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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Feb 14. 2022

방패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엄마 에세이

오래전부터 상상한 미래가 있다. 오래전부터 라면 10대부터다. 부유한 가정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나를 태어나게 했던 부모님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유년시절 간절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 반대로 집 분위기는 늘 싸늘했다. 아빠 사랑이 뭔지 모르고 성장했다. 부친은 자매를 성가신 존재로 받아 들었고 그걸 너무 잘 안 모친은 자매를 전전긍긍하며 보살폈다.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예민한 맏이를 모친의 방패로 삼았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친의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아픈 마음을 맏이에게 떠 넘기고 살았던 것을 이제야 오롯이 깨닫게 되었다. 난 모친의 방패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자랐다.


나 역시 결혼하면 모친처럼 방패 사랑을 하리라 다짐했으니까. 그렇게 다짐한 방패 사랑은 모친의 깨진 사랑 그대로 대물림되었고 방패 사랑은 결국 잘 못 되었음을 헤어진 후 8년 만에 알게 되었다. 방패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내 안에 머물고 있던 상처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었음을 넘어지고 쓰러지다 다시 일어나면서 알게 되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해서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마음이 아파서 허상이라도 좋으니 하루에 수십 번 수만 번 꿈을 그렸다. 그래야만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 나는 티브이에 나오는 만화 주인공을 동경했다. 만화 주인공이 보여주는 배경에 집착했다. 드넓고 푸르른 들녘 위에 온기가 느껴지는 집을 그렸다. 요즘에 없는 굴뚝 위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보며 마음껏 뛰어놀던 아이는 저녁시간을 알리는 굴뚝을 보며 따스한 안식처로 단번에 뛰어들어오는 그 모습을 늘 그렸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그 그림을 머릿속과 가슴속에 그렸다. 그리는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침법 할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는 편안한 모습 그대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웃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이 꿈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서 남들이 다 하는 결혼 관문을 통과하면서 내가 꿨던 꿈, 늘 머릿속에 그렸던 그 집을 이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나눌 수 없었고 느끼지 못한 풍경을 그릴 수 없었다. 마음은 알겠는데 행동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 하나 초라하고 추운 친정집이 아닌 오롯이 우리 가족을 품어줄 수 있는 집은 가지게 되었다. 푸르른 들판 위에 새하얀 집이 아니지만, 생김새가 똑같은 아파트였지만 성공했다고 다들 말했다. 그러나 그 집조차 허울뿐이었다. 집안에 풍기는 냄새는 서로를 으르렁 거리며 죽일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꿈을 꾸며 그렸던 집은 결국 실패로 돌아왔다. 방패 사랑을 철저하게 모방하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다보니 상대가 지쳐했다. 나 또한 지쳐 병들고 아팠다.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방패 사랑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프고 힘이 드는지, 내가 왜 이렇게 엉망인지. 내가 왜 마음이 고약한지 말이다. 상처 난 곳에 똑같은 상처를 내는 것이 무서워 못 본 척했다. 그것이 방패 사랑이었다. 희생이 사랑인 줄 알았다. 나만 희생하면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존경할 줄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 와서 그때를 회상하면 내가 받았던 사랑과 내가 주었던 사랑은 모순 투성이었다.


