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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03. 2022

중년 삶은 생각보다 아름답다

엄마 에세이

어제는 노트북 대신 책과 노트를 가방에 넣고 동네 카페를 찾았다. 고요함 속에서 내가 원하는 주제의 책을 읽는다는 건 7년 전 상상 속에 있었던 내 모습이다. '언제 클까?' '내가 얼마나 인고를 하고 인내해야 하나' 다양한 감정으로 아이와 복잡한 감정으로 하루를 살았다. 그러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를 것이고 나 또한 한 살을 먹고 엄마가 한 살 먹는 만큼 아이 역시 한 살을 먹으며 성장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급했다.


7년 동안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온 인생이 헛되지 않게 나를 상상했다. 그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면 나는 이런 모습으로 지내겠다는 나와의 맹세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 속 이미지는 지금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어제 읽었던 책은 며칠전 남포동에서 글을 쓰고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남포문고가 내 마음을 이끌었다.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문화누리' 카드가 내 지갑에 있었다.


귀한 돈 헛되게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내가 원하는 책, 앞으로 내가 글을 쓰면서 방향을 잡아 줄 책을 몇 권 손에 넣었다. 서점을 가는 이유는 종이 냄새를 맡고 싶기도 하지만 내 눈으로 표지를 보고 만지며 책 속 내용이 나와 맞는지 꼼꼼히 체크할 수 있어서 좋은데 온라인보다 10프로 비싸다. 그렇다면 제목을 메모해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겠지만 지금 당장 읽고 싶으면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읽고 싶을 때 당장 읽지 않으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 같은 경우 여러 권 책을 구입하면 없는 책을 찾는지 며칠씩 시간이 걸릴 때가 있어서 흥미가 떨어지고 만다. (유명한 책 아니면 창고에 있는지 일주일씩 늦어질 때가 가급적 있었다)


내 나이가 마흔이라서 그런지 '마흔'이라는 제목만 보면 책을 집어 든다. 내 눈에 들어온 책은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이었다. 목차를 보고 프롤로그를 읽는데 가슴이 찡했다. 그 감정이 뭔지 알기 위해서는 이 책을 꼭 사야 했다. 총 4권을 구입했는데 한 권은 아이 동화책이었고 나머지는 소설 한 권과 비 소설 두 권을 들고 집에 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나를 위한 팁이 있을 거 같아서 책이 필요한 요즘. 어제.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다양한 소재의 글감 아이디어 샘솟았다. 날씨도 한 몫했다. 봄볕이 따사로웠고 내가 찾은 카페의 풍경이 그러했다. 저자는 유쾌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마흔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았고 그게 바로 글이었다. 저자 역시 메모지와 일기장을 늘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유쾌한 글에는 저자의 성격이 묻어 있었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느꼈던 점, 시부모님을 바라보며 사랑을 배운 삶을 다양한 표현과 기법으로 써 내려간 책이었다. 봄볕처럼 참 따사로운 글이어서 내 마음 한편이 행복해졌다. 사실 나는 유쾌하거나 웃긴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유쾌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다.


저자 글 역시 가슴이 찡한 글인데도 저자의 특유의 글맛으로 써 내려갔던 것이 매력적이었다. 나 역시 저자처럼 마흔에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았다. 이 길이 맞는지 안 맞는지 따지고 재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으니깐 했다. 독서도 만찬 가지. 읽고 싶으니깐. 이미 나보다 앞선 간 사람들의 세상을 보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날의 기억들을 꺼내와 마음에 연고처럼 바른다' 문구에 나의 연고는 글이었다. 죽기보다 싫은 그 상처와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어 치유라는 연고를 조심스레 발랐다. 상처는 덧났지만 괜찮았다. 처음 생긴 상처보다 덜 아팠기 때문이다. 다시 아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중년은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나이었다. 이리저리 흔들려도 자신이 원하는 그 지점에 가야 하는 것이 중년이었다.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4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 100장을 읽으며 온갖 감정과 떠오르는 추억들을 페이지마다 나열한 나는 참 행복했다.


따사로운 봄볕과 살랑살랑 불어주는 봄바람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기며 의식의 흐름대로 내 맡겼던 어제는 어느 봄날보다 기억에 남을 것이다. 트라우마였던 봄날의 기억의 한 부분을 지울 수 있어서 좋았다. 아픈 봄날의 기억 한 모퉁이에 소소한 추억이 남아 다시 아프더라도 살아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다이어리에 적어 두었던 책 내용, 책 페이지마다 써내려간 글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형태의 글의 뼈대가 잡힐 거 같다. 나는 소설이 쓰고 싶은 사람.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에 멋진 주인공을 그 세상에 넣어 원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다. 13살 가여운 내면 아이를 원 없이 세상을 살 수 있도록 소설을 꼭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봄볕과 봄비를 맞으며 중년의 길을 걸어가 본다.


중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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