든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추천하기 꺼렸다. 그건 상대 취향과 내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나를 보던 사장님은 괜찮다고 했다. 읽기 쉽고 이해가 잘 되는 책 두 권을 추천했고 그녀는 곧바로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담는 모습까지 보았다. 주위 엄마들로 인해 마음이 힘들고 정신이 힘든 그녀에게 힘이 될 수 있게 책 스토리를 시술받는 내내 풀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디오북을 듣는 거 같아요"라고 했다. 너무나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었고 그 책으로 인해 깊이 박힌 부정적인 근원을 조금씩 밖으로 꺼낼 수 있었던 책이기에 흥분을 하며 말을 했었던 거 같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러 소리에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된다. 그건 내 아이에게 맞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들 좋다고 하니깐 안 하면 왠지 왕따가 되는 기분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셈이다. 지금도 난 아이가 원하는 것만 하게 내비둔다. 나 역시 내가 원하는 것만 해서 그런지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걸 확실하게 말한다. 이제는 일곱 살이지만 한글은커녕 숫자도 재미없다고 한다. 책 읽는 것도 재미없다며 엄마 많이 읽으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걱정되지만 지금 한글을 완벽하게 마스터한다고 해도 학교 들어가면 다시 배우게 되는 것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굳이 한글 떼었다고 자랑할 시간에 아이의 인성을 더 잘 다독이면서 지내는 것이 더 현명하다. 딸은 글보다 그림 그리기가 좋고 책 보다 발레가 더 좋다고 하는 아이이고 어려운 피아노 역시 재미있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노는 이제 어렵다며 싫증을 내려고 한다. 그러나 안 간다고 말하지 않는 아이가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한글이나 숫자는 천천히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이 필요로 할 때 자신이 절실할 때 해도 늦지 않다. 조카를 보면 그랬으니까.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한글을 어느 정도 배우고 입학했고 주위 사람들 역시 아이가 원할 때 아이 성장 속도에 맞추면 뒤 탈이 나지 않는 것을 직접 보았다. 이건 내 경험이 포괄되어 있다. 아이가 원할 때는 아이 성장 속도가 분명 있다. 그 속도에 맞추어 부모인 엄마가 열심히 맞추어 나가면 된다.


나 역시 내가 원하는 것이 '이거다'하고 덤벼 든 것이 3~4년 전이니 거기에 비해 내 아이는 아주 빠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아이를 보며 조카나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언니야 여니 그림 워니처럼 그리네. 너무 잘 그리는 거 아니야. 여섯 살이 이렇게 그리다니. 여니 미술 쪽을 빠지는 거 아니야. 워니처럼" "그거야 모르지. 지켜봐야 알 거 같아. 지금은 발레도 너무 좋다고 하거든. 피아노는 어렵다고 하면서 곧잘 따라 하고. 내가 낳았지만 뭘 좋아하는지 두고 봐야지. 자신의 재능이 어디로 끌고 갈지."


요즘 아이 재능을 보는 낙으로 살아간다. 나는 단 한번 해보지 못한 일상이 내 아이에게는 일어나고 있다. 어떨 때는 질투가 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명확하고 확실하게 보여주는 여니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배우고 또 배운다. 어느 날은 친구들이 자신의 이름을 쓸 줄 안다고 자신 이름 써달라고 했다. 스케치북에 커다랗게 썼더니 두세 번 반복해서 써고는 어느 순간 안 보고 자신의 이름을 쓰는 여니였다. 사교육을 싫어하는 나지만 아이가 원한다면 해줄 의향은 있다. 내가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이니까. 발레하는 모습을 보면 한쌍의 백조 같다가 미술에 열중해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보면 화가가 되려나 이런 생각을 한다. 네일숍에서 사장님과 주고받던 대화가 나와 아이의 관계와 나의 교육에 대한 철학이 보였다. 제 아무리 좋은 교육이겠지만 나에게 맞지 않으면 그건 좋은 교육이 아니다. 아이에게 맞는 교육은 따로 있고 나에게 맞는 교육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교육으로 아이 인생을 망치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가 원하는 것만 철저하게 배우도록 나는 아이 뒤에서 응원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교육철학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엄마들 모임을 멀리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녀들이 싫은 건 아니지만 누구를 비교하고 누구를 찬양하는 그런 자리가 불편할 뿐이었다. 그 모임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되면서 옆집 언니가 그랬다. "너는 왜 모임이 싫어? 너를 보면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보기에는 너 음탕하다" 그 언니 말에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그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힘들어 빠졌을 뿐이고 사람을 만나 기운을 뺄 시간에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을 하면서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간식 만드는 것이 나에게 더 유익했다. 


아마 그 언니는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판단했다. 그리고 집에만 있으면 음탕하게 생각하는 그 언니의 생각일 뿐이라고 넘겼다. 옆집 언니는 외향적인 성격이 다분했다. 사람을 만나야 스트레스가 풀어지고 수다를 떨어야 행복감이 충족되는 언니였다. 그런 언니가 보기에는 내가 음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아이가 학교를 가게 되면 학부모 모임을 참석하지 않을 거다. 그들이 나를 함부로 판단한다 해도 그건 내가 아니니까. 그들이 만든 나니까. 거기에 휘말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여태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골수검사는 살아가면서 하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