죽기보단 싫은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막기 위해 나는 희생을 자처했다. '이것이 사랑이야'라고 강요했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형제에게도 그리고 마지막에 친구에게도 강요만 하니 모두가 내 곁을 떠나고 밀았다. 방패 사랑은 희생으로 이루어진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아픈 상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 희생이라는 방패를 들고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휘둘렀다. 방패 사랑은 나에게 무기였다. 아픈 상처를 건들지 않아 좋았고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아서 좋았다. 방패 사랑은 아주 강하다. 부정적인 시선, 말, 행동만큼 강했다. 결국 방패 사랑은 부정을 위한 사랑이었으니까. 방패 사랑은 '나 아파, 아파 죽겠어, 미칠 것 같이 아파, 그러니 너희들을 위해 희생한 나를 돌아봐줘'라는 메아리가 들렸다. 메아리는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왔다. 내가 모르는 사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왔다. 나에게 온 상처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유년시절 매일 그렸던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나에게 상처를 준 부친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 사랑을 몰라서 한 남자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는 나에게 희생만 강요했다. 친정엄마가 해왔던 그 희생 사랑은 결혼 생활하는 동안 나에게 독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친정엄마의 희생 사랑이자 방패 사랑을 거부한다.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엄마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들 주려고 음식을 했거든. 너희들이 안 오니  버스를 여러 번 타고 음식을 배달했던 것이 이제는 여기저기 아프다" 매번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지금 아프다고 그러니 사랑을 달라고 한다. 나 또한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이 희생 사랑이라서 줄 수 있었던 건 희생이었다. 엄마가 힘들면 온 몸을 다해 해결했다. 희생 사랑은 모두 힘들게 했다. 이제는 엄마에게 말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아끼는 것이 사랑이라고, 아프다고 말하기 전에 병원부터 다녀오라고, 누군가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보라고, 맏이 역시 힘들고 지치는 삶을 살아간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거 안 보이냐고 왜 맏이에게만 의지하고 희생했다고 말하냐고, 맏이 말고 다른 자식은 자식도 아니냐고 맏이에게만 매달리지 말고 제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70 평생 살아온 삶이 희생 사랑이라서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는지 모르고 엄마였다. 아들이 있으면 뭐하고 작은 딸이 있으면 뭐하냐고 오롯이 맏이에게 기대고 맏이가 다 해주기를 바라는 엄마가 이제는 버겁다. 이제는 희생 사랑이 아닌 방패 사랑도 아닌 그저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며 사랑을 배워야 한다. 내 아이에게 짐스러운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난 내 꿈을 그리며 그 꿈을 위해 달려간다. 친정엄마는 맏이를 방패 삼아 부친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싫어하는 남편을 멀리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맏이인 나였다. 부친 눈에는 성가신 맏이가 되었고 정도 사랑도 없는 부녀관계가 되었다. 부친의 말 한마디, 부친의 행동, 부친의 눈빛을 볼 때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홀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를 방치한 엄마는 부친이 싫어 나를 방패를 삼았고 예민한 맏이 곁을 지키기 위해 부친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거부했던 엄마였다. 그러니 부친 눈에는 맏이가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다는 걸 엄마를 통해 최근에 알게 되었다. 부친은 자매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부친의 그 행동을 알 것 같다. 부친이 왜 나를 싫어하고 경멸하는 눈빛을 줬는지를. 가족 사랑을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방패 사랑을 준 엄마는 지금껏 희생 사랑을 전하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이 희생이었으니까. 엄마의 유년시절을 들여다보면 6남매 중 막내딸이자 남동생 둘 있는 누나였다. 엄마 위로 언니 두 명에 오빠 한 명이었다. 엄마의 유년시절을 듣다 보면 나와 닮아있었다. 언니와 오빠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바빴지만, 망한 집을 위해 엄마만 일을 했다. 엄마 월급날만 기다린 어린 남동생을 위해 엄마는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했다. 엄마의 유년시절을 보면 동생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받아들였다. 희생 대가는 주위의 칭찬이 있었고 칭찬을 듣기 위해 엄마 위치에서 젊은 시절 즐겨보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공부는 할 수 없었던 가정 형편으로 칭찬 듣기 위해 자신 살을 도려내며 희생했고 그게 사랑이라고 배웠던 것이다.


자신이 배운 사랑 그대로 맏이에게 희생 사랑을 주었고 맏이를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방패 역할을 주도했다. 맏이의 방패 사랑 덕분에 엄마는 고마워 지금도 희생 사랑을 하려 한다. 희생 사랑은 주는 당사자도 받는 사람도 사랑이라 느끼지 못한다. 그저 책임감이고 짊어지기 힘든 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상대하기 힘들어 그들은 내 곁을 떠났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있었기에. 방패 사랑은 희생 사랑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고 나만 희생하면 다른 이들은 자연스레 나를 사랑할 거라는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랑은 배신과 시련으로 얼룩졌다. 이제는 안다. 뭐가 잘못된 길이고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방패 사랑은 사라졌지만 (부친이 없기에) 희생 사랑을 강요하는 엄마에게 나는 말한다. 사랑은 나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맏이는 더 이상 살림 밑천이 될 수 없다고. 그러니 맏이에게만 책임을 안겨주지 말고 자식 모두에게 책임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 믿는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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