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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Feb 17. 2022

골수검사는 살아가면서 하지 말자

엄마 에세이

처음 투병기가 바로 2003년, 우연히 투병 생활을 했다. 나에게는 두 번의 투병기가 있다. 참 아이러니하게 2003년 긴 투병을 하면서 어른들은 그랬다. 미리 아픈 거라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파야 할 모든 병이 지금 다 아픈 거라고 말했다. 그 당시 이유를 모르는 체, 사경을 헤맸다. 병원의 의료진, 보호자 및 환자는 영문을 모르고 이 검사 저 검사를 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염증 수치로 골수 검사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골수 검사가 어떤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주 가볍게 피검사로 해결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병을 고치려 왔다 희귀한 병을 알게 되었다. 검사 마찬가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검사가 연일 이루어졌다. 


한 가지 병을 고치려다 수만 가지 병을 알게 되었고 수만 가지 병 중 두서너 병은 기본을 안고 있어야 했다. 내 몸에 손대는 걸 극히 혐오하는 나는 주삿바늘까지 거부했다. 아파서 죽을 지경에 이르려도 주사만은 피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곤 했지만 병원에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의사가 결정을 내리면 곧 그게 병원에선 법이 된다. 소가 도축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골수검사에 임해야 했다. 무슨 이유로 골수검사를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수님 도대체 왜 골수검사를 해야 하는 겁니까? 골수검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는데 두렵기만 하고 무섭기만 합니다. 골수 검사를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은 없나요?" "빙빙 둘러갈 필요가 있습니까. 일단, 골수 검사부터 하고 검사 결과를 보면서 차후 검사나 치료과정을 정해야 할 듯해요. 골수 검사하는 이유가 만에 하나 골수에서 염증이 유발되는 바이러스가 있는지 확인차 하는 거예요.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사를 하는 거니깐 환자분은 의료진만 믿고 시술에 들어가면 됩니다.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요. 마취를 하고 골수검사를 할 거니깐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의사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환자인 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골수 검사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골수 검사를 할 때쯤 이미 수술을 하고 경과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이유 없이 염증 수치가 치솟았고 병동에서는 중환자 취급을 했다.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처럼 취급하는 그들을 보며 큰 병이 왔구나 암시하는 거 같았다. 겁이 덜컥 났다. 이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이대로 이 세상 사람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닌가?라는 좌절이 될만한 생각을 키우며 골수 검사를 임해야 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이루어진 검사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검사가 많아질 거라는 암시이기도 했다. 수술 후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사경을 헤매며 죽고 싶다고 교수님에게 말할 정도로 심각했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에게 골수검사를 제안했다. 결국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 골수 검사가 진행이 되었고 처치실에서 이루어졌다. 눈을 감으려고 해도 압도되는 분위기 속에 눈이 감기지 않았다. 의사들의 대화, 간호사의 대화만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도 의지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 침대 손잡이만 움켜 잡은 채 그들을 기다렸다. 눈을 돌렸다. 그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멀리서 아주 큰 주삿바늘이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맸지만 쉽지 않았다. 교수부터 병동 의사 학생들이 죄다 모인 상황 속에서 나는 발버둥 쳤다. 살려는 의지 단 하나, 아픈 그 주삿바늘을 맞지 않겠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마취를 했지만 감각은 그대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뼈가 으스러지는 기분, 투병하는 고통보다 두세배 고통의 강도가 왔다. 살면서 건강하면 최고의 복이지만 한 번 아픈 몸은 쉽사리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두려움 속에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의사들은 '괜찮다. 다 되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했다. 그건 환자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의술 행위가 잘 진행되기 위한 의사의 체면 술이었다.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으니까. 발로 내 주위 있는 의료진을 쳐보려고 했지만 간호사며 의사며 죄다 나를 붙들고 있었다. 결국 발버둥 치다 이내 포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 가지 목표만 있었다. 지금 골수를 채취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는 그 사명감. 빌어먹을 사명감으로 환자는 초주검이 되었고 눈과 얼굴, 목에 있는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되었다. 딸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친정엄마는 마음이 미어졌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몸으로 병원을 빠져나갈 수 없는 노릇. 회복을 하고 퇴원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골수검사를 2003년 두 번을 시행했다. 골수 검사를 했지만 백혈병이나 다른 염증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의료진은 희망을 놓치지 않고 힘든 골수 검사를 감행했다. 처음은 처음이니깐 아무것도 모르고 했다고 쳐도 두 번째는 죽기보단 싫은 검사가 골수검사였다. 할 수 없다고 고함을 쳤지만 그건 환자의 발악이었다. 의사에게는 씨알이 먹히지 않은 발악이었다. 무슨 병이든 걸리면 힘든 검사가 우선이다.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가 들어가는데 그 치료과정만큼 검사과정이 힘들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건강할 때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보험도 그렇다. 건강해야 보험을 저렴하게 들지 아프면 보험료만 높아지고 혜택은 볼 수 없다. 그러니 건강할 때 자만하지 말고 건강할 때 건강을 더 잘 챙기자" 건강을 잃은 사람이라면 이 말이 절실하게 와닿을 것이다. 한 번 잃은 건강은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병에 또 병이 낫는 식이다. 그래서 합병증이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이유 없이 치솟던 염증은 또 다른 병으로 찾아왔다. 골수검사는 그야말로 초반 검사였다. 우리가 모르는 그런 병이 지금 현재 누구는 앓고 있고 생사를 오고 간다. 건강할 때 건강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고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나의 또 다른 병은 신경외과에서 놀라고 말았다. 경추 수술하려 왔다가 희한한 병이 내 몸속에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하기야 암세포가 우리 몸속에서 기생하고 있다. 제대로 건강관리를 못하면 암세포는 면역력이 약한 부위에 찾아오는 거니까. 살아오면서 나약하다는 말을 들었고 나조차 나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명해서 그런지 또다시 투병이 이어졌다. 지금은 마음 편히 20년이 지난 과거를 회상하지만 그때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침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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