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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Feb 15. 2022

늙음을 준비하다

엄마 에세이

20대 절대로 30대가 오지 않을 거 같았다. 20대가 가장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30대에 들어서는 순간 감격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이 아팠다. 잔병치레가 심했고 예민했다. 약간의 기온차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팠고 설상가상으로 장염은 달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단골 병원이 생겼고 링거를 맞는 건 예사였다. 자주 아프니 이러다 30대는 오지 않을 거 같은 생각으로 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걱정과 다르게 30대는 가뿐하게 찾아왔다. 친정엄마는 그랬다. 30대는 세월이 느리게 흐르는 거 같지만 40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려간다. 잡을 수 없는 그 시간을 충분히 느끼고 즐겨라고 했다. 40대가 오지 않을 거 같았던 30대는 천천히 흘렸다. 마흔은 눈 한 번 감았다가 떴을 뿐인 마흔 후반에 서있었다.  


친정엄마 말이 정확했다. "정말 눈 감았다 떴더니 세상에 내가 쉰을 바라보고 있어. 엄마도 그랬어?"

"그래, 마흔은 순식간에 지나가더라. 근데 쉰이 되면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려. 그러다 예순이 되면 순식간에 사라져. 벌써 엄마도 칠순을 바라보고 있잖아" 세월이 흐르는 걸 숫자로 따지다 보면 1분 1초가 아깝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하게 보내보지만 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아쉽고 후회가 된다. 성과는 더디게 나고 하고자 하는 욕구는 태산처럼 높기만 하다. 거울 보는 일이 거의 없던 나는 어느 날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목주름, 탱탱함이 사라진 얼굴, 덕지덕지 붙어 있던 부종과 나잇살이 내가 중년임을 증명했다. 오지 않을 거 같은 중년이 찾아온 것이다. 나에게 중년이란 중압감으로 자리 잡았다.


중년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예전에 '좋은 생각' 책을 보던 시절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었다. "중년이라는 삶은 자신의 얼굴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년의 나이다. 중년은 자신의 삶과 가족의 부양 의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자들이 중년이다"라는 글을 읽고서 중년은 자신의 나이에 책임을 지는 나이라는 걸 글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글귀를 볼 때가 20대였다. 중년이 내 삶에 찾아오기 전 내 삶을 제대로 그려보자고 다짐했었다. 중년을 인지 못하고 살다 문득 거울이 보고 싶었다. 점점 늙어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 축 늘어진 피부와 나잇살이라고 변명하는 중년 살이 내 몸에 붙어 있는 걸 보고 한숨이 저절로 났다. 이럴 때는 사진을 꺼냈다. 성숙하지 못하지만 탱탱하고 발랄한 20대 나를 찾는다. 젊음을 그대로 유지한 사진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제법 멋지게 늙어가고 있다는 걸 조금은 자각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진이었다. 늙는다는 건 슬픈 일이 아닌데도 아쉽고 후회가 된다. 


진작에 이렇게 살 걸 하는 그런 아쉬움과 용기를 더 내 볼 걸 하는 후회를 요즘 많이 한다. 후회한다고 해도 다시는 그 시간이 돌아오지 않지만 30대를 더 즐기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길 걸 하는 후회가 있다. 아마 서른이 가장 아픈 날이기도 했기에 30대가 가장 그립고 아프다. 이제는 늙음에 대해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 곧 흰머리가 늘어날 것이고 더 많은 주름이 깊어질 것이며 여자의 기능이 사라질 테니 지금 이 순간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난 10대는 이런 생각을 했다. 늙었다고 좌절하지 말고 늙음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결코 늙음은 불쌍한 인생이 아닌 걸 증명하면 된다고. 우아하게 늙어가자고 다짐했다 지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에 비록 늦은 나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흰머리카락이 늘어난 것이 아니니까. 나는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간다. 우아하게 늙어가자. 그리고 후회하지 않고 만족한 얼굴 표정,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너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중년에서 노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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