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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02. 2022

글을 쓰면 성격이 변한다

엄마 에세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성격이 차분해진 케이스다. 외부적인 영향을 받았던 건 회사생활이었다. 차분하고 덜렁거리지 않던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급해지고 덜렁거려서 중요한 문서를 늘 사장이 챙겨주었다. 외부적 영향으로 성격이 변한 거라곤 단정 짓지 못하지만, 외부적인 환경으로 타고난 성격 중 급한 성격이 내 안에 있다는 걸 회사 직속상관으로 인해 끄집어낸 것이다.


직속상관은 바로 사장이었다. 자금을 조달하는 사장은 유독 성격이 급했다. "미스 김, 무슨 업체 자금 현황 리스트를 줘"라고 말이 떨어지지 말자 그 서류가 사장 손에 있어야 했다. 조금은 느긋했던 나의 성격은 10년여 회사생활을 하면서 조금의 여유가 없었다. 사장과 10년 호흡을 맞추다 보니 다른 사람의 성격이 내 눈에 보였다. 사장이 지금 무슨 서류를 찾을지 무슨 이유로 나를 부를지 감을 잡게 되었다.


그 감은 늘 칭찬과 연결되었는데 여기에는 나의 희생과 고뇌가 있었다. 그리고 사장과 통화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건 물론이고 접대를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해야 사장이 원하는 서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준비성이 철저하면서도 어떨 때는 실수투성인 나를 안 사장은 퇴근 전이나 회식이 있을 때는 미스 김 자리인 내 자리를 한 번 훑고 지나가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사장님, 사람은 완벽할 수 없어요. 일은 철두철미하게 진행하지만 덜렁대는 맛이 있어야 인간미가 흐르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더니 사장 눈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덜렁이는 나를 대신해 사장의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 발휘되었던 거 같다. 내가 갑작스러운 투병으로 권고 퇴직을 하면서 들리는 소문이 이러했다.


"미스 김은 1원까지 다 맞추었어"라든지 "영아는 이런 서류 잘 정리했었는데"라는 비교 말을 사장이나 과 부서 선배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언니? 언니가 얼마나 꼼꼼한지 언니 없는 빈자리가 금방 탈로 났어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언니 업무와 비교당하는 것이 너무 괴로워요"라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힘들게 살았구나. 내가 나를 너무 못살게 굴었구나'를 그 후배 통화에서 알았고 내가 너무 철저한 업무를 봐서 후배가 힘들어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10년 동안 호흡을 맞추며 생활한 사장과 이별을 하고 나니 급한 성격은 고유의 내 성격으로 자리 잡았고 외부환경으로 급한 성격이 된 것이 아닌 유전적으로 갖고 있던 급한 성격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드러났던 것이다. 덜렁거리며 바쁜 나는 느려 터진 동생 행동에 늘 불만이 많았다. '어' 하면 '아'하고 답이 나오거나 행동이 나와야 하는데 동생은 한 템포 느렸다. 


"언니야, 언니 너무 급한 거 아니야. 그렇게 급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굴러가. 조금만 여유를 가져봐"라고 동생이 말할 땐 "난 이렇게 생겨 먹었어. 회사생활을 10년 동안 해봐라. 안 급하고 배기는지"라고 동생에게 호통을 쳤다. 이런 급한 성격은 나와 아이에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급한 성격을 차분한 성격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나의 이상적인 행동이나 습관은 우아하면서 차분하고 서두르지 않는 나를 상상했다. 내 감정과 행동을 차분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바로 글을 쓰는 거였다. 처음에는 급한 성격 탓에 얼른 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근데 회를 거듭하고 시간이 흐르자 감정선이 정리가 되면서 다급하고 급한 성격이 조금씩 차분해지고 있었다.


급한 성격의 소유자 친정엄마와 있다 보면 정신이 없다. 한마디를 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스타일이라 예초에 내가 하지 않을 거면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만큼 급한 성격이고 다른 사람 발걸음보다 서너 발자국이 빠른 엄마 보폭을 맞출 수 없었던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그렇게 빨리 걸으면 여니가 그 보폭으로 걸을 수 없어. 엄마 성격대로 걸을 거면 아이 손 잡지 마" "야, 걸음 안 빠르다" "아니 아이 걸음 봐봐. 뛰고 있잖아. 엄마 보폭은 아이가 여러 번 걸어야 나오는 보폭이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이해했다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그 성격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엄마와 1년 반을 살면서 급하던 엄마 성격은 아주 조금 아주 미세하게 차분해졌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 차분해졌고 느린 상대를 기다려 줄 수 있는 배려가 생겼다. 이건 15년 전 엄마인 나와 7년 전 엄마인 나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르다.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호흡을 맞추게 되는 나는 10년 동안 호흡을 맞춘 사장님 덕분이었다. 


천천히 해도 상관없다는 기술 사장님과 당장 눈앞에 결과물을 기다리는 자금 담당 사장님 사이에서 속도 조절은 필수가 되었던 회사생활 덕분에 이제는 내 성격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아이 행동을 보면 오래전 내가 떠오른다. "어, 유치원 버스 올 시간이다. 어서 나가야 할 거 같아"말이 떨어지자 말자 아이는 다급해진다. "어어어 어떡해. 유치원 버스 가면 나는 어떡해"라며 신발을 제대로 신지 않고 나가려고 하거나 거꾸로 신발을 신고 가려는 아이 성격을 보며 웃음이 났다.


"시간 여유 있어. 그러니 신발 똑바로 신어"라고 말하면 괜찮다고 거꾸로 신어도 잘 걸을 수 있다는 아이 말에 17년 전 엄마인 나라면 거꾸로 신더라도 일단 목적지에 가야 했다. 목적지에 가면 안심이 되어서 신발을 똑바로 신기고 옷을 챙기는 나였다. 그러나 7년 전 엄마인 나는 차분해졌다. 1분이면 신발을 똑바로 신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걸 몰랐던 예전 나는 1분이 짧은 시간이라고 믿고 살았던 것이다. 


1분은 제법 긴 시간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나는 1분은 짧은 시간이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내가 여유를 가지고 아이를 기다려본다. 아이가 바쁘게 설치면 '지금 바쁘지 않아. 시간은 충분해' 말하는 나는 지금도 나에게 여유를 주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노력해야 아이가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 해결을 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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